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G(소시에테제네랄) 증권발 폭락 사태 연루 의혹으로 최근 압수수색이 진행된 것으로 알려진 서울 H투자자문사 사무실이 2일 텅 비어 있다. 연합뉴스SG증권발 주가조작 의혹 사건 파장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이번 사태를 촉발한 구조적 문제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장기간에 걸친 신종수법에 속수무책으로 당한 금융감독 시스템과 사태의 진원지로 거론되는 차액결제거래(CFD) 점검, 증권범죄에 대응할 현실적 방안 등이 요구되고 있다.
다단계식 증권범죄···구멍난 금융 감시 시스템
증권가에서는 이번 사태를 미리 막을 수 있는 '경고'가 곳곳에서 나왔음에도 단기적인 주가 급등락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는 금융감독시스템이 문제였다는 지적이 나온다.
SG증권발 사태로 폭락한 8개 종목(대성홀딩스·선광·삼천리·서울가스·다우데이타·세방·하림지주·다올투자증권)은 지난 3년 동안 최대 1000% 넘게 올랐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대성홀딩스는 2020년 2월 24일 7550원(최저가)에서 지난 3월 30일 13만 9000원(최고가)으로 1741.06% 급등했다. 선광은 1625.18%, 다우데이타는 1220.53%, 삼천리는 863.24% 폭등한 것으로 나타났다.
스마트이미지 제공장기간에 걸쳐 올랐지만 회사의 실적과 대비하면 이례적인 급등이었다. 하지만 거래소는 해당 종목에 대해 시황 변동과 관련한 조회 공시 요구를 하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아울러 금융위원회는 매도 폭탄이 터지기 전인 4월에 주가조작 제보를 받았지만 금감원에 관련 제보가 접수되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이 제보가 접수되었음에도 금융위 관계자들이 방관한 부분에 대해 '직무유기'를 의심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서울 남부지검과 금융당국은 이번 사건을 '폰지'(다단계 금융범죄) 형식으로 진행된 신종 사기로 보고 조사 중이다. '큰 손' 자금을 모집해 차액결제거래(CFD) 계좌를 활용, 장기간에 걸쳐 주가를 끌어올리는 등의 수법이 치밀했다. 타깃 역시 코스닥 테마주가 아니라 대주주 지분이 높고 거래량이 적은 우량 가치주였다.
CFD, 금융당국도 경고했지만 사실상 '방치'
최근 SG증권발 폭락 사태로 드러난 주가조작 의혹과 관련해 금융감독원이 키움증권에 대한 차액결제거래(CFD) 검사에 착수한 가운데 3일 오후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키움증권 본사의 모습. 연합뉴스무더기 하한가 사태의 진원지로 지목되고 있는 CFD란 현물 주식을 보유하지 않은 상태에서 기초자산의 진입가격과 청산가격 간 차액을 현금으로 결제하는 장외 파생상품 거래다.
CFD가 인기를 끌었던 이유 중 하나는 레버리지(차입)를 일으켜 거래할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증거금률에 따라 최대 2.5배 레버리지 투자가 가능해 주가가 오르면 수익률도 커진다. 하지만 정해진 증거금률을 유지하지 못하면 반대매매를 통해 강제 청산된다. 정부가 2019년 11월 개인 전문투자자 지정 요건을 완화해 투자자 문턱이 낮아지면서 CFD거래가 급증했고, 증권사들도 CFD 고객 유치 과정에서 현금 지급 이벤트 등을 펼치며 과열됐다.
앞서 이같은 상황에서 금감원은 CFD의 부작용을 보고서를 통해 경고하기도 했다. 금감원의 '2022년 자본시장 위험 분석보고서'에는 "증권사의 공격적인 영업으로 CFD 시장 과열 우려가 있고 주가 변동성 확대 시 CFD 거래의 레버리지 효과 등으로 투자자 손실 발생 소지가 있다"고 위험 요인이 명시됐다.
이어 "개인전문투자자 등록은 증가했으나 전문투자자 전환에 따른 영향 등에 대한 이해도가 전반적으로 부족해 불완전판매로 인한 투자자 피해 발생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또한 "주가 변동성이 확대될 경우 CFD 거래의 레버리지 효과 등으로 투자자 손실 폭이 일반 주식 투자 대비 증가할 소지가 있다"고 경고했다.
금융당국 스스로 위험성을 경고했지만 개선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번 주가조작 사태가 일어난 것이다. 당시 일찌감치 제도 개선에 착수했다면 이번 사태가 쉽게 일어나지는 않았을 것이란 비판이 일고 있는 이유다. 적어도 '가치주'라고 잘못 판단한 개인 투자자들이 투자 '막차'를 타는 등의 피해는 최소화할 수 있었을 것이다.
주가조작 사건 초기 이복현 금감원장은 이와 관련 사전 탐지가 되지 않았다는 비판에 "활동력 있는 시장의 움직임에 대해 범법자 내지는 위법의 시각으로 볼 수 없다"며 선을 그었다. 그러나 사태가 커지자 금융위는 "신속한 조사를 통해 관련자들의 시세조종 수법, 공모 여부 등을 명백히 밝히고 CFD 제도 개선이 필요한 부분은 철저하게 보완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주가 변동에만 초점을 맞춘 후진적인 감시 시스템의 한계를 보여준 것"이라면서 "이번 SG사태의 경우 금융당국의 부적절한 대응과 증권사들의 경쟁적인 성과주의에서 비롯된 문제"라고 비판했다.
尹 "증권 범죄와의 전쟁"…실질적인 인력 등 보강은 전무
스마트이미지 제공주식시장의 개인투자자가 증가하고 일평균 거래대금이 늘어나는 등 활성화되자 윤석열 정부는 국정과제로 '증권범죄 대응 강화'를 약속했다. 하지만 국정과제임에도 아직 인력 및 시스템이 미비하다는 것이 금융당국 안팎의 평가다.
한 금융당국 관계자는 "증권범죄 대응을 위해 파격적인 인력 충원도, 시스템 보강도 없었다"면서 "이대로라면 추후에 또다른 주가조작 사건이 일어나도 막을 수 없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증권범죄에 대한 처벌이 한층 더 강화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금융당국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증시에서 105건의 불공정거래가 있었는데, 평균 부당이득 금액은 약 46억원으로 집계됐다.
하지만 이에 대한 검찰의 불기소율은 55.8%에 달했고, 기소되더라도 40.6%는 집행유예로 풀려난 것으로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