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아버지가 한국 전쟁에 참전했다가 돌아가셨다는 걸 최근에야 알게 됐습니다. 이제라도 언제 어디서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알게 돼서 다행입니다. 죽기 전에 꼭 아버지 유골이 있는 한국에 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북아프리카 모로코에서 처음으로 확인된 6·25 참전용사의 유족인 프테탐 엘 아스리(81) 씨는 28일(현지시간) 국내 언론 중에서는 처음으로 연합뉴스와 인터뷰에 응했다.
아스리 씨의 아버지는 6·25 전쟁에 유엔군 프랑스 대대의 일원으로 참전했던 모하메드 벤 카두르 라스리(당시 병장 또는 병하사· 실제 이름은 무흐 벤카두르 엘 아스리)씨다.
라스리씨는 1951년 3월 5일 1037고지 전투 중 왼쪽 허벅지에 총상을 입고 전사했으며, 유해는 부산 유엔 공원에 안장돼 있다.
주모로코 한국대사관이 10년간의 확인 끝에 지난해 라스리 씨를 포함한 모로코 참전용사 8명의 존재를 처음으로 공식 확인한 데 이어, 유족을 찾는 후속 작업 중 처음으로 그의 딸 아스리 씨를 찾아냈다.
그렇게 어느 날 갑자기 잊고 지냈던 아버지를 통해 한국과 인연을 맺게 된 딸은 4살 때 입대한 뒤 돌아오지 못한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다고 했다.
아버지가 이역만리 한국 땅에서 전사했다는 사실도 최근 자신을 찾아온 모로코 보훈처에서 전해 들었다고 한다.
그는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얘기를 처음 들었을 때는 너무 어려서, 죽는다는 게 그냥 먼 곳을 여행한다는 걸로 이해했다. (철이 들고 죽음의 의미를 이해한 뒤에는) 아버지가 다시 돌아오지 못한다는 걸 알게 됐고, 외국 어딘가에서 돌아가셨을 것으로 추정만 했다"고 말했다.
머나먼 한국 땅에서 아버지가 전사한 뒤 아스리 씨는 찢어지게 가난한 가정에서 평범하지 않은 유년 시절을 보냈다.
어머니가 재혼하면서 조부모 손에 맡겨진 그는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제대로 된 교육도 받지 못했고 조혼 풍습에 따라 14살에 시집을 갔다.
결혼 후에도 평생을 일만 하며 살아왔다는 아스리 씨는 현재 모로코 수도 라바트에서 동쪽으로 약 150여㎞ 떨어진 메크네스 외곽에 거주하고 있다.
팔순이 넘은 나이에도 공예품 등을 만들어 팔며 생계를 유지하고 있지만 궁핍한 가정형편은 여전하다고 했다.
그는 "평범한 유년 시절은 아니었다. 먹고 살기 버거웠고, 조부모님은 나를 너무 일찍 시집 보냈다. 결혼한 후에도 일했던 기억밖에 없다"고 지난날을 회상했다.
모로코 보훈처는 지난해 11월 국가보훈처 차장을 비롯한 한국 정부대표단이 현지를 방문해 참전용사 발굴 및 보훈 지원 협의를 한 뒤 본격적으로 유족 찾기에 본격 착수했다.
그러나 유족을 찾는 일은 산 넘어서 산이었다.
아스리 씨의 경우 이사를 하면서 전입신고를 안 하는 바람에 고향 마을을 시작으로 추적에 추적을 거듭했다.
몇달간의 노력 끝에 아스리 씨의 소재를 알아냈지만,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는 데다 유품도 남아있지 않아 확인 작업에도 애를 먹었다고 한다.
천만다행으로 아스리 씨가 간직해온 한장의 흑백 사진이 모로코 내 첫 참전용사 후손을 찾는 단서가 됐다.
아스리 씨는 이렇게 어려운 절차를 밟아가며 자신을 찾아준 한국에 감사의 뜻을 표했다.
그는 "70년도 더 지난 일을 잊지 않고 아버지와 나를 찾기 위해 노력해준 한국 정부가 정말 고맙다"고 했다.
한국 정부는 정전 70주년을 맞는 올해 7월 아스리 씨와 그의 딸의 초청을 추진했다.
그러나 모로코 당국의 여권 발급이 지체되면서 모녀의 한국 방문은 오는 11월께나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고 주모로코 한국대사관측이 밝혔다.
아스리 씨는 "아버지가 어디서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모르고 살아왔는데 안장된 곳을 알게 돼 기쁘고 가슴 벅차다"라며 "생전에 마지막으로 꼭 한국에 가서 아버지를 뵙고 싶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단 한 번도 외국에 가 본 적이 없어서 두렵기도 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