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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팁이요? 잠깐만, 여기가 미국인가요?"[워싱턴 현장]

미국/중남미

    "팁이요? 잠깐만, 여기가 미국인가요?"[워싱턴 현장]

    월스트리트저널 9월 9일자 지면에 실린 '팁 문화'에 대한 한국인의 반응을 담은 기사. 최철 기자 월스트리트저널 9월 9일자 지면에 실린 '팁 문화'에 대한 한국인의 반응을 담은 기사. 최철 기자 
    미국의 '팁 문화'가 한국에 상륙하면서 소비자들이 갑작스러운 도전에 직면하게 됐다는 외신 보도가 나왔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9일(현지시간)자 지면에 "처음은 호의로 시작하겠지만 결국 나중에는 압박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한국 소비자들의 반응을 전하며 '낯선 문화'에 대한 거부감이 큰 한국 분위기를 묘사했다. 
     
    WSJ은 최근 한국의 택시 호출 플랫폼인 카카오티(T)가 기사에게 팁을 줄 수 있는 기능을 시범 도입하면서 논란이 불거졌다고 말했다. 
     
    카카오티는 택시 호출 서비스를 이용한 고객이 기사에게 최고점인 별점 5점을 남긴 경우, 팁 지불 창이 뜨고 고객이 1천 원, 1500원, 2천 원 가운데 금액을 고를 수 있게 했다.
     
    업체에서는 "이는 고객의 선택 사항일 뿐이고, 실제 팁은 소정의 정산료 등을 제외하고 전액이 기사에게 돌아간다"고 밝혔지만 "택시비도 비싼데 팁까지 내라는 것이냐"는 고객들의 원성이 만만치 않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우버 서비스 이용 고객에서 자동적으로 '기사에게 팁을 주겠느냐'는 메시지가 전달된다. 최철 기자 우버 서비스 이용 고객에서 자동적으로 '기사에게 팁을 주겠느냐'는 메시지가 전달된다. 최철 기자 
    미국의 승차 공유 서비스인 우버(Uber)의 경우, 별점에 상관없이 이용 고객에게 '기사에게 팁을 남기겠느냐'는 메시지와 함께 1불, 3불, 5불을 선택하도록 하고 있다. 다행히 지불 의무는 없기 때문에 '노 팁(No tip)'도 가능하다.
     
    팁에 관대한 미국에서도 우버의 추가 팁 요구는 과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비싼 서비스 요금에 기사에 대한 팁까지 포함된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따로 팁을 요구하니 부당하다고 여기는 것이다. 
     
    미국에서도 팁이 부담스러워 맥도널드·웬디스 같은 패스트푸드점을 찾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이제는 이런 곳도 팁의 사각지대가 아니다. 사실상 '셀프 서비스'인 패스트푸드점에서도 팁을 강요받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한 유명 패스트푸트점의 햄버거. 최철 기자미국의 한 유명 패스트푸트점의 햄버거. 최철 기자
    계산대에 서 있으면 점원이 마지막 단계에서 모니터를 고객 쪽으로 돌리고 시선을 피한다.
     
    모니터에는 '10%, 18%, 25%, 스스로 결정' 그리고 '노 팁(No tip)' 중 하나를 고르도록 돼있다. 점원이 고개는 돌리고 있지만 앞에 떡하니 서있는 상황에서 '노 팁' 버튼을 누르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코로나를 겪으면서 점원에 대한 배려 차원에서 생겨난 '팁 인플레이션'도 고착화됐다. 보통 10%~15%였던 팁이 이제는 최저한도가 15%이고, 15%를 줘도 눈치가 보이는 세상이 된 것이다. 
     
    물가도 비싼데 팁 까지 더해지니 '팁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절로 한숨이 나온다. 
     
    실제로, 워싱턴 DC에서 4인 가족이 점심에 달랑 설렁탕 한 그릇씩을 먹고 20% 팁을 주고 나온다면 지갑속의 11만원이 순식간에 사라진다. 
     
    팁은 영국 귀족 문화에서 시작됐다고 하는데, 한 커피숍에서 '신속한 서비스를 위해서(To Insure Promptitude)'라고 적힌 상자를 놓고 동전을 넣으라고 한데서 앞글자를 하나씩 따와 팁(tip)이란 말이 생겨났다고 한다. 
     
    한국식으로 하면 '급행료' 개념으로, 종종 더 나은 서비스를 받기 위해 한우 고깃집 등에서 점원에게 '1만 원' 정도를 집어주는 것과 유사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제는 추가 서비스 또는 보다 친절한 봉사에 대한 기대 없이 의무적으로 팁을 줘야하는 것이다. 
     
    한국인의 정서상 감사의 마음을 '돈'으로 내라는 것도 마뜩지 않은데, 실제로 금액도 만만치 않아 마음이 무거워지는 것이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는 말처럼 미국에서 살면 '팁 문화'를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하겠지만, 한국에서도 이게 통할 지는 좀 더 두고 봐야할 것 같다.
     
    WSJ도 한국에서 아직은 '팁 문화'가 정착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으며 몇가지 사례를 소개했다. 
     
    서울의 한 유명 빵집에서 최근 계산대 옆에 유리병을 놓아두고 '팁, 마음에 드셨다면'이라는 포스트잇을 붙였다가 봉변을 당했다는 것이다. 
     
    일부 고객이 "이런 가게도 있다"며 해당 빵집의 '팁 유리병' 사진을 온라인 게시판에 올리자, 네티즌들이 "여기가 미국이냐"는 조롱섞인 댓글을 올리기 시작했고 결국 해당 빵집은 '팁 유리병'를 치웠다. 
     
    그러면서 해당 빵집은 "고객들이 마치 해외에 온 것처럼 느끼게 하기 위해 '이국적인 분위기'를 낸 장식이었을 뿐, 실제로 팁을 요구할 마음은 없었다"고 해명했다. 
     
    WSJ은 한국 식당 주인들도 '팁'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드러냈다고 전했다. 
     
    서울의 한 식당 주인은 WSJ에 "팁을 의무화하면 매출이 줄어들 수도 있을 것 같다"며 "손님이 음식을 많이 시키면 그만큼 팁도 많이 줘야하기 때문에 부담감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신문은 한국에서의 팁은 법에 저촉될 소지도 있다고 덧붙였다. 한국의 식품위생법 등에 따르면, 음식점과 기타 서비스 제공업체는 봉사료와 부가가치세를 포함한 최종 가격을 명시한 가격표를 제시해야하고, 가격표대로 요금을 받아야하기 때문이다. 
     
    한편, Opensurvey의 최근 여론 조사에 따르면 한국인 10명 중 7명 이상이 카카오티가 선보인 '택시 팁 제공'에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자 6명중 한명만 이를 지지했다. 카카오티의 팁 시도가 순항할 지는 현재로선 쉽지 않아 보이는 수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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