군벌 간 무력 충돌로 고립됐다가 우리 정부의 '프라미스(Promise·약속)' 작전을 통해 철수한 수단 교민들이 지난 25일 경기 성남시 서울공항으로 귀국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군벌 간 무력충돌 사태를 빚고 있는 수단에서 우리 교민 28명을 무사히 한국으로 데려온 '프로미스(Promise‧약속)' 작전 현장은 가슴을 쓸어내리게 하는 순간들의 연속이었다. 남궁환 주 수단 대사는 25일 귀국한 뒤 '총소리가 나지 않아서 오히려 잠을 못 자겠다'고 할 정도였다.
프로미스 작전 신속대응팀 단장으로 현지에 파견됐던 외교부 최영한 재외동포영사실장과 남궁환 대사는 26일 오후 기자들과 만나 숨가쁘게 돌아갔던 현장의 상황들을 설명했다. 색이 서로 다른 재킷과 바지를 입은 남 대사는 "체육복과 티셔츠 차림으로 8일 동안을 버티다가 관저에서 급히 옷을 챙겨 왔는데 나중에 보니 색깔이 짝이 안 맞았다"고 이야기했다.
남 대사는 가족의 수단 입국을 앞두고 현지 시장을 둘러보던 중 총격전이 벌어지는 것을 알게 됐고, 입고 있던 옷 그대로 대사관에 들어가 현장을 지휘했다. "어디가 더 안전하고 안전하지 않다는 걸 판단하기 어려울 정도로 전 지역에서 총소리가 났다"고 그는 회고했다. 25일 한국에 돌아온 뒤 총소리가 들리지 않다 보니 오히려 잠을 못 자게 된 이유다.
교민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돌리며 딱 한 대 있던 방탄차량을 타고 이들을 대사관으로 데려온 남 대사는 "한 10km를 가다 보면 5~6군데가 체크포인트인데 경우에 따라선 차량을 모두 뒤지는 경우도 있었다"며 "보통 한 30분이면 다녀올 거리를 1시간 반, 즉 2~3배 이상 걸리는 굉장히 어려운 일이었다"고 설명했다.
외교부와 대사관은 라마단 금식 기간 이후 3일간 휴일 동안 교전을 중지하기로 한 점에 주목해 이달 23일(현지시간)을 최종 탈출시한으로 잡고 대사관으로 하나둘씩 집결, UAE가 제공한 호송대 차량에 탑승하고 포트수단까지 1170여km 걸리는 먼 길을 떠나게 됐다.
이 과정에서 UAE 칼둔 칼리파 알 무바라크 아부다비 행정청장은 박진 외교부 장관에게 "Your people are our people(한국 국민은 우리 국민이다)"이라는 SNS 메시지를 보내며 흔쾌히 협력했다고 한다.
사진공동취재단하르툼에서는 치열한 격전이 벌어지고 있었지만 다행히 수도 하르툼을 벗어나자 그러한 기색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차량에 탄 교민들은 하르툼을 떠난 것만으로도 안정된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1170여km를 육로로 가서) 포트수단에서 우리 공군기를 봤을 때 '살았구나'라고 생각했다"고 남 대사는 말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최영한 실장이 지휘하는 신속대응팀과 육군 특전사 707특수임무단, 공군 공정통제사(CCT) 등이 탑승한 C-130J 슈퍼 허큘리스 수송기는 지부티 르모니에 미군기지를 이륙해 포트수단 국제공항에 착륙하자마자 골치아픈 문제를 겪게 됐다.
르모니에 기지를 떠날 때는 포트수단 공항을 사용해도 좋다는 구두 허가를 받고 떠난 것이었는데, 정작 이들을 맞은 공항 관계자는 그런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고 해 대치하게 된 것이었다. 이 과정에서 해외출장을 갔다가 지부티에서 신속대응팀에 합류해 다시 포트수단에 들어온 대사관 직원이 활약하게 됐다. 아랍어를 구사하기 때문이다.
최 실장은 "의사소통이 되니까 모든 커뮤니케이션을 다 했고, 본부에도 도움을 요청해서 해당 공관과 국방부의 무관 네트워크 등 모든 것을 다 동원했다"며 "한 3시간만에 구두 허가로 '공항을 사용해도 좋다'고 결정됐다. 그동안 대사관 직원과 공군 팀장으로 간 대령 1명 이외에는 아무도 비행기에서 내리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런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어쨌든 군용기가 공항에 착륙해서 대기할 수 있었다는 것은 매우 큰 도움이 됐고, 실제로 교민들이 도착하자마자 45분만에 출국심사를 포함해 모든 수속을 끝내고 사우디아라비아 제다로 향할 수 있었다고 최 실장은 설명했다.
당장 우리도 10명 정도를 태워줄 수 있느냐고 다른 나라로부터 요청을 받았지만, 자리가 없어 거절해야 했을 정도로 타국 수송기에 탑승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