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알립니다 |
*인터뷰를 인용보도할 때는 프로그램명 'CBS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를 정확히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저작권은 CBS에 있습니다.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 박재홍> '카레이스키' '고려인' 19세기 중엽부터 광복 때까지 러시아와 구소련으로 이주를 했던 우리 동포들을 이르는 말인데요. 1937년 스탈린의 강제이주 정책으로 중앙아시아 국가들에 주로 거주하고 있는데 약 50만 명에 이르죠. 국내에 체류하는 분들도 약 한 7만 명 정도에 이른다고 하는데요. 최근 불거진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 논란. 우리 고려인들은 어떤 마음으로 보고 계실지, 이 자리에 우즈베키스탄 출신으로 현재는 영화감독으로 국내에서 활동하고 있는 박루슬란 감독을 모셨습니다. 감독님 어서 오십시오.
◆ 박루슬란> 안녕하세요. 박루슬란입니다.
◇ 박재홍> 우즈베키스탄에서 태어나신 거죠?
◆ 박루슬란> 정확히 말씀드리면 그 당시에는 구소련이라는 나라에서 태어났고요. 아시다시피 소련이 91년도에 붕괴돼서 그때는 독립된 우즈베키스탄이라는 나라가 생긴 거죠.
◇ 박재홍> 장소적으로는 우즈베키스탄이고 사실상 소련에서 태어나셨다?
◆ 진중권> 지금은 독립국가연합 속에 들어가 있나요? 아니면 완전히 독립한 건가요?
◆ 박루슬란> CIS라고 하죠. 맞습니다.
◇ 박재홍> 그럼 지금 한국 국적을 갖고 계신 거고요.
◆ 김성회> 언제부터 오신 건가요?
◆ 박루슬란> 저는 97년도부터 왔다 갔다 하기 시작했는데 3년 전에 귀화를 했습니다.
◇ 박재홍> 그러면 부모님 세대가 어떻게 러시아로 이주하게 되셨던 것인지. 할아버지 세대.
◆ 박루슬란> 할아버지 세대 때부터 연해주에서 태어나셔서 1937년 스탈린에게 강제이주를 당하셔서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으로 이주하게 되셨거든요. 그래서 저는 중앙아시아에서 태어나게 된 거죠.
◆ 진중권> 스탈린도 참 멍청한 게 조선인하고 일본인이 서로 원수지간인데. 그걸. . .
◆ 박루슬란> 그러게 말입니까?
◆ 진중권> 일본에 협력할 것 같아서 다 보낸 거 아닙니까?
◆ 박루슬란> 그런데 그게 그렇게 알려져 있지만 또 다른 이유가 있었겠죠?
◆ 진중권> 또 다른 이유가 있나 보죠.
◆ 박루슬란> 저희 고려인들은 이제 좀 다르게 생각을 하는 게 있습니다.
◆ 진중권> 그렇습니까? 궁금하네요.
◆ 박루슬란> 그게 1차, 2차 전쟁 때 러한 전쟁 때는 러시아가 졌잖아요, 일본한테. 그래서 연해주 지역에서, 러시아 지역에서 자꾸 독립운동가들이 많아지니까 일본에서 약간 항의를 했나 봐요, 러시아 정부한테. 그런데 그 당시에 스탈린이 약간 좀 일본 눈치를 본 게 있었어요.
◆ 진중권> 전선을 확대하고 싶지 않았으니까.
◆ 박루슬란> 그래서 이주정책을 고려인들뿐만 아니고 다른 민족들도 많이 보내고 그랬거든요. 왜냐하면 힘 세질까 봐. 그래서 한인 인구가 자꾸 많아지고 또 거기서 약간 영향력이 커지면 자기가 통제를 못할까 봐 중앙아시아 지역으로 이주를 시킨 거죠.
◆ 김성회> 중앙아시아 이주를 했어도 한인들끼리 커뮤니티를 만들어서 사시는 편인가요? 아니면 그 안에 녹아들었다고 봐야 될까요?
◆ 박루슬란> 그게 우즈베키스탄과 카자흐스탄에서 조금 다른 점이 있는데요. 카자흐스탄에서는 아무것도 준비된 게 없었대요. 그냥 11월에 완전 맨땅에다가.
