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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BN 부산에 기항…'비핵화 선언'과 모순 아니라고?[안보열전]

국방/외교

    SSBN 부산에 기항…'비핵화 선언'과 모순 아니라고?[안보열전]

    편집자 주

    튼튼한 안보가 평화를 뒷받침합니다. 밤낮없이 우리의 일상을 지키는 이들의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치열한 현장(熱戰)의 이야기를 역사에 남기고(列傳) 보도하겠습니다.

    워싱턴 선언 'SSBN 한국 기항(visit)'은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위반일까
    국방부 "위배되지 않으며, 법적으로 문제 없다고 해석"
    전문가들 "핵무기 가지고 항구 들어왔다가 다시 나간다면 위반 아니다"
    다만 '얼마나 자주, 정기적으로'에 따라서 '배비(deploy)'로 볼 여지도 있어
    이 문제 해결되더라도 부산 등에 핵무기 들어온단 사실은 어차피 같아
    국방부 "미 측이 핵무기 탑재 여부 확인해주지 않는다"…사실상 말장난
    SSBN 특성상 핵무기 탑재 여부 자체를 따질 필요 없어, 무조건 탑재
    한미, 국민들 납득할 설명 필요…과거 일본은 '밀약' 체결 뒤 아예 거짓말

    연합뉴스연합뉴스
    26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에서 열린 한미정상회담에서 발표된 '워싱턴 선언'에는 "향후 예정된 미국 탄도미사일 탑재 원자력 잠수함의 한국 기항(upcoming visit of a US nuclear ballistic missile submarine to the ROK)"이라는 내용이 포함됐다.

    이는 곧 미국의 오하이오급 핵 탄도미사일 탑재 원자력 잠수함(SSBN)이 한국에 들어온다는 뜻이다. 1991년 한반도 비핵화 선언과 함께 미군의 전술핵무기가 남한에서 철수한 이후, 다시금 핵무기가 들어오는 일은 당연히 함의가 작지 않다.

    국방부는 비핵화 선언 위반이 아니며, SSBN이 입항할 때 핵무기를 탑재했는지 여부에 대해 미국 측이 공식적으로 확인하지 않는다고 설명했지만 논란의 여지는 상당하다. 이는 일본에서 수십년 전에 이미 문제가 됐던 사항이기도 하다.

    국방부 "SSBN 기항은 비핵화 공동선언 위반 아니다"…정기적으로 온다면?

    4월 18일 괌에 기항하는 미 해군의 오하이오급 SSBN 메인함. 미 국방부 영상정보시스템4월 18일 괌에 기항하는 미 해군의 오하이오급 SSBN 메인함. 미 국방부 영상정보시스템
    SSBN은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탑재해 운용되는 원자력 추진 잠수함(핵잠수함)의 분류 중 하나다. 사실 이름 때문에 오해를 받곤 하지만, 원자력 잠수함(핵잠수함)에 꼭 핵무기가 탑재돼 있다는 보장은 없다. '원자력 잠수함'은 '잠수함의 추진 방식'이 '원자로'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국의 로스앤젤레스급 공격 잠수함을 비롯해 전 세계에는 핵무기를 갖추지 않은 원자력 잠수함이 훨씬 더 많다.

    하지만 SSBN은 얘기가 다른데 보통 핵무기를 탑재하기 때문이다. SLBM의 존재 이유 자체가 바닷속에 숨어 있다가 본국이 핵공격을 받았을 때 핵공격을 가하는 것(2차 보복 능력)이기 때문에, SLBM에는 핵무기를 탑재한다. 예외가 있기는 하지만 2023년 현재 실전배치된 SLBM 중에서 우리나라를 포함해 한 손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다. 그러므로 SLBM을 탑재한 SSBN에는 핵무기가 있다고 보는 일이 상식이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이른바 P5라고 불리는 미국·영국·프랑스·중국·러시아 5개국 모두 SSBN과 핵 탑재 SLBM을 보유하고 있다.

    그런데 1991년 12월 남북이 합의한 '한반도의 비핵화에 대한 공동선언' 1조는 남북의 핵무기에 대해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물론 북한의 핵 개발과 2013년 조국평화통일위원회의 무효화 성명으로 의미가 많이 퇴색되긴 했지만 우리는 이를 계속 유효하다고 보고 있다. 북한에 비핵화를 요구할 수 있는 강력한 명분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 1991년 12월 '한반도의 비핵화에 대한 공동선언' 1조

      1. 남과 북은 핵무기의 시험, 제조, 생산, 접수, 보유, 저장, 배비, 사용을 하지 아니한다.

