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과 시민이 주도한 4·19 혁명. 문화재청 제공 학생과 시민이 중심이 된 반독재 민주화 운동인 '4·19 혁명'과 조선 민중이 주도한 '동학농민혁명' 관련 기록물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Memory of the World)이 됐다.
유네스코는 18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216차 집행이사회에서 한국이 신청한 '4·19혁명 기록물'과 '동학농민혁명 기록물'을 세계기록유산에 등재하기로 최종 결정했다.
문화재청은 2021년 11월 유네스코에 '4.19혁명 기록물'과 '동학농민혁명 기록물' 세계기록유산 등재신청서를 제출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국제자문위원회(IAC)가 두 기록물에 대해 등재를 권고한 바 있다.
우리 문화유산이 세계기록유산 대표목록에 이름을 올리는 건 2017년 등재된 '조선왕실 어보와 어책' '국채보상운동 기록물' '조선통신사 기록물' 이후 약 6년 만이다. 우리나라는 1997년 첫 등재된 훈민정음·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해 총 18건의 세계기록유산을 보유하게 됐다.
문화재청에 따르면 4·19혁명 기록물은 1960년 독재정권을 무너뜨린 학생 주도의 민주화 운동과 관련한 자료 1019점을 모은 것이다. 1960년대 세계 학생운동에 영향을 미친 기록으로 인정받았다.
이 기록물은 1960년 2월 28일 대구에서 열린 학생집회부터 3.15 부정선거에 반대하기 위해 1960년 4월19일 열린 대규모 시위까지 이승만 대통령(1948~1960)의 퇴진을 이끌기까지 혁명의 원인과 전개 과정, 혁명 직후의 처리 과정을 보여주는 기록유산으로 국가기관과 국회·정당의 자료, 언론 기사, 개인의 기록, 수습조사서, 사진과 영상 등으로 구성됐다.
무엇보다 독재에 맞서 비폭력으로 민주주의를 이룬 역사적 기록으로서, 당시 무고한 학생과 시민 186명이 사망했고 6천여 명이 부상했다. 고등학생부터 대학생, 시민들은 끝까지 저항하며 민주 정부의 열망을 실현했다.
이런 점에서 제3세계에서 최초로 성공한 비폭력 시민혁명이자 유럽의 1968년 혁명, 미국의 반전 운동, 일본의 안보 투쟁 등 1960년대 세계 곳곳에서 일어난 학생운동에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를 받았다.
4·19 혁명 기록물 자료(왼쪽)와 동학농민혁명 관련 기록 자료인 전봉준 공초(1895). 문화재청 제공 동학농민혁명 기록물은 세계사적으로 격변기였던 19세기 조선 백성들이 주도한 자유·평등·인권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지향했던 근대적 전환기를 보여주는 혁명의 기록들로서 그 중요성을 인정받았다.
총 185점으로 이뤄진 이 기록물은 1894~1895년 일어난 동학농민혁명 당시 조선 정부와 동학농민군, 농민군의 진압에 참여한 민간인, 일본공사관 등이 생산한 자료들로 구성됐다.
동학농민혁명은 부패한 지도층과 외세의 수탈과 침략에 맞서 평등하고 공정한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민중이 봉기한 사건이다. 한국이 번영된 민주주의로 나아가는 발판을 놓았으며, 유사한 외국의 반제국주의, 민족주의, 근대주의 운동에 영향을 줬다.
그 과정에서 동학농민군은 전라도 각 고을 관아에 치안과 행정을 담당하는 민·관협력기구인 '집강소'를 설치하는 성과를 거뒀다. 이는 19세기 전 세계에서 유사한 사례를 찾기 힘든 신선한 민주주의 실험으로 평가받았다.
한편, 북한이 신청한 천문도인 '혼천전도'(渾天全圖)도 이번 이사회 논의를 거쳐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됐다. 1790년에 간행된 무예 교본인 '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에 이어 총 2개 종목의 세계기록유산을 보유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