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전세사기 의혹 사태가 벌어진 경기 화성 동탄의 한 오피스텔 모습. 박창주 기자최모(30대·여)씨는 2년 전 직장과 가까운 경기 화성 동탄신도시에서 오피스텔 전세를 구했다. 당시 공인중개사가 소개해준 매물들은 모두 매매가와 비슷한 '깡통전세'여서 이를 시세로 믿을 수밖에 없었다.
안정적인 출퇴근을 위해 2년간 계약을 하고 싶었지만, 1년 단위로만 계약한다는 중개사 말에 거래를 망설이기도 했다.
하지만 전세 매물이 귀했던 데다 이직 준비로 다급히 거처를 마련해야 했던 최씨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더욱이 '집주인이 믿을 만한 사람이고 나중에 연장하면 된다'는 중개사 설득까지 이어진 터라, 이를 믿고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최씨의 집주인은 최근 동탄 오피스텔 전세 사건(40여채 규모)으로 주목받은 A씨다.
이후 계약을 갱신하면서 집주인 요구로 보증금은 기존 1억 2천여만 원에서 1년 만에 5백만 원 올랐다. 이런 가운데 집주인이 파산 신청을 하면서 살던 오피스텔은 압류·경매 대상이 됐고, 최씨는 보증금 마련을 위해 받은 은행대출금과 동생 결혼 준비자금마저 잃을 처지에 놓였다.
최씨는 "여느 세입자들도 비슷하게 전세금을 올려줬다고 하던데, 그렇게 챙긴 돈들은 다 뒤로 빼돌리지 않았나 싶다"며 "'깡통전세 알고 왜 들어갔느냐'는 일부 비난이 있는데, 처음부터 계획된 거래 방식에 피해자들은 속았을 뿐이다"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1년 후 보증금 5%↑, 피해금 늘어나는 구조
경기 화성시 동탄1동 행정복지센터 1층에서 '화성시 전세피해방지 지원상담센터'가 운영되고 있다. 박창주 기자이른바 '동탄 오피스텔 전세 사태'와 관련해 피해자들 사이에서는 집주인과 공인중개사의 의도적인 거래 수법으로 보증금 손실 피해가 더 커졌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27일 CBS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전세금 피해가 발생·우려되는 동탄지역의 상당수 오피스텔 입주민들은 전세계약 때 역전세(전세가가 매매가와 비슷하거나 높은 상태) 매물만 소개받은 상태에서, 중개사 권유로 1년간의 짧은 계약기간을 설정해야만 했다고 주장한다.
A씨 소유의 오피스텔 세입자인 이모(30대·남)씨도 2년짜리 전세를 거부당해 1년으로 계약, 갱신 할때마다 5%씩 보증금을 올려줌으로써 피해금이 불어났다고 토로했다.
그는 집이 압류돼 소유권 이전을 받는 것도 어려워, 다른 피해자들과 공동으로 전세금 반환소송 등 법적 대응을 준비 중이다.
이씨는 "대규모 전세 거래를 하면서 2년 계약 요구도 의도적으로 거절했고, 집주인 얼굴조차 보여주지 않았다"며 "다음 세입자 구하는 것도 걱정할 것 없다면서 안심시켰지만 이런 사태가 벌어졌다"고 했다.
동탄 전세사기 사태와 관련해 임대인 A씨, B씨와 임차인들의 전세거래 계약을 담당했던 공인중개사사무소 문이 26일 굳게 닫혀 있다. 당시 계약을 진행했던 중개사 부부 등은 폐업했고, 지금은 대표자가 바뀐 상태다. 박창주 기자또 다른 동탄 전세 사건(250여채 규모) 임대인인 B씨 오피스텔에 입주한 강모(30대·여)씨 역시 비슷한 시기 중개사의 제안으로 1년 단위 전세계약을 맺었다가, 갱신 시점에 보증금 인상 요구를 받고 목돈 마련에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그러다 계약갱신을 포기하고 보증금을 요청했으나, '다음 세입자가 없어 전세금을 돌려줄 수 없다'는 황당한 답변이 돌아왔다.
