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후우울증을 겪었던 남 씨의 집안 풍경. 아이의 장난감 등 육아용품이 가득하다. 정혜린 기자▶ 글 싣는 순서 |
①북적이는 집에서 사랑 넘치는 8남매…"서로 가장 좋은 친구" ②평균 출산율 3명인 교회…"아이 함께 키워준다는 믿음 덕분" ③다섯 남자아이 입양한 부부…6형제가 만드는 행복의 모양 ④부모는 슈퍼맨이 아니야…'같이 육아'로 아빠도 배운다 ⑤"내 자식 같아서" 온정 전하는 아버지들…"돌봄친화 사회로 이어져야" ⑥신생아 '1만 명' 만난 베테랑 의사가 말하는 '산부인과 의사생활' ⑦"나부터 먼저" 대한민국 1호 민간 출산전도사가 된 회장님 ⑧"아이는 공동체가 함께" 교회가 시작한 돌봄…부산에도 퍼지나 ⑨"한 지붕 아래 이모, 삼촌만 20명 넘어" 돌봄공동체 '일오집' ⑩"아이 가지려는 귀한마음, 비수로 돌아오네"난임여성 고군분투 임신기 ⑪초저출생 위기, '가임력' 높이는 냉동난자 지원 정책 고민해야 ⑫자발적 양육 공동체 '우가우가'…부산에 퍼져나간 돌봄의 가치 ⑬'노키즈존? 예스키즈존!' 아이 반기는 사회 분위기 조성해야 ⑭엄마 2명 중 1명 겪는 '산후 우울감'… 사회가 보듬어야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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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후우울증으로 한 엄마가 아이를 바닥에 던졌다는 기사를 본 적 있어요. 당연히 행동 자체가 나쁘단 건 알지만 그 엄마가 어떤 마음이길래 그렇게까지 했을까 심정이 이해가 가서 슬프더라고요"산후·육아우울증 부르는 고립 속 '독박육아'
부산 해운대구에 사는 이모(37)씨는 6년 전 첫 아이를 혼자 돌보며 일상이 깊은 수렁 속으로 빠진 것 같았다고 설명했다. 결혼과 동시에 타지 생활을 시작한 이 씨는 가족·친구들과 떨어져 출산과 육아를 겪으며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다.
이 씨는 "아이와 감정적 교류도 전혀 없이 아이가 울면 그냥 울음을 멈추게 하기 급급했고, 모든 게 다 싫고, 귀찮았다"며 "출산으로 일을 그만두고, 또 아이를 맡길 곳이 없어 재취업에 여러 번 실패하면서 뒤처진다는 열등감과 박탈감도 심해 더 우울감이 심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김 씨와 아이 모습. 김 씨 제공비슷한 처지의 김모(31)씨 역시 육아 과정에서 심각한 우울감을 겪었다. 김 씨의 경우 아이가 신생아였을 때는 친정과 남편과 육아를 함께 해 큰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 하지만 군인 신분인 남편의 상황 때문에 가족과 떨어져 타지에 지내면서 그야말로 '독박육아'에 처하게 되자 우울감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김 씨는 "일주일 내내 혼자 아이를 돌보면서 자기 주장이 생긴 아이와 부딪히는 상황이 너무 벅차고 힘들었다"며 "우울감이 생기면서 무기력증이 굉장히 심해졌고, 청소와 요리 등 해야 할 일을 못 하는 날들이 늘었다"고 말했다.
또 "감정 기복이 심해져 '화장실 가고 싶다'는 아이의 말에도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짜증이 솟구치기도 했다"며 "아이의 미운 점만 보이고, 작은 실수에도 화를 참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자 남편이 병원 상담을 권유하기도 했다"고 토로했다.
김 씨를 더욱 괴롭혔던 건 죄책감이었다.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과 육아 스트레스를 동시에 느꼈고, 아이에게 화를 냈다는 자책감에 괴로워하기를 반복했다. 모든 게 자신이 부족한 탓 같다는 생각이 김 씨를 더 힘들게 했다.
엄마 2명 중 1명은 "산후 우울감 겪었다"
보건복지부의 '2021년 산후조리 실태조사'에 따르면 산후 우울감을 경험한 비율은 2021년 52.6%로, 2018년에 비해 2.3%p 증가했다. 정혜린 기자보건복지부의 '2021년 산후조리 실태조사'에 의하면 출산 후 산후 우울감을 경험한 비율은 52.6%로, 무려 절반이 넘는 엄마들이 우울감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2018년과 비교했을 때 2.3%p 증가한 수치로 5년 간 우울감을 느끼는 엄마들이 늘어난 상황이다. 출산 1년 뒤까지 발현되는 산후우울증뿐 아니라, 육아 기간에 겪는 각종 우울감까지 포함하면 그 비율은 훨씬 더 클 것으로 추정된다.