◆ 진중권> 사람들을 그냥 갔다놨구나.
◆ 박루슬란> 갔다 놔서 그냥 땅을 조금 파서 어떻게 겨우 살았는데요. 우즈베키스탄은 조금 시설이 준비돼 있었다고는 하는데. 그때부터는 막 흩어져서 살기도 하고 같이 살기도 하고 막 그렇습니다.
◇ 박재홍> 오늘 모신 게 홍범도 장군에 대한 영화를 준비하고 계신다고 들어서 또 관련 최근 이슈에 대해서 여쭙고자 모셨는데 홍범도 장군 관련된 영화는 어떻게 구상하게 되셨던 겁니까?
◆ 박루슬란> 저는 솔직히 몇 년 전부터 홍범도 장군은 한국에서는 영웅이고 한국 사람이라고 생각을 하잖아요. 그게 사실이기도 하고. 그런데 저희들한테 고려인이기도 하거든요. 왜냐하면 저희 할머니, 할아버지들이랑 똑같은 백그라운드예요. 실제로도 카자흐스탄에서 말년을 보내셨고. 그래서 저희들은 항상 저희랑 똑같은 사람이다라고 생각을 하고.
◇ 박재홍> 똑같은 사람이다?
◆ 박루슬란> 독립운동을 했다라는 건 당연히 누구나 다 알고 있었고. 그래서 저희가 2년 전에 유해봉환에 대해서 알게 됐었을 때 솔직히 여러 가지 의견이 있었어요. 저희 사회에서도.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그런데 그래도 이제 조국에 돌아가서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인사할 수 있게 도와주자라는 설득을 해서 그렇게 허락을 해 준 거거든요.
◆ 진중권> 카자흐스탄에서 굉장히 섭섭한 일이잖아요.
◆ 박루슬란> 섭섭하지만 의미가 좋은 일이잖아요. 솔직히 그게 옳은 일이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다들 누구나 알고 있었어요. 하지만 그래도 '좀 지금까지 모르다가 왜 이렇게 늦게 와서 이렇게 하려고 하느냐? 가만히 계시고 지금 쉬고 계시는데' 그 면에 대해서 조금 섭섭한 게 아마 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서울=연합뉴스) 김인철 기자 = 국방부가 육군사관학교 교내뿐 아니라 국방부 청사 앞에 설치된 고(故) 홍범도 장군 흉상에 대해서도 필요시 이전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힌 28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 청사 앞에 설치된 고 홍범도 장군 흉상 모습. 2023.8.28 yatoya@yna.co.kr 연합뉴스◇ 박재홍> 그렇군요. 그래서 관련 영화 구상하고 계시고 아직 제작은 들어가지 않은 상태이고.
◆ 박루슬란> 이게 아무래도 독립영화가 아니고 큰 영화라서 큰 투자도 필요하고 솔직히 여러 가지 작업이 필요해서. 장기간을 가지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 김성회> 구소련이라는 지역에 거주하셨던, 중앙아시아 거주하셨던 분들 사이에서, 고려인들 사이에서 홍범도 장군님이 예전부터 유명한 분이셨습니까?
◇ 박재홍> 영웅이시죠? 고려인들 사이에서는.
◆ 박루슬란> 그렇죠. 그런데 그게 좀 아셔야 될 게 저는 고려인 4세거든요. 그러니까 저는 한국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다가 당연히 한국어를 알지도 못했고 저희 부모님조차도 한국어를 하나도 못하셨어요.
◇ 박재홍> 부모님도 3세셨으니까?
◆ 박루슬란> 그래서 1988년 이후에 서울올림픽 이후에 '아, 한국이라는 나라가 있구나?' 그래서 그때부터 저는 어린 심정으로 정체성에 대해서 고민을 하기 시작하면서 그때부터 저는 우리가 왜 이 땅까지 어떻게 오게 되었는지 고민하기 시작해서 그때 홍범도 같은 사람에 대해서도 공부하게 되었고요. 그런데 구소련이니까 학교에서 가르쳐주지는 않습니다. 따로 배우지 않아서.
