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버들이 생방송을 통해 이른바 간팔이 방송(술먹방)을 하고 있는 장면이다. 테이블에 수십 개의 술병이 놓여 있고, 채팅창 하단에는 '채팅하려면 로그인' 버튼이 활성화 돼 있다. 방송 제목은 '현금 1000만 원 죽음의 술먹방 ㄱㄱ(고고)'이다. 독자 제공 태국 음란방송 논란으로 현지 대사관의 경고와 경찰 수사가 이어졌지만, 여전히 한국 유튜버들의 도를 넘은 행태가 국내·외에서 되풀이돼 빈축을 사고 있다.
천태만상으로 변질되고 있는 인터넷방송을 근절하기 위해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신체 노출·마약 연출…'간팔이'에 극단 선택까지
28일 CBS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석 달 전 한 한국 남성 유튜버가 태국 유흥업소 여성들과 음란 생방송을 해 논란에 휩싸인 이후에도 유사한 형태의 '막장 방송'들이 유튜브 채널을 중심으로 계속 이뤄지고 있다.
시청자들이 녹화한 제보 영상을 보면, 속옷만 입은 한국 남성 유튜버 A(30대)씨는 태국 여행을 소재로 한 생방송에서 주점을 배경으로 노출이 심한 차림의 현지 여성들과 부적절한 신체 접촉을 반복한다.
이어 소파와 침대 등이 놓인 곳으로 이동한 A씨가 선정적인 행동을 지속하는 과정에서 여성의 특정 신체 부위가 가림막(패치) 없이 노출됐다. 나체 상태로 침대에 누운 그의 뒷모습도 그대로 드러났다. 방송 시점은 이달 초쯤인 것으로 전해졌다.
유튜버들의 도를 넘은 방송은 음란물에 그치지 않았다. 마약을 흡입하는 것으로 보이는 장면이나 여러 개의 술을 병째 들이켜는 모습 등 시청률을 끌어올리기 위한 극단적 소재로 무분별하게 변질되는 양상이다.
또 다른 유튜버 B(30대)씨는 필리핀에서 인터넷 생방송을 하면서 물담배 형태의 기구로 특정 물질을 흡입하는 장면을 연출했다. 함께 출연한 현지 여성은 어눌한 한국어로 "마약 리틀 여기"라며 종이에 담긴 가루를 기구에 넣었다.
이후 B씨는 방송에서 "경찰 오면 레전드인데 이게 무슨 맛인지 모르겠고, 여기가 어디냐"며 횡설수설을 이어갔다. 얼굴이 붉게 상기된 그는 풀린 눈으로 손에 20㎝가량 되는 단검을 쥔 채 과장된 몸짓을 하며 괴성을 지르기도 했다. 그러고는 실시간 댓글을 확인하며 "방송 끄냐? 후원해줄거냐? 안 해주면 방종(방송종료)하겠다. ○○라"라고 소리치고 방송을 마쳤다.
유튜버들의 막장 방송은 국내에서도 마찬가지다. 다수의 인터넷방송인(BJ)들이 그룹을 만들어 가학적으로 음주 행위를 하는 일명 '간팔이' 방송(술먹방)이 성행 중이다. 이들의 주무대는 경기도 부천 지역인 것으로 알려졌다.
시청자의 후원 금액에 따라 지명된 BJ가 실시간으로 뚜껑을 딴 뒤 병째 또는 맥주잔 등으로 단숨에 마시는 방식이다. 이런 집단 음주 방송 녹화물 중에는 복부에 큰 수술자국이 있거나 입 주변에 토사물이 묻은 인물 등이 바닥에 쓰러져 있는 장면도 담겨 있다.
이들과 술먹방을 함께 해오던 한 유명 여성 BJ는 비속어와 성희롱 발언 등이 오가는 방송에 출연한 이후, 돌연 자택 화장실에서 유서를 남기고 극단적 선택을 하는 현장을 중계해 논란이 확산하기도 했다.
유튜브 이용자인 직장인 박모(40대)씨는 "몰상식한 일부 유튜버들이 외국인을 무시하는 태도로 음담패설과 음란한 행위를 일삼으며 나라 망신을 시키고 있다"며 "나라 안팎에서 계속 활개를 치다가 범죄에 연루되거나 아이들 교육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우려했다.
심의도 자율규제도 '무기력'…탈세 의혹까지
이처럼 자극적인 방송들은 대부분 로그인 절차를 거치지 않고 누구나 시청 가능한 콘텐츠였다. 어린 미성년자들도 얼마든지 볼 수 있었다는 얘기다.
이에 대한 신고가 접수되더라도 음란물로서의 위법성 유무를 판단하기 모호하다는 이유 등으로 심의 당국이 제재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점도 문제다.