전문가들은 '안정적인 지지체계가 없는 고립된 육아 상황'에서 이러한 산후·육아 우울감이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한다.
신수미정신건강의학과의원 신수미 원장은 "주변의 지지가 부족하고, 돌봄을 함께 해줄 사람들이 없는 열악한 상황에서 '독박육아'를 하다 우울감이 심해지는 경우가 많다"며 "아이와 단둘이 있는 고립된 환경에서 벗어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최근엔 대부분 여성이 직장생활을 하다 출산으로 일을 쉬거나 그만두게 되면서 스스로 뒤처진다는 열등의식과 무능감을 느끼기도 한다.
신 원장은 "육아나 집안일은 아무리 해도 직장처럼 실적으로 나타나지 않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으니, 스스로 의미 있는 일을 하지 않는다는 생각에 많이 힘들어한다"며 "또 자신이 엄마로서 아이를 잘 키울 수 있을지에 대한 큰 부담과 불안을 느끼는 경우도 많다"고 설명했다.
우울감이 2~3주 이상 지속되면 심각한 우울증으로 발전할 수 있지만, 이 경우에도 실제로 치료를 위해 병원이나 상담센터를 찾는 경우는 극히 일부다.
신 원장은 "전체의 17%가량 산후우울증이 나타나는데, 실제로 치료받는 비율은 1%가 채 되지 않는다"며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면 아이와 애착 관계 형성도 어려울뿐더러 출산·육아 트라우마가 남을 수 있다"며 전문적인 진단과 치료를 강조했다.
우울감 극복 위해 전문적·체계적 지원 필요…'전문상담센터' 확대해야
난임과 임신과 출산, 육아 과정에서 우울증을 겪는 산모들에게 전문적인 상담을 지원하는 중앙 난임·우울증상담센터 내부 모습. 중앙난임·우울증상담센터 제공신 원장은 산후·육아 우울증이 단순히 개인과 가정만의 문제가 아니라며 사회적으로 큰 관심과 제도적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산후우울증을 한번 심하게 경험한 여성은 다시는 아이를 낳지 않는다"며 산후우울증이 여성 개인의 삶과 가정에도 고통을 줄뿐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인구 감소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정부와 지자체도 지역 거점 전문상담센터를 설치하거나 지역 보건소에서 임산부를 대상으로 우울증 위험군 검사를 실시하는 등 대책을 내놓고 있다.
특히 보건복지부가 2018년 도입한 '난임·우울증 전문 상담센터'는 난임과 산전 후 우울증을 겪는 부부에게 전문적인 상담을 제공해 이용자가 크게 늘고 있다. 전문 상담센터의 도움을 받은 부모는 첫해 109명에서 다음 해 3227명으로 30배 이상 증가했다. 이후 매년 4천 명 넘는 부모가 전문 상담센터 지원으로 우울감을 극복하고 있다.
하지만 전국에 상담센터가 단 6곳에 불과하고, 이 가운데 절반은 수도권에 집중된 상황이다. 비수도권 지역은 대구와 경북, 전남에 각 1곳뿐인데, 부산과 경남에는 전문 상담센터가 단 한 곳도 없다. 이 때문에 전문적이고 안정적인 지원을 위해 상담센터를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신 원장은 "주기적인 상담과 지원이 필요할 경우 전문 상담센터로 연계해야 하는데, 부산에는 한 곳도 없어 서울 중앙센터로 연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하지만 서울까지 가서 상담받기가 어렵고, 전국적으로 지원 요청도 많기 때문에 대기가 길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지자체와 정부가 시행 중인 '아이돌봄서비스'나 '시간제 보육사업' 등 돌봄 지원 사업도 '독박육아'로 인한 산모의 고립을 예방하는 대책이 될 수 있다. 아이와 분리돼 기분을 환기하는 것이 육아 우울감 극복에 필수인 만큼 지자체가 아이 돌봄을 맡아주는 '지지체계'가 되어주는 것이다.
신 원장은 "육아 환경이 열악하고 고립될수록 우울감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며 "이 경우 돌봄서비스 등 지자체의 지원이 절실하기 때문에 상황에 따라 더 유연하고 길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