◇ 박재홍> 그렇군요. 그러면 고려인들 사이에서는 홍범도 장군님이 어떻게 기억되고 계신가요?
◆ 박루슬란> 독립운동가.
◇ 박재홍> 독립운동가. 그런데 최근에 뉴스에 굉장히 많이 나오시지 않습니까? 감독님도 보실 텐데. 육군사관학교 교정 내에 흉상이 있었는데 지금 여러 가지 논란으로 철거해서 다른 곳으로 독립기념관으로 옮겨야 된다, 여러 가지 이전 논란이 있습니다. 고려인들이 보시기에 이런 논란 어떻게 듣고 계십니까? 어떤 심정이세요? 감독님 생각은.
◆ 박루슬란> 솔직히 저는 오늘도 여기 오면서 그 생각을 제일 많이 한 것 같습니다. '차분하게 해야지, 냉정하게 하자' 너무 이거에 대해서 저도 약간 좀 감정적으로 나오면 안 될 것 같아서.
◇ 박재홍> 있는 그대로 보여주셔도 됩니다. (웃음)
◆ 박루슬란> 그래서 일단은 저는 많은 고려인들은 어떻게 생각하실지는 모르겠지만 추측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당연히 욕을 하겠죠, 속으로.
◇ 박재홍> 속으로.
◆ 박루슬란> 왜냐하면 말도 안 되는 일이기도 하고. 그리고 이게 솔직히 홍범도 장군도 홍범도 장군이지만 약간 한국 사회에서 고려인을 바라보고 있는 시각. 마찬가지예요. 그러니까 약간 모욕하는 그런 게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2년 전에 그렇게 그렇게 큰 이벤트를 해서 모시고 왔는데 이제 와서 '어? 외면한다' 이거 말이 안 되지 않습니까?
◇ 박재홍> 정권이 바뀌었다고 해서?
◆ 박루슬란> 그래서 그게 이해하기가 좀 쉽지는 않죠, 고려인들한테.
◆ 진중권> 우리도 이해하기 힘들어요. (웃음) 대통령이 왜 저러시는지.
◆ 박루슬란> 그래서 다른 분도 아니고 홍범도 같은 위대한 영웅을 이렇게 지금 하고 있다라는 게 솔직히 할 말이 많은데 여기서 다 하기에는 시간도 부족할 것 같고.
◆ 김성회> 그래도 위대한 영웅이지만 소련 공산당에 가입했기 때문에 그렇게 위대한 영웅은 아닌 것 같다라고 보수정권이 방향을 틀려고 하는 것 같아요.
◆ 박루슬란> 그런데 제 생각에는 이게 한국에서 한국 시각으로 봤으면 당연히 그렇게 보일 수도 있어요. 하지만 이 연해주라는 구역이 그 당시에 한국은 아니었어요. 그러니까 남의 땅이잖아요. 남의 구역이고.
발언하는 우원식 이사장 (서울=연합뉴스) 한종찬 기자 = 홍범도장군기념사업회 이사장인 더불어민주당 우원식 의원이 7일 국회 소통관에서 독립전쟁 영웅 흉상 철거 백지화를 위한 한민족 100만인 서명운동 선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3.9.7 saba@yna.co.kr (끝) 연합뉴스◇ 박재홍> 남의 정부고.
◆ 박루슬란> 거기는 정부가 다른 정부고 당연히 다른 규칙이었을 거 아니에요? 그리고 영향력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을 거예요. 거기 계시던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눈치를 받겠어요. 여러 사람들한테. 그런데 거기서 그냥 가만히 있는 게 아니라 독립운동을 해야 된다. 전쟁을 해야 된다. 수많은 저희가 알지도 못한 그런 디테일들이 있었을 거라고 저는 생각하고 있는데요.
그런데 당연히 그 나라가 가지고 있는 분위기라든지 정치 방향이라든지. 그때는 또 레닌이 완전히 열정적으로 활동했을 때라서. 당연히 수많은 사람들이 무슨 군인들이 자기 땅에서 뭔가를 하고 있는 것을 가만히 보고 있겠어요? 당연히 자기 본인들도 보내고 많은 일들이 있었을 거라고 저는 생각을 해요. 그리고 그 당시에 연해주에 있던 독립운동가들 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러시아 정교회 믿기 시작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어요. 그런데 그게 갑자기 '어, 정말 이제부터 저는 진정한 신앙을 만났어요'라기보다는 그 당시 분위기가 그랬으니까요.