      1. South and North Korea shall not test, manufacture, produce, receive, possess, store, deploy or use nuclear weapons.

    국방부 관계자는 28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SSBN의 기항이 "검토 결과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위반이 아니라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SSBN의 한국 기항과 관련해 공동선언에서 문제가 되는 부분은 '접수(receive)', '저장(store)', '배비(deploy)'와 관련된 문제인데 셋 모두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논리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접수'라 함은 외국의 전력이나 물자가 들어오면 그것을 우리가 정식으로 인수해 활용한다는 것이 대체적 해석이다. 실제로 과거 존재했던 한미연합훈련의 연합전시증원(RSOI) 연습에서 'R'이 'reception'을 의미하며 이는 'receive'의 명사형이다. 그런데 SSBN은 항구에 '들르'기는 하되(visit), 핵무기를 한국 영토에 내려놓지 않고 그대로 있다가 가기 때문에 '접수'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저장(store)'도 마찬가지다.

    북한대학원대 조성렬 초빙교수는 "receive(접수)와 visit(방문, 기항)은 차이가 있는데, '접수'는 보유나 배치를 위한 그 전 단계의 조치이며 '방문'은 가지고 들어왔다가 도로 들고 나간다는 의미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손원일함의 초대 함장을 지냈던 최일 잠수함연구소장(퇴역 해군대령)은 "원문의 표현(regular visibility of strategic assets, 전략자산의 정례적 가시성)을 고려할 때 '방문(visit)'이라 함은 '전개(deployment)'라기보다 '한국 입항'으로 해석된다"며 "핵무기를 한반도 영토에 배치하지 않으면서도 핵우산을 현시할 수 있는 미국의 전력은 SSBN이 유일하다"고 말했다.

    최 소장은 "국제법적으로 맞다, 아니다라기보다 정치적인 문제에 더 가깝지만 배비(deploy)의 해석에 대해 (학술적으로 깊게 들여다보면) 차이가 있을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며 "이런 상황에서 유일하게 (모호성을 유지하며) 쓸 수 있는 수단은 바닷속에 있는 잠수함뿐이다"고 덧붙였다.

    반면 북한대학원대 김동엽 교수(퇴역 해군중령)는 "핵무기를 가지고 SSBN이 '정기적', 다시 말해 주기를 정해 놓고 들어온다면 이는 배비(deploy)로 해석할 여지가 있다"며 "얼마나 많이 오느냐는 '횟수'의 문제보다는 '얼마나 정기적이냐'는 쪽이 그러한 해석에 있어 훨씬 더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워싱턴 선언에는 전략자산에 대해 '정례적 가시성(regular visibility)'을 언급한 내용이 있다.

    위반 여부 떠나 부산 등에 핵무기 들어온다는 점 여전…국내 여론 추이는?

    그런데 SSBN 기항이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을 위반하는지 아닌지의 문제는 둘째치더라도 부산 등 우리나라에 핵무기가 30년 만에 들어온다는 점은 변하지 않는다.

    국방부 관계자는 "SSBN이 한국에 기항하더라도 그 안에 실제 핵무기가 탑재돼 있는지를 미국 측이 확인해주지 않는다"고 설명했지만 이는 사실상 모호한 말장난에 불과하다. 다른 관계자가 "상황이 바뀌었기 때문에 (앞으로 SSBN이 올 때) 미국 측이 또 어떻게 우리에게 통보를 할지는 좀 더 봐야 될 것 같다"며 여지를 두긴 했다.

    앞서 언급됐듯이 SSBN은 '탄도미사일(SLBM)'을 탑재하는 만큼 거의 무조건이라고 봐도 좋을 정도로 핵무기를 탑재하며, 반대로 핵무기를 탑재하지 않은 SLBM이 훨씬 드물다. 애초에 SLBM의 존재 이유 자체가 '2차 보복 능력'이기 때문이다.

    2016년 8월 미 해군의 오하이오급 SSBN 메릴랜드함에서 발사되는 트라이던트 2 D5 SLBM. 미 국방부 영상정보시스템2016년 8월 미 해군의 오하이오급 SSBN 메릴랜드함에서 발사되는 트라이던트 2 D5 SLBM. 미 국방부 영상정보시스템
    현재 실전배치돼 있는 미국의 오하이오급 SSBN은 트라이던트 2 D5 SLBM을 24발 탑재할 수 있다. 미국의 ICBM인 미니트맨 3은 재래식 신속 지구권 타격(PGS)의 일환으로 핵이 아닌 재래식 탄두를 탑재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하다가, 현재는 극초음속 미사일 쪽으로 선회하긴 했지만 여전히 가능성을 남겨두고 있다.

    트라이던트 2 D5도 그렇게 만드는 것 자체는 기술적으로 가능한데, SLBM은 유사시 핵보복 그 자체를 가장 큰 목적으로 존재하는 무기이므로 그렇게 만들 필요가 없다는 것이 미국의 판단이었다. 그러므로, 현재 전 세계 바닷속을 돌아다니는 오하이오급 SSBN은 무조건 핵무기를 탑재했다고 보아야 한다는 것이 다수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김동엽 교수는 "오하이오급 SSBN 자체가 미국도 14척밖에 없는데, 해군의 함정 운용 방식을 생각하면 그 가운데 1/3은 수리와 정비, 1/3은 훈련과 휴식, 1/3만 실제 배치되므로 지구상에 돌아다니는 오하이오급의 실제 숫자는 4~5척 정도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며 "4~5척의 SSBN 가운데 1척을 핵미사일도 없이 돌아다니게 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전 세계의 모든 해군은 이런 식으로 전체 함정의 1/3 정도만 평시 작전에 투입할 수 있을 것이라고 처음부터 생각해서 함정 건조 숫자를 정한다.

