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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끝작렬]좋은 전쟁이 나쁜 평화보다 나쁜 이유

기자수첩

    [뒤끝작렬]좋은 전쟁이 나쁜 평화보다 나쁜 이유

    편집자 주

    노컷뉴스의 '뒤끝작렬'은 CBS노컷뉴스 기자들의 취재 뒷얘기를 가감 없이 풀어내는 공간입니다. 전 방위적 사회감시와 성역 없는 취재보도라는 '노컷뉴스'의 이름에 걸맞은 기사입니다. 때로는 방송에서는 다 담아내지 못한 따스한 감동이 '작렬'하는 기사가 되기도 할 것입니다.

    이재명 '더러운 평화론'에 여당은 '이완용' 소환하며 날선 비판
    아무리 포장해도 전쟁은 '악'…옛 현인들도 '상처뿐인 승리' 경계
    식민지배는 그 자체로 악…전쟁과 평화와 비교할 대상 못 돼
    키케로도 "부당한 평화가 전쟁보다 낫다"했지만 노예상태와는 구분

    연합뉴스연합뉴스
    고대 로마의 정치가 키케로는 정의로운 전쟁보다 부당한 평화가 낫다고 했다. 이 격언은 이후 아무리 좋은 전쟁도 나쁜 평화만 못하다는 식의 표현으로 변주돼왔다.

    그런 맥락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최근 "아무리 더러운 평화라도 이기는 전쟁보다는 낫다"고 했다가 여권의 공격을 받았다.

    예컨대 신원식 국민의힘 의원은 이 대표의 발언이 매국노 이완용의 식민지배 정당화 망언과 비슷하다며 "실로 놀랍고도 충격적"이라고 비판했다.

    이완용의 해괴한 궤변을 일단 논외로 한다면, 전쟁보다 평화가 낫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이치다. 전쟁은 악이고 평화는 선이다. 이는 거의 절대적 명제로서 누구도 부인하기 어렵다.

    따라서 그 앞에 무슨 수식어가 붙든 선‧악의 평가는 달라지지 않는다. 설령 '더러운 평화' 이상의 그 어떤 험한 꾸밈말을 갖다 붙여도 평화는 선이며 전쟁보다 낫다.

    다른 측면에서 '좋은 전쟁'이나 '나쁜 평화'는 그 자체로 모순적이기도 하다. 평화라는 '선'은 '악'(나쁜)과 병존 불가능하고, 전쟁이라는 '악'은 '선'(좋은)으로 포장될 수 없다.  
     
    물론 이는 어디까지나 이상주의적이며, 정글과 다름없는 현실세계에선 통하지 않는다. 그러나 국제정치도 단지 힘만으로 해결할 수는 없고 반드시 합당한 명분이 뒷받침돼야 한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나 과거 이라크를 침공한 미국이 비판받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래서 옛 현인들은 상처뿐인 영광인 '피로스의 승리'를 경계했다. 전쟁으로 이득을 얻는 것은 언제나 소수였다.

    한편, 이완용이 일제의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 '나쁜 평화론'을 입에 올렸는지는 확실치 않다. 다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는 키케로의 명제를 교활하게 악용한 것에 불과하다.

    식민지배는 그 자체로 악이다. 또 다른 악인 전쟁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기에 한시바삐 깨부수고 평화라는 선을 회복해야 한다.

    압제의 노예는 절대적 당위로서 무조건 해방돼야 할 상태다. 전쟁이나 평화에 비견될 대상 자체가 되지 못하는 것이다. 100여년 전 있었을지도 모를 이완용의 간사한 혀 놀림에 현혹될 이유가 전혀 없다.

    키케로는 이런 말도 했다. "평화와 노예상태는 큰 차이가 있다. 평화는 평온 속의 자유이지만, 노예상태는 죽음을 무릅쓰고라도 저항해야 할 모든 악 중에 최악이다."

    어쩌면 가장 좋은 전쟁과 가장 나쁜 평화는 종이 한 장 차이일지 모른다. 그럼에도 굳이 '나쁜 평화'를 얘기하는 것은 전쟁은 가능한 피해야 한다는 일종의 강조어법일 것이다.

    하지만 이를 모를 리 없는 정치인들이 한가하게 말 트집 잡기나 하고 있다면 한반도의 미래는 정말 암담하다. 여야가 크게 다르지 않다. 지금이 과연 그럴 때인가 묻는 국민의 탄식이 들리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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