◇ 박재홍> 그 환경에 살기 위해서, 그 문화이니까?
◆ 박루슬란> 마찬가지로 공산주의도 당연히 어떤 종교보다도 제일 먼저 아마 그것에 대해서 고민을 하기 시작을 했을 거고요. 거기서 어떤 행동을 해야 되는지 아마 파악을 하고 그런 여러 가지 행동을 하지 않았을까. 그렇다고 해서 그 사람들이 진정한 공산주의자였다? 저는 그렇게 볼 수는 없어요. 말이 안 돼요. 왜냐하면 저도 공산주의 체제 때 태어났잖아요. 저희가 어렸을 때부터 지금 북한에서 학교에서 하는 빨간색 스카프 있잖아요. 개척자라는.
◆ 진중권> 피오녜르.
◆ 박루슬란> 피오녜르라고 그때 다 그랬어요. 제가 공산주의자라고 한 게 아니라.
◇ 박재홍> 옷이 그래서 입은 것이죠. 학교에서 교복이니까.
◆ 박루슬란> 오히려 그게 얼마나 불편했는지 왜냐하면 그거 항상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다림질해야 되고 그거 깨끗하지 못하면 엄청 욕먹어요, 선생님한테. 그러니까 어쩔 수 없이 그런 세상이니까 거기서 제가 혼자서 '아, 저 이렇게 안 살래'라는 사람은… 특별히 남의 땅에서 와서 이방인들이 거기서 자기 목소리를 낼 수가 없었을 거라고 저는 생각을 해요.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이 모든 사람들이 다 공산주의자들이었다고 하기가 말이 안 되는 거죠, 솔직히.
◆ 진중권> 그러니까 이해력 떨어지는 이 사람들 때문에 온 사회가 이걸 다 설명을 해야 되나? 굳이? 무슨 시간적 낭비인가 생각하고 이승만도 그때 뭡니까? 소련 공산당한테 밀사 보내고 그러던 시절 아닙니까?
◇ 박재홍> 당시에 항일 무장투쟁을 하려면 현실적으로 중국과 구소련 영토에 근거지를 두고 활동을 해야 됐기 때문에 또 홍범도 장군도 역시 1922년대에도 자신의 입국 목적을 기록할 때 '고려의 독립'이라고 썼고 당에 가입한 거 없다라고 안 쓰셨던 그런 기록이 남아 있는 거잖아요. 당시에 홍범도 장군의 마음속에 조국의 독립밖에 없었다. 그런 과정에서는 그런 모든 걸 이해하는 것은 그러한 방향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는 거 아닐까요?
◆ 박루슬란> 맞습니다. 고려인들 중에서도 특별히 약간 좀 공산당에서 열심히 활동하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 박재홍> 개중에 있기는 있었다?
◆ 박루슬란> 있었어요. 그런데 그런 사람들에 대해서 많은 기록이 남아 있어요. 그런데 홍범도 장군에 대해서는 그런 기록이 전혀 없어요.
◆ 진중권> 보통 좌익 활동했던 사람들은 대부분 다 인텔리들이 많았거든. 맑스도 있고 레닌도 있고. 그런데 홍범도 장군 같은 경우는 서민 출신이거든요. 사실 교육도 많이 못 받았고.
◆ 박루슬란> 맞습니다.
◆ 김성회> 그리고 공산당이 돼서라도 독립을 위해서 싸웠으면 그냥 독립군인 거지, 그 사람이 공산당이지만 공산당이 아닌 걸 입증해야 된다는 거 자체도. 30년대라는 역사의 틀 안에서는 있을 수가 없는 일이에요.
◆ 진중권> 피카소도 공산당이에요. 피카소도 프랑스 공산당이고 르네 마그리트도 벨기에 공산당이고 그다음에 아인슈타인도 사회주의자고 헬렌 켈러도 사회주의자이고 다 빼면 뭐 남아.
