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전북 부안군 새만금 세계스카우트 잼버리 야영지 내 잼버리 병원 앞에 설치된 현장응급의료소. 연합뉴스약 2주 전 막을 내린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가 폐영식을 한 장소가 전북 부안 야영지가 아닌 서울 상암 월드컵경기장이었다는 점은 행사의 난맥상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전체 참가자 4만여 명 중 단일 국가로는 최다인 4400여 명의 스카우트 대원을 파견한 영국은 이달 4일 가장 먼저 철수를 결정했다. 이후 조직위원회는 태풍 '카눈' 북상을 이유로 참여대원들을 전국 각지로 흩뜨렸다.
"하지만 잼버리의 문제점들은 태풍보다 훨씬 이전에 시작됐다(But the jamboree's problems began long before the storm)"
는 게 BBC의 지적이다. 첫날밤에만 400명이 온열질환을 호소했고, 내내 지적된 화장실 문제는 "보건 위협(health risk)"이었으며 '곰팡이 계란' 등 음식 또한 다양한 문화 배경을 지닌 학생들의 필요를 충족시키지 못했다.
감사원의 감사까지 불러온 이같은 '부실 준비'는 의료대응 영역에서도 여과 없이 나타났다. 행사기간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는
환자 수 전망부터 의약품 구비, 의료인력 운용 등에 이르기까지 '총체적 난국'이었다는 평가다.
먼저 의료수요 예측부터 실제 수치에 한참 미치지 못했다.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간사인 더불어민주당 신현영 의원실이 잼버리조직위원회로부터 확보한 '새만금 제25회 세계스카우트잼버리 의료운영 종합계획'에 따르면, 정부는 3400~5600명 가량의 환자(응급후송 수요 300명 수준)가 발생할 것으로 내다봤다.
'2023 새만금 제25회 세계스카우트잼버리 의료운영 종합계획' 중 의료수요(예측). 민주당 신현영 의원실 제공지난 3일 전북 부안군 새만금 세계스카우트 잼버리 야영지 내 잼버리 병원에서 온열질환자가 치료를 받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하루 평균 환자 480명에, 응급후송은 25명 정도로 예상한 것이다. 판단 근거는 '역대 잼버리'의 데이터였다. 일반적으로 "참가자의 8~13% 가량이 잼버리 내 의료시설을 방문했고, 그 중 5%는 응급질환으로 후송됐다"는 것이다.
새만금과 비슷한 간척지에서 개최된 선례로 주목받았던 2015년 일본 야마구치현 잼버리는 약 3만 4천 명이 참여한 가운데 9.5%(3215명)의 환자가 나온 것으로 파악됐다. 온열환자(Heat related Dis.) 비율은 10.8%로 적지 않았지만 벌레물림(Insect Bites)은 5.1%로 이전 대회(2011년 스웨덴·6.4%)보다 오히려 낮았다.
현장 상황은 조직위의 안이한 예상을 뛰어넘었다. 개막 첫날인 1일에만 400명이 온열질환 증상을 호소했고 개영식인 2일 992명, 3일 1486명 등
초기부터 연일 1천 명 안팎의 환자가 쏟아져 나왔다. 한낮 기온이 30도를 웃도는 '살인적 더위'로 폭염특보가 계속되는 와중에 그늘막과 생수 등도 부족하다 보니 필연적인 결과였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첫 잼버리였고, 아직 유행상황이 완전히 종식되지 않았음에도 이에 대한 준비 역시 미흡했다.
야영장에서는 집단감염으로 며칠 만에 수십 명의 확진자가 속출했다.
조직위가 구성한 의료대응체계는 영내 잼버리병원을 포함해 경증 치료를 위한 허브클리닉(5곳), 과격한 액티비티 등에 대비한 응급의료소(상설 3곳·임시 2곳), 영내 진료가 어려운 환자 치료를 위한 잼버리 협력병원(5곳) 등이다. 이를 통해 호발질환 등에 대한 적정 치료와 응급환자 신속처치가 가능하다고 호언했지만 실제로는 의료인력 및 자원 운용이 전혀 원활치 못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스마트이미지 제공행사 당시 응급의료소에서 환자를 봤던 한 응급의학과 전문의는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내원하지 않은 인원(참여대원 등)도 내원한 걸로 카운트가 됐고 의료인력도 (가용인원 등이) 제대로 파악되고 관리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조직위에서는 약품 등이 다 (잘) 갖춰져 있었다고 하시지만, 사실 (현장에선) '약품이 떨어졌는데 어떻게 해야 되나'란 문제 제기가 계속 올라왔었다"고 부연했다. 또
"수요가 (어느 정도) 예측이 돼야, 또 시간당 몇 명의 환자에게 몇 개의 수액이 처방됐는지가 집계돼야 다음 과정을 준비할 수 있는데 그런 시스템이 없었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회에서 운영된 응급의료소는 즉각적인 최소한의 응급처치를 수행하는 공간이었다. "10·29 이태원 참사 당시 디맷(DMAT·재난의료지원팀)이 이용하는 텐트"와 비슷하단 점을 고려할 때 궁극적으로는 병원으로 이송돼야 하는 환자들이 꽤 있었지만 이 또한 삐걱대긴 마찬가지였다.
