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잠' 제작사 루이스픽쳐스 김태완 대표.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스포일러 주의
프랑스 음악·문화 잡지 레 쟁로퀴티블은 칸영화제 비평가주간을 찾은 '잠'을 두고 "첫 번째 영화를 아주 팽팽하고, 긴장되고, 간결하게 연출했다"고 평가했다. 영화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잠'이란 소재를 바탕으로 미스터리한 이야기와 팽팽한 긴장감, 서스펜스를 자아냈다. 그리고 이 모든 긴장과 서스펜스의 중심에는 수진과 현수를 연기한 정유미, 이선균이 있다.
'잠' 제작사 루이스픽쳐스 김태완 대표는 유재선 감독으로부터 '잠' 시나리오를 건네받았을 때부터 자신이 있었다. 그렇기에 유 감독이 캐스팅 '원픽'으로 정유미와 이선균을 들었을 때 "가능하다"고 말할 수 있었다. 시나리오의 힘에 이끌린 배우들은 역시나 김 대표의 기대를 넘어 그 이상으로 완벽하게 '잠'의 시작과 끝을 책임졌다. 둘의 연기를 보며 그는 '어 퓨 굿 맨'의 캐피 중위(톰 크루즈)와 제섭 대령(잭 니콜슨)의 명연기를 떠올렸다.
그러나 "넌 진실을 감당할 수 없어"라고 외치는 제섭 대령과 달리 수진은 어떠한 진실이든 함께라면 감당할 수 있다는, "둘이 함께라면 극복 못 할 문제는 없다"는 단단한 믿음을 갖고 있다. 그런 수진의 믿음은 '잠'의 공포와 긴장감을 높이고, 결말에 이르러서는 관객들에게 각자의 믿음에 따라 다른 해석을 선택하게 만든다. 이러한 것들이 '잠'을 특별하게 만드는 지점이자 김 대표에게 확신을 준 지점이기도 하다. 지난 13일 서울 강남구 루이스픽쳐스 사무실에서 김태완 대표를 만나 유니크한 호러 '잠'의 탄생에 관해 이야기를 들어봤다.
영화 '잠' 스틸컷.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정유미·이선균 아닌 누가 해낼 수 있었을까
▷ 신인 감독의 데뷔작임에도 정유미, 이선균이 주연을 맡아 화제다. 유재선 감독이 캐스팅 원픽으로 정유미와 이선균을 언급하자 가능하다고 말한 것으로 알고 있다. 당시 유재선 감독에게 "당연히 가능하다"고 이야기했을 때는 두 가지 아니었을까 싶다. 그 배우들 아니면 어떤 배우가 할 수 있을까? 갈 수가 있나? 이런 생각이었다. 어차피 두 배우를 못 잡을 거면 이 작품은 들어가기 어려울 수도 있다는 뜻에서 '할 수 있어' '해야 해'라고 이야기했던 것 같다. 시나리오 자체는 자신감이 있었다.
▷ 왜 정유미, 이선균이어야만 했나? 정유미, 이선균이 원픽이었다. 두 배우는 배우로서 연기나 모든 게 톱이다. 더군다나 홍상수 감독님 작품을 통해 같이 호흡한 경험이 많다. '잠'이란 영화가 처음부터 끝까지 두 배우로 가야 하는 영화인데, 두 캐릭터 사이 케미도 변수였다. 여러 작품을 통해 합을 맞춰보고, 서로에 대해 편안해 하는 두 배우가 함께했을 때 정말 큰 변수 하나가 해결된다는 지점에서 두 배우가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영화 '잠' 스틸컷.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 말한 것처럼 '잠'은 이선균과 정유미의 액션과 리액션으로 이뤄진다. 현장에서 혹은 완성된 영화를 본 후 진짜 잘 캐스팅했다고 새삼 느꼈던 순간이 있을까? 3장이었다. 그 장을 보면 '어 퓨 굿 맨'(로브 라이너 감독의 1992년 작품. 의문의 살인 사건을 통해 군 내부의 문제를 폭로하는 법정 드라마. 톰 크루즈, 잭 니콜슨, 데미 무어 등이 출연했다. 각본은 '머니볼' 각본가이자 '트라이얼 오브 더 시카고 7' 감독인 아론 소킨이 담당했다)에서 톰 크루즈와 잭 니콜슨이 한정된 공간에서 말싸움을 한다. 정말 두 사람다운 명연기를 펼치는데, 아론 소킨의 완벽한 각본 안에서 연출까지 더해져서 대단한 폭발력을 보여준다. '잠'의 3장은 그것과 비견된다는 생각도 들었다.
또 한편으로는 '어 퓨 굿 맨'과 다르게 우리 영화는 수진과 현수가 서로 적대하는 관계가 아니다. 두 사람 기저에는 사랑하는 마음이 살아 있다. 그렇기에 여러 가지 레이어의 감정 형성과 표면에 드러나야 하는 대결 구도가 한꺼번에 표현이 돼야 했는데, 그게 두 배우의 호흡이 아니면 어떤 분들이 해낼 수 있었을까 진지하게 생각했다.