2018년 3월 1일 서울 육군사관학교에서 열린 홍범도 장군 등 독립전쟁 영웅 5인 흉상 제막식 모습. [연합뉴스 자료사진] 연합뉴스◇ 박재홍> 전시회 기획하고 계시는 분은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1921년 자유시 참변 또한 홍범도 장군과 관련해서 많이 언급되는 역사이기도 한데 감독님도 자유시 참변 역사에 대해서 알고 계신 게 있으신지?
◆ 박루슬란> 많은 자료를 보고 있습니다.
◇ 박재홍> 그러시군요. '거기서 홍범도 장군이 독립군 죽음에 연관이 있다 또 그렇게 주장하면서 홍범도 장군이 영웅으로 돼서는 안 된다' 이렇게 주장하시는데.
◆ 박루슬란> 그게 참 말이 안 되는 게 홍범도 장군은 어떻게 그렇게 수많은 사람들을 혼자서 막 학살하고 뭔가를? 저는 그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도 그렇게 영향력이 크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같은 한국 사람들이잖아요. 그렇다고 다들 대단한 사람들끼리 모였잖아요. 그런데 이게 한국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사람이 있는데 자유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이 있는데 이름이 되게 어려워요. 네스토르 칼란다리시빌리. 그분이 스탈린처럼 조지아 출신이시고. 그 사람이 공산주의자 아나키스트였어요. 전에 범죄자였기도 하고. 그 사람 지시대로 그런 학살이 벌어졌다라는 그런 얘기가 있거든요.
◇ 박재홍> 그러니까 자유시 참변에 대해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백과사전에 제시된 정의는 '독립군과 레닌의 적군이 교전한 사건' 이렇게 되어 있고 지금 말씀하신 그분이 레닌의?
◆ 박루슬란> 그런데 그 사람이 약간 뭐랄까. 전에 아나키스트니까. 약간 좀 개인적인 그런 생각이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뭐냐 하면 본인이 공산주의자로서 대한민국 땅에 들어가서 한국 군대를 이용해서 나라를 해방시키고 공산당으로 만들겠다라는 욕심이 있었더라고요. 그래서 이것은 나라 독립을 위해서 싸우는 게 아니라 자기 목적이 분명히 있었어요. 그런데 결국에는 그 사람이 1년도 안 지나서 죽었는데 어쨌든 그 사람이 또 중요한 거지, 홍범도 장군이 아무런… 거기에 있었는지도 모르겠고.
◆ 진중권> 사건 당시에 없었어요. 다른 데 있었어요.
◇ 박재홍> 저도 찾아보니까 주류 역사학계의 공통된 해석은 '홍범도 장군이 당시 자유시 참변에서 정보를 몰랐다는 것이고 달리 말하면 참변에 개입되지 않았다'는 것이 주류사학계의 정설인데 과연 이 논란이 옳은 것이냐? 이런 문제가 나오고 있는 것이죠. 그런데 또 흉상 이전 주장하시는 분 중에는 '해방 후까지 살아계셨으면 한국전쟁이 벌어졌으면 북쪽에 가담하지 않으셨겠냐?' 이렇게 또 주장해서 흉상을 이전해야 한다, 이렇게까지 주장하시는 분이 있거든요. 감독님은 이러한 주장에 대해서 어떻게 보고 계십니까?
◆ 박루슬란> (웃음) 솔직히 있지도 않은 일에 대해서 '만약에 뭐 그렇게 됐으면 어떻게 됐을 거다'라는 거는 좀 솔직히 그것에 대해서 저는 뭐라고 대답을 해야 될지 잘 모르겠고. 다만 동기에 대해서 좀 생각을 하자면 예를 들어서 전쟁터에서 구소련에서 많은 전쟁을 했잖아요. 저희가 또 어렸을 때부터 전쟁에 대해서 되게 많이 배웠거든요.
그러니까 전쟁할 때는 예를 들어서 여러 가지 민족, 여러 가지 사람들, 여러 가지 패턴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같이 합쳐서 싸우러 가잖아요. 그러면 예를 들어서 여러 사람들이 나갔는데 종교가 다 달라요. 그러면 그 사람들이 자기 종교를 위해서 싸우는 게 아니잖아요. 나라를 위해서 국민을 위해서 싸우고 있잖아요. 그런데 그게 지금 홍범도 장군한테 공산당이 싸움의 목적이 아니었잖아요.
