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의 장모 최은순 씨(왼쪽에서 두번째)가경기도 의정부시 가능동 의정부지방법원에서 통장 잔고증명 위조 등 혐의 관련 항소심 재판을 위해 법정으로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800억원 상당의 개발수익을 얻었음에도 개발부담금을 단 한푼도 내지 않은 '공흥지구 특혜 의혹'의 실체가 검경 수사 1년 9개월만에 드러났다.
개발부담금 '0원'의 비밀은 토사(土砂)였다. 윤석열 대통령 처가 회사는 개발 비용을 부풀리기 위해 공사현장과 토사장의 거리, 반입량을 뻥튀기한 것으로 조사됐다.
경기 양평군은 윤 대통령 처가 회사가 명백한 허위 서류를 제출했음에도 이를 걸러 내지 못했다. 지자체의 검증체계에 구멍이 뚫린 것인지, 담당 공무원이 알고도 묵인했던 것인지는 아직도 풀리지 않은 숙제로 남아있다.
토사 반입 거리·양 늘려 개발 비용 뻥튀기…실체 드러나
지난 2021년 12월 30일 경찰이 윤석열 대통령의 처가 관련 의혹을 수사하기 위해 경기도 양평군청에서 공흥지구 개발사업 관련 자료를 압수수색하고 있다. 연합뉴스CBS 노컷뉴스가 확보한 윤석열 대통령의 처남 김모씨에 대한 검찰의 공소장을 보면 양평군 공흥지구 개발업무의 개발 비용 산정 업무를 총괄하는 용역 업체 관계자는 2016년 5월 30일 김씨를 만나 '개발부담금이 적게 나오게 해 주겠다"고 제안했다.
당시 김씨는 공흥지구 개발업무를 추진하던 ESI&D의 대표이사였다. ESI&D는 윤 대통령의 장모 최은순씨가 설립한 회사로, 2014년 11월 최씨가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난 이후 김씨가 대표이사를 맡았다.
김씨와 용역 업체는 2016년 8월 1일 개발 비용을 부풀리기 위해 공흥지구 공사현장과 약 18.5km 떨어진 사토장에 토사를 운반한 것처럼 서류를 꾸미기로 했다. 여기서 더 욕심을 부려 토사량까지 조작하기로 모의했다.
이들은 곧바로 다음날 범행 계획을 실천으로 옮겼다. 2015년 7월 18일부터 2016년 6월 30일까지 11개월 토사 13만㎡을 18.5km 떨어진 사토장까지 운반했다고 서류를 조작했다.
이후 범행은 더 대담해졌다. 이들은 이정도로는 부족하다고 판단해 반입시기를 2013년 2월 1일에서 2015년 5월 31일까지 2배 가량 늘리고, 토사반입량도 13만㎡에서 15만㎡으로 다시 수정해 양평군에 제출했다.
결국 양평군은 공흥지구 사업으로 798억원의 분양 실적을 기록한 ESI&D에 2016년 11월 개발부담금 17억원을 부과했다가 이의신청을 받고 이듬해 1월 6억원으로, 같은 해 6월 '0'원으로 최종 통보했다.
허술한 허위서류…양평군은 왜 못 걸러 냈을까?
양평군이 0원으로 산출한 ESI&D의 공흥지구 개발부담금 내역. 양평군은 당초 개발부담금 17억 5천만 원을 부과할 예정이었다가 이후 개발이익이 없다며 '0원'으로 확정하고 부과하지 않았다. 강득구 의원실 제공김씨 등이 양평군에 제출한 허위 서류는 '토사 운반 거리 확인서'와 '토사 반입 확인서' 2건이다. 이들은 정교한 포토샵도 아니고, 윈도우 운영체계의 기본 프로그램인 '그림판'으로 서류를 조작했다.
양평군은 그림판으로 만든 허위서류를 토대로 개발부담금을 산정해 '0'원으로 최종 통보했다.
이처럼 허술하게 조작된 서류로 공무원의 눈을 가릴 수 있다면 비슷한 비리가 지금도 전국에 걸쳐 일어나고 있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세수를 좀먹는 토착형 비리에 대한 전면적인 감사가 절실한 대목이다.
지자체의 검증체계에 구멍이 뚫린 것이 아니라면 시행사와 공무원 간의 유착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검찰은 김씨와 공무원의 관계, 허위 서류로 부풀린 개발 비용, 개발부담금이 '0원'으로 변경된 사유 등을 공소장에 명시하지 않았다.
공흥지구의 도시개발 사업기한을 임의로 연기해 준 양평군 공무원 3명도 허위공문서 작성 혐의로 기소됐지만, ESI&D와의 공모·연루 여부는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고 있다. 검찰의 수사가 아쉬울 수밖에 없는 이유다.
경찰의 초동 수사도 아쉽기는 마찬가지다. 당초 경찰은 김씨에 대해 사문서위조, 위조사문서행사 등 두 가지 혐의만을 적용했다.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은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 혐의를 추가 적용했다.
사문서를 위조하고 행사함으로써 세무행정이라는 공무를 방해했는데 이를 뺀 것은 누가 봐도 자연스럽지 않다. 권력의 눈치를 보며 '봐주기 수사'를 했다는 의혹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의혹에 연루된 윤 대통령의 처남, 양평군 공무원이 법의 심판대에 올랐다. 풀리지 않은 마지막 퍼즐을 맞춰 토착형 비리에 경고의 메시지를 던질 수 있을지, 권력의 눈치를 본 보여주기식 기소에 그쳤다는 오명을 쓸지 결과는 법원과 검찰의 손에 달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