잼버리병원에서도 자원봉사를 했었던 이 응급의는 "그럴 스페이스(space)도 없었고 베드(bed·병상)도 없었다"며 "그래서 나온 게 식탁 위에 학생들이 누워있었던 모습"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침상이 부족해 후송된 환자들이 병원 복도에서 수액을 맞는 장면이 목격되기도 했다.
질병관리청의 현장대응팀 일일상황 보고에 따르면,
7월 29일부터 태풍으로 인한 퇴영 직전인 이달 7일까지 새만금 영내에선 누적 8500명의 환자가 나온 것으로 집계됐다. 화상벌레 등 '벌레물림'이 2142명으로 가장 많았고 △일광화상 1433명 △피부병변 1059명 △온열손상 712명 △코로나19 검사 553명(이 중 170명 확진) △상기도 감염 403명 순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조직위가 '재난 및 다수사상자 발생 대비 비상운영계획'에서 온열질환과 관련해 내놓은 대책은 △매일 발생 동향 및 기상청 온열지수 정보 실시간 공유 △필요 시 글로벌리더센터 1층 대강당에 임시병상(150개)·대형선풍기 및 수액걸이 등 설치 △의료인력 추가 투입 △중증환자는 협력병원으로 이송조치 등 다소 평이한 수준의 매뉴얼에 그쳤다.
의료시설 배치. 더불어민주당 신현영 의원실 제공당초 조직위가 현장에 배치한 의료진도 의사 45명 등 176명에 불과했다. 대회를 두 달 앞둔 시점에 확보했던 인력은 100명을 조금 넘는 수준이었다. 매일 예측치의 2배가 넘는 환자들이 밀려들면서, 중증도와 목적별로 분류했던 각 기관의 경계도 무의미해졌다.
결국 전라북도 235명, 민간 102명, 국립중앙의료원 11명, 대한적십자사 6명 등
개영 이후 추가로 투입된 인원만 총 364명이다.
턱없이 모자랐던 의약품은 그나마도 '급조'됐던 것으로 조사됐다. 조직위는 '잼버리 병원 내 의약품 구입' 관련 입찰을 행사가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7월 13~18일 진행했다. 발주에 들어간 의약품 구매 기초금액은 3660만여 원으로 참가자 1인당 1천 원도 되지 않았다.
이후 조직위는 '5번'에 걸쳐 의약품을 추가로 사들였다. 협력병원들에는 비상용 온열질환 치료약품 긴급협조 공문을 보냈고, 전라북도 등에도 수액을 요구한 것으로 파악됐다.
대한의사협회에서 지원차 파견한 한 관계자는 "영내에는 (의료진 등이 충분하니) 들어오지 않아도 된다고 해서 웰컴센터에서 환자들을 진료했다"며 "소량이긴 했지만 의협에서도 부족한 의약품을 지원했다"고 밝혔다.
이어 "비슷한 환경에서 개최한 일본의 경우, 문제가 있기는 했지만 자국 의사회와 굉장히 유기적으로 (의료대응을) 준비했던 것으로 안다"며
"처음부터 (조직위가) 의협과 논의를 했었다면 사태가 이렇게까지 커지진 않았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온열질환은 온도를 낮춰주고 빨리 수분을 공급해주면 해결 가능한 질환"이라며
"(참가자가) 4만 명이면 한 도시가 움직인 거나 마찬가지다. 물론 젊은 친구들이긴 해도 의료 쪽은 아주 보수적으로 꼼꼼히 준비를 했어야 했다"고 덧붙였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 연합뉴스앞서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지난 18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 "조직위가 요청한 대로 의료진과 의료기기를 파견·지원했으나 부족한 면이 있었던 게 사실"이라고 시인했다.
이번 잼버리의 주무부처 수장인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은 지난 25일 관련 현안질의가 예정돼 있던 국회 여가위 전체회의에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