◇ 박재홍> 그렇죠.
◆ 박루슬란> 어느 서류에서도 어느 기록에서도 그걸 본 적이 없는데 왜 이 사람이 나라를 지키려고 싸우는 게 아니라, 자기 신을 지키려고 싸우러 나갔다라는 얘기랑 약간 좀 비슷한 얘기인 것 같아요. 그 사람이 지금 나라를 지키려고 하는 게 아니라 뭔가 이상한 생각을 가지고, 자기 종교를 만들기 위해서 나갔다라는 거랑 똑같다고 저는 약간 좀 비슷한 점이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 김성회>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어쨌건 홍범도 장군에 대해서 사람들이 큰 관심이 없었는데 지금 막 차오르고 있는 거 아닙니까? 그런데 그전부터도 시나리오를 이미 쓰고 계셨다고 들었는데 홍범도 장군과 관련된 어떤 이야기들을 영화로 만들고 싶으신 건지도 듣고 싶습니다.
◆ 박루슬란> 저는 이분을 물론 개인적으로 굉장히 존경하고 있지만 이분을 또 과대평가를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 사람은 정말 저희랑 똑같은 그런 사람이었고 인간이었고 저는 그 사람이 살았던 그런 스토리 자체가 되게 영화스럽고 그리고 어쩔 수 없지만 그게 제가 가지고 있는 정체성하고 직접적인 그런 관련을 가지고 있거든요.
그래서 저는 이 홍범도 장군뿐만 아니고 고려인 역사에 대해서 항상 얘기하고 싶었어요. 그것에 대해서 생각 안 할 수는 없고요. 그래서 어떤 한 특정한 인물을 통해서 고려인 역사에 대해서 얘기도 하고, 그리고 또 되게 재미있을 것 같아서 영화답다라는 표현을 저는 쓰고 싶은데 그래서 저는 옛날부터 젊었을 때부터 제가 진짜 이 영화는 돈 된다, 안 된다기보다는 의미가 있어서 꼭 해야겠다, 언젠가는.
◇ 박재홍> 시나리오는 완성되신 건가요?
◆ 박루슬란> 완성된 건 아니고 여러 버전이 있는데. 그게 아무래도 많은 자본이 필요해서.
◇ 박재홍> 자본.
◆ 박루슬란> 그렇죠.
◇ 박재홍> 진 작가님, 자본이 필요하답니다.
◆ 진중권> 자본가한테 물어봐야지 나한테 물어보면 어떡해요. (웃음)
◆ 박루슬란> 영화라는 게 원래 돈이 필요해서 늘 그렇죠.
◇ 박재홍> 오히려 그래서 국민적 관심이 많아진 이 시점이기 때문에 오히려 감독님의 영화 투자자들이나 이런 분들이 관심을 가질 수 있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생각이 되는데.
◆ 박루슬란> 일단은 그런 것 보다는 좋은 시나리오가 나와야 된다고 생각하니까 좋은 시나리오 나오면 언젠가는, 언젠가는 지금은 아니더라도 좋은 영화 나올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합니다.
◇ 박재홍> 그렇군요. 이번 홍범도 장군 흉상 문제 때문에 고려인 사회가 통곡하고 있다, 이런 뉴스도 많이 접했는데 우리 감독님께서 또 고려인들을 향해서 혹시 나누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이 자리를 빌려서 짧게 말씀해 주시면?
◆ 박루슬란> 저는 그냥 이번 일이 되게 안타까운 일이기도 하고 솔직히 우리가 지금 어떤 사람들은 역사를 아무리 왜곡을 해도 과거가 바뀌지는 않잖아요. 그래서 그 사람이 했던 일들이 없어지지는 않는데 다만 현대사는 바뀌고 있는 거죠. 그리고 솔직히 제 바람은 지금 이 결단을 하고, 이 일을 시작한 사람들에 대해서 꼭 좀 역사에 정확한 기록이 남았으면 좋겠습니다.
◇ 박재홍> 지금까지 박루슬란 감독이었습니다. 고맙습니다.
◆ 박루슬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