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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생계를 위한 수단이 아니라 우리 삶 자체야"[책볼래]

책/학술

    "책은 생계를 위한 수단이 아니라 우리 삶 자체야"[책볼래]

    동네 책방을 그리워하는 이들을 위하여

    문학동네 제공 문학동네 제공 

    리빙스턴 씨의 달빛서점


    이 책을 집은 이유는 순전히 책방과 사람 이야기여서다. 백화점처럼 대형화된 서점이나 온라인 서점에서 책을 쉽게 고를 수 있는 요즘 동네 책방을 찾아보기 힘들다. 가끔 관광지나 특색 있는 지역에서 간혹 만날 수 있는 아담한 책방들이 있는데 앤틱한 외관에 끌려 들어갔다가 좁은 공간에서 서점 주인과 마주치는 눈길 교환이 부담스러워 마음 편하게 책을 펼쳐보지 못한 기억이 떠오른다.

    "내 거친 생각과 불안한 눈빛과 / 그걸 지켜보는 너 / 그건 아마도 전쟁 같은 사랑 / 난 위험하니까 사랑하니까 / 너에게서 떠나 줄 거야" -너를 위해(임재범)

    책방은 동네 주민들이 사랑방처럼, 도서관처럼 이용하기도 하고 새로 입고된 책을 추천받거나 필요한 책은 주인에게 주문해서 구하던 때가 있었는데 급속한 발전과 함께 이런 모습은 우리 곁에서 멀어진 지 오래다. 하지만 거리를 좁히려는 시도는 이어지고 있다. 조금만 시간을 내면 사랑방 같은 책방을 찾을 수 있다.

    스페인 작가 모니카 구티에레스 아르테로가 쓴 '리빙스턴 씨의 달빛서점'은 무뚝뚝하고 퉁명스럽지만 속정 깊은 서점 주인 리빙스턴씨가 운영하는 영국 런던 템플지구에 위치한 고즈넉한 서점에서 주인공과 주변 인물들이 책과 서점, 문학이라는 공간과 연결고리를 갖고 각자의 이야기를 풀어가는 힐링 장편소설이다.

    앤틱한 주인공의 달빛서점은 캄캄한 밤에는 2층 천장으로 달과 별을 볼 수 있는 감성적인 공간으로 변하며 상상력을 자극한다.

    매년 스크루지상 후보에 거론될 정도로 성격이 까칠하지만 서점을 찾는 손님들과 책 속 글귀로 이야기하는 괴짜 리빙스턴씨. 책을 좋아해 서점에서 살다시피 하는 미래 우주비행사가 꿈인 꼬마 올리버를 친구로 받아들인다.

    스페인 바로셀로나에서 고고학을 전공하고 런던에 일자리를 구하러 왔다가 우연히 찾은 달빛서점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 아그네스, '반지의 제왕' 시리즈를 쓴 톨킨 작품 출간을 꿈꾸는 작은 출판사 사장이자 리빙스턴씨와 연인 사이인 시오반, 월요일 오후마다 서점을 찾아 환불해달라고 요구하지만 돌아갈 때 더 많은 책을 사가는 드레스덴 부인, 파란색 스탠드 밑에 앉아 매일 글쓰기를 하는 상주작가, 리빙스턴씨의 조상인 탐험가 리빙스턴 박사의 사라진 탐사 일지를 찾기 위해 수사하는 존 록우드 경감. 모두 달빛서점을 중심으로 희망을 이야기하는 원천 인물들이다.

    서점을 찾는 손님들의 취향을 간파해 책을 골라내는 리빙스턴씨의 목소리를 통해 셰익스피어부터 찰스 디킨스, 루이스 캐럴의 작품을 비롯해, '해리 포터' '반지의 제왕' '셜록 홈스' 시리즈 등 영국을 대표하는 문학작품이 등장한다.

    사람보다 책을 더 사랑한 리빙스턴씨는 '운 좋게 발견한 좋은 책 한 권이 한 사람의 운명을 바꿔놓을 수 있다'(마르셀 프레보), '꿈을 꾸기 위해서 굳이 눈을 감을 필요는 없다. 책을 읽는 것으로 충분하다'(미셸 푸코) 등의 책 구절을 인용하며 대화한다. 알고 보면 샤이한 그가 자신을 드러내고 진심을 표현할 수 있는 소통의 방법이 책을 통한 대화였던 셈이다.

    또한 템플지구, 코번트가든, 하이드파크, 포트넘앤메이슨, 다이아몬드 주빌리 티 살롱, 세인트팬크러스역, 대영박물관 등 런던의 명소를 소설 곳곳에 묘사한 것은 이 소설을 읽는 또 다른 재미다. 머릿 속으로 그려지는 이 배경들 사이로 잔잔하고 달콤한 로맨스도 흐른다.

    부정적인 사건이나 무리한 긴장감 없이 술술 풀어가는 유머러스한 줄거리와 풍경은 이 소설을 읽는이에게 편안함을 준다. 이어 소소한 동네 책방이 우리에게 안식처이자 사랑방이었다는 점을 깨닫게 한다.

    2017년 스페인에서 독립출판 전자책으로 먼저 출간된 이 소설은 2020년 아마존 전자책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르며 뜨거운 화제를 모았다. 이후 스페인 팽귄 랜덤하우스를 통해 2021년 종이책으로 출간되며 한국을 비롯해 전 세계 10여 개국에 소개됐다.

    진짜 이런 서점이 있을 것 같아 런던의 골목길을 찾아보는 이들도 있겠지만 지금은 아득한, 그럼에도 여전히 살아 있는 우리동네 책방을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독립서점으로도 불리는 동네 책방은 최근 출판계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과 별개로 2022년 현재 1018개소로 2015년(101개) 대비 10배 이상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동네서점 지도(bookshopmap)를 통해 위치와 책방의 특징을 쉽게 찾아볼 수도 있다. 통도사 주변 평산마을에 전직 대통령이 차린 '평산책방'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티키타카' 정겨운 동네 책방 이야기 '리빙스턴 씨의 달빛서점'을 통해 독자들이 서점과 책, 그리고 사람에게 한걸음 더 다가설 수 있을 것이다. '필굿(Feel Good)' 소설을 찾아.

    "돈을 많이 벌려고 책을 파는 게 아니잖아. (…) 책은 생계를 위한 수단이 아니라 우리 삶 자체야. 언제부터 삶이 금전적 이익을 가져다주었지?" (37쪽)

    "필굿 소설이라는 게 정확히 뭐죠?"
    "주인공들이 절대 골치 아픈 일을 겪지 않는 소설이에요. 특별한 사건이 거의 일어나지 않고 주인공은 대단한 영웅과는 거리가 멀죠. 사소한 일들과 더없이 일상적인 것들에서 행복을 찾아가는 이야기랄까……" (135쪽)


    모니카 구티에레스 아르테로 지음ㅣ박세형 옮김ㅣ문학동네ㅣ308쪽ㅣ1만 6천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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