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이미지 제공최근 새벽 촬영 중인 드라마 촬영장의 '벽돌 투척' 사건으로 20대 현장 스태프가 다치면서 드라마 촬영장 공해 문제가 수면 위로 올랐다.
제작사와 정부, 지자체는 관련 제도가 미비해 대응할 수 없다며 책임을 미루는 동안, 결국 현장 스태프 중 가장 저연차인 '연출팀 막내'가 '욕받이'가 되는 현실이다.
서울 혜화경찰서는 지난달 30일 상해 혐의로 40대 남성 A씨를 입건해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A씨는 지난 26일 오전 3시 25분쯤 서울 종로구 창신동 '무인도의 디바' 촬영장에 벽돌을 던져 촬영 스태프인 20대 여성 B씨를 다치게 한 혐의를 받는다. A씨는 경찰 조사에서 "빚과 조명 때문에 짜증났다"고 진술했다.
2일 CBS노컷뉴스 취재진이 사고 현장에서 만난 주민들은 당시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사고 현장 인근 도로는 약 8m로 좁고 경사가 심한 도로였다. 사건 현장 주변에는 주택과 상가 건물들이 사람 한 명이 지나갈 정도로 좁은 골목길을 사이에 두고 붙어 있었다.
사고 현장 인근에서 만난 주민 C씨는 "새벽까지 저러고 있는데 가만히 있으니까 진짜 착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는데 결국 사고가 났다"며 "조명도 조명이지만 도로를 통제하고 자기들끼리 마이크로 대화해서 (시끄러웠다)"고 불편함을 토로했다.
다른 주민 D씨는 "아침 10시부터 새벽 4시까지 계속 촬영했다"며 "사고가 난 뒤에도 촬영을 이어갔던 것 같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 관련없음. 연합뉴스이후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제작진들이 새벽에 주택가를 촬영하며 주민들에게 민폐를 끼쳤다는 비난 글이 올라왔다.
'벽돌을 던진 건 문제지만 새벽 3시에는 저러지 말아야지', '나 같으면 영화 촬영장 옆에서 사이렌을 울렸다' 등 A씨가 벽돌을 던진 행동 자체는 과하지만, A씨의 마음을 충분히 공감한다는 반응이 압도적이었다.
촬영장 조명과 소음, 교통 방해 때문에 불편을 호소하는 시민들과 제작진 간의 갈등은 비단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제작진들은 촬영 전에 주민들에게 사전에 협조를 구하기도 하지만, 새벽 촬영이라도 있는 날이면 인근 주민들의 항의는 더욱 거세진다.
그럼에도 업계는 드라마를 제작하려면 새벽 촬영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드라마 제작사는 제작비를 절감해야 수익을 올릴 수 있기 때문에 인건비부터 줄이게 된다. 이렇다 보니 현장 인력이 부족해지고 제작진들은 촬영 일자를 줄이기 위해 하루에 최대한 많은 장면을 촬영한다.
이런 제작 환경에서 새벽 촬영은 늘어나게 되고, 현장 스태프들이 인근 주민들에게 사전 양해를 구할 시간도 줄어들거나 사라진다.
하지만 문제는 민원인을 상대해야 할 모든 책임을 촬영 현장의 '저연차 스탭'들이 짊어진다는 점이다.
스마트이미지 제공희망연대노조 방송스태프지부 김기영 지부장은 "촬영 시간이 늦어질수록 주민들이 잠도 못 자고 예민한 상태에 있을 것"이라며 "그런 와중에 스태프들이 항의받게 되면 감정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 지부장은 "많아야 2~3명이 전체 스케줄과 로케이션을 관리해야 하다 보니까 사전 허가를 받고 양해를 안 하고 넘어가는 부분들이 많다"며 "제작사에서 인력을 보충해 관리해야 하는데 애초에 제대로 된 계획을 짜지 않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한 현장 스태프는 "드라마 촬영 현장을 가면 지나가면서 욕하는 사람들이 많다. 제작진은 촬영해야 하니까 연출팀 막내들이 차량을 통제하고 민원인을 상대한다"며 "어린 친구들이 욕을 대신 먹고 있다. 막내 스태프가 민원인에게 "죄송하다" 사과하고 넘어간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새벽 촬영을 할 때 동네 전체를 밝혀야 하는 상황도 있으니까 조명을 쓰고 수백 가지 장면들을 촬영하면 주민들이 솔직히 잠을 잘 수 없다"며 "제작사나 연출부 쪽에서 주민들의 불편함을 알면서도 이런 부분들을 소홀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길거리 촬영을 할 때 구청 등에 사전 허가가 필요 없는 한국과 달리, 미국 할리우드는 '길거리 촬영'을 엄격하게 규제한다.
동의대학교 김대황 영화학과 교수는 "미국은 철저하게 공공기관을 통해 촬영 허가를 받아야 촬영이 가능하다"며 "주마다 법 체계가 다르지만, 미국 할리우드에서는 (사전 허가 없이) 시내에 삼각대를 놔두고 촬영하면 벌금을 내야 한다"고 설명했다.
한국은 문화재, 공원 등 '공공생활장소'로 지정된 곳에서 촬영하려면 사전 허가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길거리, 주택가 등 장소에서는 사전 허가 없이 촬영해도 문제가 없다.
해가 지면 왕래가 없는 조선 왕릉은 관할 기관으로부터 사전 허가를 받아야만 새벽 촬영이 가능하지만, 정작 시민들이 쉬어야 할 주택가에서는 새벽 촬영을 이유로 드라마 제작진이 도로를 통제하거나 공해를 유발해도 민원이 발생하기 전까지 이를 제지할 방도가 없다.
서울 모 구청 관광정책과 직원 E씨는 "법적으로 저희가 촬영을 허가하거나 (제작진들의) 사전 신고를 강제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며 "구청이 촬영을 승인하기보다 미리 발생할 수 있는 민원 사항들을 파악하기 위해서 신고해달라고 요청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울영상위원회(영상위)에서 발표한 '서울촬영매뉴얼'을 살펴보면, '촬영지를 관할하는 기관이 촬영허가와 관련해 그 기준, 절차, 사용료 등에 관한 구체적인 규정이나 법령을 갖춘 경우 그에 따르고,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영상위원회의 업무처리 결과 일반화가 가능한 수준의 내용들을 포함했다'고 정하고 있다.
하지만 촬영지 허가와 관련해 구청 등 관할 기관이 규정을 마련한 경우를 찾아보기 어렵고 영상위에서 정리한 매뉴얼도 강제 사항은 아니라서 제도 정비가 필요하다.
김 교수는 "제작실장, 라인 프로듀서가 미리 주민들에게 허락을 받고 양해를 구하는 작업들을 병행해 나가야 한다"며 현행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