배우들에게는 정말 어려운 장면, 어려운 순간의 연속이었을 거 같다. 처음에 시나리오를 필요에 따라 투자자 등 여러 사람에게 공유했을 때, 다들 기대와 우려와 걱정, 궁금증을 가졌던 게 3장이었다. 3장이 어떻게 나올 것인지에 관해 많이 이야기했던 게 기억난다.
▷ 시나리오를 보고 어떤 식으로 영화가 구현되겠다는 걸 머릿속으로 그려봤을 텐데,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잘 나왔다, 이렇게 연출하려고 했었구나 싶었던 장면이 있을까? 다들 대만족한 3장은 논외로 두고, 2장 클라이맥스와 엔딩인 것 같다. 2장의 클라이맥스에서는 수진 캐릭터가 완벽하게 180도 변모해야 한다. 그 지점으로의 전환이 일어나고, 정점을 찍는 순간이 바로 2장의 클라이맥스다. 캐릭터의 변화가 설득력을 갖게 되는 순간, 이야기는 입체적으로 관객에게 소구된다. 우리가 시나리오를 얘기할 때도 3막 구조 중에서 2막이 제일 어렵다고 하지 않나. 그걸 확실하게 구현하는 데 성공했다는 점에서 매우 만족스럽다.
영화 '잠' 스틸컷.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잠'의 열린 결말이 갖는 진짜 매력
▷ 신인 감독의 데뷔작인 만큼 촬영, 미술, 음악 등 제작진을 구성하는 데 있어서도 아무래도 제작자로서 많은 신경을 썼을 것 같다. 가장 중점을 뒀던 점은 무엇인가? '소리도 없이' 홍의정 감독 때도 그렇고 신인 감독과 일을 할 때 가장 신경 쓰이는 게 스태프에게 압도되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다. 그런 지점에서 밸런스가 잘 나오는 인원 조합이면 좋겠다는 것만 신경 썼다. 영화계에 있는 스태프들은 전 세계에서 인정하기 때문에 어떤 분이 왔어도 훌륭한 작품을 만들어 냈겠지만, '잠'의 작품성을 알아봐 주신 분 중에서도 감독이 압도되지 않을 수 있도록 인원 구성에 신경 썼다.
▷ 영화를 본 관객들 사이에서 결말을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 열린 결말을 두고 재밌다는 의견과 허무하다 혹은 약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현재의 엔딩이 가진 장점은 무엇이라고 봤나?
사실 한 번 닫아보면 어떨까 싶어서 닫힌 결말로 수정해 본 적도 있다. 근데 안 되겠더라. 맛이 없더라. 그건 그거대로 사람들이 재미 없어 했을 거 같다.(웃음) 해석의 여지랄 게 '곡성'처럼 몇십 가지로 해석되는 게 아니고, 몇 가지 선택지 안에서 관객이 가져갈 수 있는 주제적인 메시지가 다양할 수 있다는 건 되게 큰 장점이다.
예를 들어 '결혼관'에 있어서 누군가는 결혼은 끝까지 지킬 가치가 있다고, 누군가는 결혼이라는 게 얼마나 허무하냐고 한다. 이걸 우리가 어떤 쪽이 맞다고 하는 순간 오만할 수 있다고 본다. 블라인드 시사를 할 때도 결말 해석에 대한 질문이 있었는데, 비율이 6대 4로 갈렸다. 거의 지금 분위기와 비슷했다. 그래서 그런 지점을 매력으로 봤다.
영화 '잠' 스틸컷.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 '잠'을 제작하며 가장 고민스러웠던 지점 혹은 도전적인 지점은 무엇이었는지 궁금하다.
일단은 코로나다. 그때 정말 하루에 한 번씩 "김 대표도 드라마 해야지"라는 전화를 받았다. 드라마를 준비하지 않았던 건 아닌데, 그때 당시에는 '잠'이라는 걸출한 시나리오도 나왔기에 영화를 해야 했다. 그런데 투자배급사와 이야기해야 하는데 그런 프로세스 자체가 안 밟아지는 거다. 투자 풍토 자체가 얼어붙어 있어서 그걸 극복하는 게 예상 외로 도전이었다. 다행히 롯데엔터테인먼트와 쏠레어파트너스 등 용단을 내려주신 분들이 계셔서 가능했다.
▷ 본인이 생각하는 '잠'의 관전 포인트를 이야기해 달라. 정유미, 이선균 두 배우다. 처음부터 끝까지 두 배우의 시점에서 두 배우의 상호작용을 갖고 가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마음 놓고 두 배우만 쭉 따라가면 영화 안에서 놓치는 건 아무것도 없을 거다. 오히려 호러, 미스터리, 스릴러 등 나름대로 머릿속으로 그리고 있는 상을 대입해서 보려고 하면 배우 연기도 놓치고 이야기도 생각했던 것과 다른 방향으로 흐르는 거에 대해 잡생각이 들 거다. 두 배우의 시점에 몸을 맡기고 쭉 따라가면 100% 영화를 즐길 수 있다.
<제2장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