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직된 친강 전 외교부장(왼쪽)을 대신해 돌아온 왕이 외교부장(오른쪽). 연합뉴스한달 넘게 종적을 감췄다 최근 면직 당한 중국 전랑(늑대전사) 외교의 상징 친강 전 중국 외교부장(장관)을 대신해 상급자인 왕이 중앙정치국 위원 겸 중앙 외사판공실 주임이 다시 외교부장으로 돌아왔다.
단명한 친 전 부장과 달리 지난 10년간 외교부장을 역임하며 폭넓은 외교 경험과 국제 인맥을 자랑하는 그의 복귀로 그동안 얼어붙었던 한중관계도 개선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친강 가고 경험.인맥 풍부한 베테랑 왕이 복귀
지난 25일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를 통해 공식 복귀한 왕 신임 부장은 이미 지난 14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열린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 친 전 부장을 대신해 참석하는 등 재임명 전부터 이미 외교부장 역할을 맡아왔다.
이에따라 전세계에서 가장 바쁜 외교장관 가운데 한 명인 중국 외교장관이 아무런 설명도 없이 한달 넘게 실종되면서 혼란에 빠졌던 중국 외교도 왕 부장의 복귀로 빠르게 안정을 되찾아갈 것으로 전망된다.
왕 부장은 지난해 12월말 친 전 부장에게 자리를 물려주기 전까지 10년간 중국 외교부장직을 수행했다. 또, 외교부장에서 물러난 뒤에도 '칠상팔하'(지도부 교체 때 67세는 남고 68세는 퇴임) 관례를 깨고 정치국 위원으로 승진해 당차원의 외교정책 입안을 총괄했다.
그만큼 현재 중국내에서 그보다 다양한 외교 경험과 폭넓은 국제 인맥을 갖춘 인물을 찾기 힘들다는 점이 시진핑 국가주석이 왕 부장을 구원투수로 낙점한 배경이라는 분석이다.
영국 싱크탱크 채텀하우스의 위제 중국 담당 선임 연구원은 "왕이는 10년 동안 중국 외교부를 이끌었고 베이징의 외교 서비스와 정책 우선순위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평가했다.
여기다 친 전 부장의 축출 배경이 권력투쟁의 결과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정치인 출신의 다른 지도부 인사들과 달리 공직생활 전체를 외교관으로 보내 정치파벌이 없다는 점이 그의 재임명에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도 있다.
中 외교노선 큰 변화 없겠지만 보다 안정 찾을 것
왕이 중국 외교부장. 연합뉴스왕 부장 역시 친 전 부장 이전 전랑 외교의 선봉장으로서 이전 세대와는 다른 강경 외교노선을 주도한 인물이라는 점에서 큰 틀에서 중국 외교노선의 눈에 띄는 변화는 없을 것이라는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데이비드 아델만 전 싱가포르 주재 미국 대사는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와의 인터뷰에서 "왕이는 지난 10년 동안의 중국 외교 정책 입안자"라며 "따라서 최근의 변화와 상관없이 중국의 대외정책은 일관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만, 외교 무대에서의 오랜 경험을 통해 상대국에 대한 이해가 높은 그의 귀환으로 중국 외교가 상대적으로 안정될 것이라는 기대가 나오는 것도 사실이다.
전랑 외교의 상징으로 급부상한 친 전 부장의 경우 상대국에 대해 거친 언사로 일관하며 오히려 외교적으로 문제를 키우는 경우가 많았다.
대표적으로 지난 4월 윤석열 대통령의 대만 관련 발언이 나오자 친 전 부장은 한 행사장에서 "대만 문제에 대해 불장난을 하는 자는 불타 죽을 것(玩火者, 必自焚)"이라며 상대국 정상을 상대로 막말에 가까운 비난을 쏟아내기도 했다.
친강 전 중국 외교부장은 지난 4월 21일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란팅포럼 기조연설에서 "대만 문제는 중국의 핵심 이익 중의 핵심"이라며 "대만 문제에 대해 불장난을 하는 사람은 불타 죽을 것"이라고 사실상 윤 대통령의 외신 인터뷰 내용을 정면으로 비난하는 발언을 해 논란이 됐다. 연합뉴스한국 정부의 외교정책을 대놓고 비판한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 등 중국 외교관들이 각국을 상대로 물의를 일으킨 것도 '전랑'의 면모를 뽐내면서 승승장구한 친 전 부장의 행보를 벤치마킹했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 이해도 높은 왕이, 한중관계 개선 이끌까?
당장 왕 부장이 친 전 부장의 역할을 대신하면서 악화일로를 걷고 있던 한중 관계에 미세한 변화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박진 외교장관은 ARF에 친 전 부장을 대신해 참석한 왕 부장과 만나 한중관계에 대해 논의했다. 올해들어 한중간 첫 장관급 회담으로 친 전 부장 재임 당시에 양국간 외교장관 회동은 없었다.
박진 외교부 장관이 14일(현지시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샹그릴라 호텔에서 왕이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과 양자회담을 하기 전 악수를 하고 있다. 외교부 제공
회담 후 우리 외교부는 "양측은 지난해 11월 G20 계기 한중정상회담에서 한중관계를 지속 발전시켜 나가기로 한 정상간 공감대를 재확인하고, 상호존중·호혜·공동이익에 기반해 건강하고 성숙한 한중관계를 만들어 가기 위해 세심한 주의와 노력을 기울여 나가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당장은 아니지만 왕 부장의 방한 전망도 나온다. 앞서 지난해 8월 중국 칭다오에서 열린 한중 외교장관회담 당시 왕 부장은 "자장면을 먹으러 한국을 가겠다"고 말했고, 이에 박 장관도 "한국을 방문하면 나와 같이 북한산 등산도 하고 제일 맛있는 자장면을 함께 먹으면 좋겠다"고 화답한 바 있다.
이와함께 왕 부장 복귀 이후 그동안 답보상태였던 한중일 정상회의 개최 논의도 시작됐다. 왕 부장은 ARF에서 하야시 요시마사 일본 외무상과 만나 정상회의 개최를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019년 12월 중국에서 개최된 뒤 잠정 중단된 한중일 정상회의가 이번에 재개될 경우 한국이 순회 의장국을 맡아 서울에서 회의가 열리게 된다는 점에서 한중관계 개선의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한중관계에 정통한 베이징의 한 소식통은 "한국과 인연이 전혀 없었던 친강과 달리 왕 부장은 한국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인물"이라며 "왕이의 복귀를 한중관계 개선의 기회로 잘 활용해야 한다"고 주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