강씨는 "집주인도 중개사도 정작 계약기간이 끝나니 무책임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며 "믿었던 잘못 뿐인데 보증금 손실 피해만 떠안게 됐다"고 하소연했다.
이 같은 방식의 전세 거래는 '동탄 전세 사기 의혹 피해자 모임'이라는 이름의 카카오톡 단체대화방(300명)에서도 화제가 됐다. "계약할 때 1년씩만 했었는데 조금씩 보증금 올리고 복비 내고 그랬다", "나도 ○○부동산에서 '이 동네는 다 1년씩 한다'고 해서 그런 줄 알았다", "가격 올리려고 애초 작업을 한 것 같다", "2년 계약하고 싶어도 안 해줬다" 등의 내용이다.
지역 중개업계 "일반적이지 않은 거래 유도"
이처럼 깡통전세 중심으로 계약 기간을 최소화하는 전세 거래를 유도하는 경우는 '일반적이지 않다'는 게 지역 공인중개사 업계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동탄 도심의 한 공인중개사는 "전세 매물이 귀해 가격이 오른 측면은 있지만 통상 역전세 매물만 골라서 소개하진 않는다"며 "중개하면서 계약기간을 1년 단위로만 가능하다고 안내하는 것도 흔치 않은 일이다"라고 설명했다.
오히려 집을 구하는 세입자 입장을 우선 고려해 임대 계약 기간을 합리적으로 설정하도록 돕는 게 중개사의 역할이라는 지적도 뒤따른다.
주로 오피스텔을 취급하는 또 다른 인근 공인중개사는 "세입자가 원하는 계약 기간이 있으면 집주인 의견과 조율을 해 중재를 해주는 게 상식적인 방식이다"라며 "왜 1년 단위 계약을 적극 유도했는지 의문이다"라고 말했다.
"의도성 충분히 감지"…'기망 행위' 입증 관건
화성시 전세피해방지 지원상담센터가 운영되고 있는 동탄1동 행정복지센터. 박창주 기자애초 임대인과 중개사 등이 의도를 갖고 위험성 있는 전세 거래를 시도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게 전문가의 판단이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대학원 주임교수는 "깡통전세 위주로 거래를 유도했다면 자기 자본을 적게 또는 아예 들이지 않으면서 물건들을 사들이려 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며 "1년 단위로 계약하는 행위는 갱신 시 보증금을 올리려고 했던 의도성이 엿보이는 대목이다"라고 짚었다.
이에 대해 CBS노컷뉴스는 집주인 등의 입장을 듣기 위해 전화통화를 시도하며 문자메시지로 질의사항도 보냈지만, 연락에 실패했다.
한편 경기남부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는 전날 기준 화성 동탄·수원 등지의 오피스텔 전세 피해 신고 접수 건수는 110여 건이라고 밝혔다. 계약 만기가 멀었거나 소유권을 받은 임차인, 피해를 인지하지 못한 세입자 등을 감안하면 신고는 더 늘어날 수 있다. 대부분 신고는 1억~1억 5천만 원 규모의 전세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게 된 상황에 관한 내용이다.
경찰은 임대인과 중개사가 임차인을 상대로 범한 기망 행위가 있었는지 등을 집중 수사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임대인과 중개사 등의 혐의가 성립되려면 대규모 전세 거래에 대해 '투자 실패'가 아닌 고의성 있는 '사기'라는 점이 규명돼야 하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임대차 계약을 맺으면서 전세금을 반환할 의사가 없었거나 돈을 돌려줄 능력이 없는데도 계약을 유지했다면 사기죄에 해당될 수 있고, 주체별 역할을 나눠 조직적 사기를 벌였을 경우 '범죄단체조직죄'로 처벌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