실제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는 두 달여 전 접수된 한국인 유튜버의 음란·혐한 유발 생방송 관련 민원에 대해 "신고된 내용만으로는 관계법령에 따른 위반 사항을 입증하기 위한 증거가 불충분하다"며 "추가적인 증거자료가 있을 경우 이를 첨부해 다시 신고해 달라"고 지난 5일 답변 처리했다.
방심위 입장에서는 특정 신체 부위 노출과 성행위 묘사 등에 관한 음란물 규정을 두고 상황에 따라 조치 하고는 있으나, 밀려드는 민원 건수가 많아 처리에 어려움이 따를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실제 방심위의 '통신 심의 통계'에 따르면 심의 항목은 성 관련 사안(음란·성매매·디지털성범죄)이 최근 5년간 연간 평균 8만 8천여 건으로 가장 큰 비중(4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 관계자는 "정보통신에 관한 심의규정 8조의1 등에서 음란물의 구체적 내용을 규정하고, 위반되면 접속 차단이나 링크 주소 이용해지 조치가 이뤄진다"면서도 "정보가 워낙 방대해서 처리를 하는 데 힘든 부분은 있다"고 말했다.
애초 유튜브 등 인터넷방송 사업자는 심의 규정이 엄격한 방송법이 아닌 전기통신사업법의 적용으로 '자율 규제' 방침을 따르고 있는데, 이는 업체의 자정 의지에 의존하는 만큼 콘텐츠를 통제하는 데 사실상 제 효과를 내기 힘든 것으로 풀이된다.
유튜버 등 BJ들은 방송으로 돈을 버는 데 목적을 둔 데다, 플랫폼 사업자들 역시 이들의 수익 일부를 수수료로 벌면서 규제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는 구조이기도 하다.
지난 태국 내 음란 방송 사태와 관련해 당시 유튜브 코리아 측은 "가이드라인과 실시간 모니터링으로 적절히 조치했다"고 밝혔을 뿐, 문제가 된 개별 채널에 대한 조치 사항과 구체적인 재발 방지 대책은 내놓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 생방송 화면에 계좌번호를 띄워 많게는 수 백만 원씩 시청자로부터 입금을 유도하면서, 세금이나 기존 온라인 후원 포인트 등에 붙던 수수료를 피해 수익을 현금화하는 '탈세'와 '불법 환전' 의혹도 가시지 않고 있다.
위험천만한 소재의 자극적 방송을 근절하려면 이 같은 제한없는 수익 창출 방식부터 바로잡아야 한다는 관측도 있다.
한 세무업계 관계자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입금이 이뤄졌으니 소득으로 볼 수 있고 소득신고를 하는 게 합법적이다"라며 "정확한 금액과 수입이 발생한 과정 등에 관한 증거들로 신고가 돼야 탈세 여부를 조사할 수 있는데, 단 범죄수익으로 몰수되면 과세 및 탈세 여부와는 무관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적발 시 사업자에 경고, 심의 체계 선진화"
경기남부경찰청. 연합뉴스무분별한 인터넷방송과 그에 따른 피해를 막으려면 자율 규제에 의존하기보다 적발 시 사업자에게 즉각 경고하고 시정 요구를 하는 등 강경한 사후 조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이를 위해 국내 심의 기관의 영상물 모니터링 체계를 확대·개선하고 올바른 인터넷 이용문화를 증진하기 위한 교육과 캠페인도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뒤따른다.
한국사이버감시단 공병철 이사장은 "해외에 서버를 뒀을 경우 문제의 방송 링크가 우후죽순처럼 생기면 심의 기구가 직접 삭제하는 게 쉽지 않아 놓치는 게 생길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유튜브 등 업체 측에 강력하게 경고하고 적절한 조치가 취해지도록 유도하는 게 효율적이다"라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까다로운 심의를 거치느라 콘텐츠를 제재하는 데 제한이 따르는 만큼 모니터링 시스템이나 심의 절차 등을 선진화할 필요도 있다"며 "보다 정화된 환경 속에서 인터넷방송이 소비되고 재생산될 수 있도록 디지털 리터러시 교육을 대중화하고 공익광고도 활성화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앞서 CBS노컷뉴스는 태국 현지 한국 유튜버들의 음란 방송 실태를 단독 보도했다. 이후 사회적 논란으로 번지면서 국내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국격 훼손'에 대한 비판 여론이 들끓었고, 주태국 한국대사관은 국가 간 갈등 우려와 불법 행위에 따른 피해에 관한 홈페이지 공지를 띄웠다.
사태를 인지한 경기남부경찰청은 태국에서 음란 방송으로 물의를 일으킨 한 남성 유튜버에 대해 정보통신망법상 '음란물유포' 혐의로 정식 입건하고 수사 중이다. 경찰 관계자는 "대상자를 특정하고 판례 검토 등을 거쳐 수사 중"이라며 "자세한 사항은 말해줄 수 없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