    최근 자체 핵무장 찬성 여론이 높아진 현실을 감안하더라도 평시에 미국 핵무기가 한국작전전구(KTO)에, 그것도 공개적으로 들어오는 일은 아주 큰 함의를 가질 수밖에 없다. 열강의 한복판에 낀 한반도의 긴장을 고조시킴은 물론이고 핵무기가 이렇게 오는 것이 수십년만의 일이어서, 무시할 수 없는 국내 여론의 추이에 대한 예측 또한 어렵다.

    그러므로 핵무기가 한반도의 항구에 다시금 들어오는 중대한 사항에 있어서 한미 정부가 국민들이 제대로 납득할 수 있는 수준의 설명을 제대로 내놓을지도 매우 중요하다. 불행히도 과거 일본의 사례를 보면 그렇지 못했다.

    '사전협의' 제도 무력화한 미일 '핵밀약'…핵전략 모호성 유지하면서도 국민 납득시킬 방안 중요

    2012년 3월 일본 나가사키현 사세보에 입항하는 미 해군의 버지니아급 SSN 노스 캐롤라이나함. 미 국방부 영상정보시스템2012년 3월 일본 나가사키현 사세보에 입항하는 미 해군의 버지니아급 SSN 노스 캐롤라이나함. 미 국방부 영상정보시스템
    일본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상처로 반핵 정서가 현재까지 강하다. 그래서 1960년 미일 안보조약 개정 때 이른바 '기시-허터 교환공문'을 통해 미군 배치의 중요한 변경, 미군 장비의 중요한 변경, 미군이 '전투작전행동'을 위해 기지를 사용할 경우 미국 정부와 일본 정부가 사전협의한다는 제도를 도입했다. 여기엔 핵무기의 일본 내 반입(introduction)도 포함된다.

    하지만 미국 정부는 원자력 잠수함의 전진기지로 일본이 필요했고, 일본 국민들의 반핵 감정을 단계적으로 풀기 위해 1963년 1월 핵무기를 탑재하지 않은 원자력 잠수함(SSN) 노틸러스함의 기항을 인정해 달라고 요구했다. 이케다 하야토 내각은 1964년 8월 처음으로 원자력 잠수함의 기항을 인정했고 그해 11월 나가사키현 사세보에 SLBM이 없는 스케이트급 SSN 시 드래곤함이 입항했다. 이후 현재까지 일본에 핵무기를 탑재한 미 해군 함정이 입항했는지 여부는 공식적으로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런데 반전이 있었다. 1960년 1월 후지야마 아이이치로 외무상과 더글러스 맥아더 2세 주일미국대사가 서명한 '기밀토의기록'을 보면, 핵무기를 탑재한 미국 함정의 기항은 사전협의 대상에서 제외하는 밀약이 이뤄졌다. 미국은 '반입'을 핵무기의 지상배치라고 해석했고, 핵무기를 탑재한 함정이 일시적으로 기항하는 일은 통과(transit)라고 해석했다. 그런데도 1967년 사토 에이사쿠 총리는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비핵 3원칙'을 발표하기까지 하며 일본 국민을 속였다.

    이에 대한 의혹은 1974년 10월 진 라 로크 미 해군 퇴역 소장이 의회에서 "핵무기 탑재 함정이 일본 등 타국에 입항할 때 핵무기를 떼어낸 적이 없다"고 증언하면서 처음 제기됐고, 1981년 5월 에드윈 라이샤워 전 주일대사가 밀약의 존재를 증언하면서 본격적으로 폭로됐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당시에도 국민들에게 거짓말을 했고, 그로부터 한참 세월이 흐른 2009년 하토야마 유키오 내각 출범 이후 이 사안을 재조사하면서 공식적으로 확인됐다.

    그 뒤로 일본 시민단체들은 '비핵 3원칙' 위반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미 항공모함이 들어올 때마다 핵무기 반입 여부를 감시하는 운동을 벌이고 있다. 물론 미 항공모함에는 핵무기가 없지만 이 당시의 상처가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만은 아니지만 미국이 SSBN에 핵 탑재 여부를 밝히지 않는 이유도 일정 부분 이러한 역사를 의식해서다.

    일본의 사례는 앞으로 있을 핵무기 탑재 함정의 기항에 있어 한미 정부가 취해야 할 태도를 단정적으로 보여준다. 물론 북한의 핵 위협이 엄연히 존재하는 2023년 현 시점의 한국과 과거의 일본을 1대 1로 비교할 수는 없지만, 핵전략의 필수요소 가운데 하나인 모호성을 유지하면서도 여론을 충분히 납득시킬 수 있는 확장억제 방책이 필요하다는 데는 이견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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