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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홍범도, 박정훈은 왜 이 고초를 당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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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럼]홍범도, 박정훈은 왜 이 고초를 당할까

    고(故) 홍범도 장군,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 연합뉴스고(故) 홍범도 장군,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 연합뉴스
    흔히 퇴임식 때 사람들은 "대과 없이 퇴직하게 돼 감사하다"고 말했다. 젊은 시절, 이런 식의 퇴임사가 그다지 이해가지 않았다. '왜 저런 얘기를 할까'. '퇴임 때 할 말이 그렇게 없나' 하고 고개를 갸우뚱 했다. 하지만 나이 들수록 이 말의 의미를 점점 깊이 깨닫게 된다. '대과 없이 퇴직한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고 누구나 누릴 수 있는 축복이 아닌 것을…
     
    살면서 예상치 않은 그야말로 '해괴한 일들'을 누구나 경험하곤 한다. 이른바 '우연'이라고 통칭할 수 있는, '해괴한 일'은 당사자 의지와 상관없는 일이, 불현 듯 자신의 문 앞에 어둠으로 또는 햇살로 등장하는 것을 말한다. 사람은 자유 의지로 사는가, 아니면 운명에 종속되어 있는가. 고대와 현대 철학은 끊임없이 이 질문을 던져 왔다. 오늘 날 이 질문은 뇌과학 영역으로 확대됐다.
     
    '인간의 운명'이란 무엇일까.
     
    해병대 전 수사단장 박정훈 대령에게 닥친 작금의 상황은 장삼이사가 보기에도 안타깝다. 한마디로 부당하다. 해병대에서 작전 중 군인이 사망했고, 수사단장인 그는 인지수사를 거쳐 해병대 1사단장 등 8명을 과실치사 혐의로 민간경찰에 이첩시켰다. 누가 봐도 있는 그대로 부하 수사관들의 독립적 판단을 존중해 결정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결코 짜깁기나 무리수가 있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최악의 폭염이 맹위를 떨쳤던 8월 어느날, 박 대령은 최초 '집단항명수괴죄'로 입건됐고 종국엔 '항명죄'로 그의 인생 길에서 단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을 구속의 갈림길에 서게 됐다. 그렇게 되었다.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 연합뉴스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 연합뉴스
    최초 수사에서 '충성과 정직'이라는 해병대 정신에 입각해 부끄럼 없이 직무를 수행했지만, '권력의 힘'에 눌려 수사방해를 야기한 국방부 장관과 군에게 오히려 '희생양'으로 내몰렸고 어처구니 없게도 상황은 거꾸로 되었다. 수사를 자문해 준 해군 소속 검사조차 "국방부 검찰단이 수사 자료를 가져가면 수사를 다 처음부터 할 계획이 혹시 있는 건 아닌지 우려된다. 너무 무서운 일이다"라고 걱정 했다니 그 어둠은 크기가 위압적 이었음이 틀림없다.
     
    군 내부 밀실서 행해진 일이었다면 차라리 군의 '불투명성'을 탓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군 병사가 민간 수해지원 작전 중 안전장구도 없이 대낮에 사망했고, 그 책임 규명 또한 국민적 관심사여서 언론이 생중계하다시피 한 사건 아니었는가.
     
    '권력의 힘'이 작용하는 순간, 박 대령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사면초가에 몰렸다. '혐의 사실을 빼라'는 외압을 받자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은 박 대령 조언을 받고 '차라리 국방부 조사본부가 사건을 가져가라'고 건의했다. 그러나 조사본부로 이첩은 없던 일이 되었다. 조사본부는 해병대 수사단과 다른 결론을 내면 위법 시비에 걸릴 것이 뻔했다. 남의 손을 빌려 목적을 달성하고 불법을 자행하면서 자기는 드러내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만약 박 대령이 외압에 굴복하고 이첩 대상자를 바꿨다면 꼼짝없이 직권남용과 공용서류 무효의 교사범으로 몰렸을지 모른다. .
     
    서울 용산구 국방부 청사 앞에 설치된 고 홍범도 장군 흉상 모습. 연합뉴스서울 용산구 국방부 청사 앞에 설치된 고 홍범도 장군 흉상 모습. 연합뉴스
    나라를 잃고 항일 투쟁을 주도했던 홍범도 장군의 '운명'은 또 어떤가. 장군은 1943년 고인이 되었지만 정확히 80년이 지난 2023년, 조국 땅에서 '부관참시'나 다름없는 수모를 당하고 있다. 전직 육사교장은 홍범도 장군이 한때 소련 군에 적을 둔 것을 두고 '회개하지 않았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국권 없는 시기, 1943년에 돌아가신 장군에게 '회개'하지 않았다니, 이 '비정함' 이야말로 장군의 의지와 관계없이 당하는 '우연'이라고 한탄하기엔 말문이 막힌다. '회개'할 나라나 존재했는가?
     
    실존주의 철학은 사람이 태어난 것은 이유와 까닭이 없고, 그냥 (세상에) '내던져졌다'고 말한다. 그냥 내던져졌다는 것이다. 또 스토아 철학은 "어떤 것은 우리에게 달렸고 어떤 것들은 우리에게 달려있지 않다"고 했다. 잘 알지도 못하는 철학을 꺼내든 것은 이해되지 않는 기막힌 일들이 눈 앞에 버젓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글의 동기는 '운명'을 순순히 받아들이라는 것은 결코 아니다. 미몽에 빠져있을 뿐 철학은 깊고 웅숭하다.
     
    스토아 철학자였던 로마의 세네카가 이런 말을 남겼다.  "바람에 수없이 시달리지 않은 나무는 땅에 튼튼하게 뿌리내리지 못한다. 바람에 흔들려야 땅을 더욱 강하게 움켜쥐고 안정적으로 뿌리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고난은 덕을 함양할 수 있는 기회다."

    해병대 명예를 선택한 박 대령에게 힘든 시기 조금이라도 힘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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