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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B컷]'천인공노' 범죄자라 해도, 설령 반성 않더라도…

법조

    [법정B컷]'천인공노' 범죄자라 해도, 설령 반성 않더라도…

    편집자 주

    수사보다는 재판을, 법률가들의 자극적인 한 마디 보다 법정 안의 공기를 읽고 싶어 하는 분들에게 드립니다. '법정B컷'은 매일 쏟아지는 'A컷' 기사에 다 담지 못한 법정의 장면을 생생히 전달하는 공간입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지만 중요한 재판, 모두가 주목하지만 누구도 포착하지 못한 재판의 하이라이트들을 충실히 보도하겠습니다

    신림동 등산로 성폭행 살인 사건 피의자 최윤종이 지난 8월 25일 오전 서울 관악경찰서에서 검찰로 구속 송치되고 있다. 류영주 기자신림동 등산로 성폭행 살인 사건 피의자 최윤종이 지난 8월 25일 오전 서울 관악경찰서에서 검찰로 구속 송치되고 있다. 류영주 기자
    천인공노할 범죄를 저지른 피고인이 법정에 섰습니다. 창문 하나 없고, 적막감만 가득해 공기의 흐름마저 느껴지는 듯한 형사 법정에 서면 웬만한 사람이라면 두려움, 아니 최소한 긴장감이라도 느낄 겁니다.

    그런데 이 피고인은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거드름을 부렸죠. 백주대낮에 성범죄를 저지르려다 사람을 살해한 최윤종(30)의 이야기입니다.

    분노가 치밀어 오른 그날의 법정 이야기를 전해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사실상 변호에서 손을 놓은 듯한 모습을 보인, 그래서 재판부의 지적을 받은 국선변호인의 이야기도 전해드립니다.

    의자에 등 기댄 채 방청석 둘러 보며 웃었다   

    서울 관악구의 한 등산로에서 피해자를 살해한 최윤종은 지난달 25일, 첫 공판이 열리는 법정에 섰습니다.

    신기한 무엇이라도 있는지 그는 법정에 들어설 때부터 이곳저곳 시선을 옮기며 마치 구경이라도 온 사람처럼 등장했습니다. 일반적으로 법정에선 피고인에게 채운 수갑을 풀어줍니다. 교도관들은 돌발 행동을 우려해 최윤종에 대한 수갑 착용을 요구하고 재판부도 허용합니다. 그렇게 이날 재판은 시작됐습니다.

    첫 공판이니 만큼 재판부는 최윤종에게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할 의사가 있는지 묻습니다. 최윤종의 장난스러운 태도는 이때부터 시작됩니다.

    2023.9.25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6부, 강간 등 살인 혐의 최윤종 공판기일 中
    재판부 "피고인, 국민참여재판은 국민이 배심원이 돼 유·무죄 판단에 대해서 의견을 듣고 진행하는 것입니다. 미디어 등을 통해 국민참여재판을 접해본 적 있나요?"

    최윤종 "없어요"

    재판부 "미국식으로 배심제를 사용하는 것인데, 동일한 것은 아니고요. 국민참여재판에 의해서 재판을 진행하고자 하는 의사 있습니까?"

    최윤종 "네?"

    재판부 "국민참여재판으로 해서 판사 3명이 아닌 저희가 배심원의 의견을 들어서 진행하는 의사가 있습니까?"

    최윤종 "(의자에 등을 기댄 채) 없어요"

    재판부 "진지하게 고민하고 답하고 있는 것인가요? 이 시점 아니면 더 이상 국민참여재판 신청권이 없습니다. 안 하겠습니까?"

    최윤종 "그거 하면 좋은가요?"

    재판부 "변호인하고 상의해보겠습니까?"

    최윤종 "아, 그냥 안 할게요"


    재판부의 말은 무거웠지만, 최윤종의 답은 한없이 가벼웠죠. 이런 상황은 반복됩니다.



    최윤종은 재판 내내 의자에 등을 기댄 채, 엉덩이는 쭉 뺀 상태로 방청석도 둘러보기도 했습니다. 중간중간 피식 거리며 웃기도 했죠.

    이제 검사가 공소사실을 읽어 내려갑니다. 검사는 최윤종이 이미 올해 4월에 범행 도구인 너클을 구매했고, 평소 범행장소를 물색했다며 이번 범죄는 계획 범죄란 점을 강조합니다. 피해자를 가격하고 성범죄를 저지르려고 했지만, 피해자가 강하게 저항하자 체중을 실어 숨을 못 쉬게 해 살해했다는 것이 검찰의 판단입니다.

    2023.9.25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6부, 강간 등 살인 혐의 최윤종 공판기일 中
    재판부 "피고인, 공소장 읽어 봤습니까?

    최윤종 
    "읽어봤습니다"

    재판부 "변호인 의견은 어떤가요?"

    최윤종 변호인 "인정합니다"

    재판부 "인정 취지입니까?"

    최윤종 변호인 "네"

    재판부 "접견해서 의사 확인했죠? 피고인도 읽어봤죠?"

    최윤종 "뭐, 세부적으로는… 전체적으로는 맞습니다"

    재판부 "어떤 부분이 다른지 특정할 수 있습니까?"

    최윤종 "확실히 살해할 마음이 좀 걸립니다"
    (중략)
    재판부 "살해할 마음을 먹었다는 부분이요?"

    최윤종 "마음을 먹었냐고요? 없었는데 저항이 강해서 일이 커진 것 같아요"

    재판부 "그게 무슨 얘기입니까?"

    최윤종 "기절만 시키려고 했어요. 피해자가 저항이 세서"

    재판부 "저항이 심하니 저항을 억누르려고 기절시킬 의도만 있었다는 말인가요?"

    최윤종 "그러려고 했는데 피해가 커진 것 같아요"

     
    피해자의 저항이 강해서 일이 커진 것 같다는 최윤종의 궤변에 법정은 싸늘해집니다. 재판부도 그게 무슨 말이냐고 되물었죠. 최윤종의 속마음을 알 도리는 없지만, 태도나 말투에서 '반성하고 있다'는 느낌은 전혀 나지 않았죠.

    손 놓은 듯한 국선변호인… 재판부의 질타

    이날 법정에서 주목할 또 하나의 장면은 최윤종의 변호를 맡은 국선변호인의 행동이었습니다.

    앞에서도 봤지만, 이날 법정에선 거의 최윤종이 발언을 이어갔죠. 국선변호인은 너무나 조용했습니다. 마치 변론에 손을 놓은 듯 했죠. 그리고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도 나오죠.

    2023.9.25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6부, 강간 등 살인 혐의 최윤종 공판기일 中
    재판부 "변호인 의견은 어떻습니까?"

    변호인 "(최윤종과) 같습니다"

    재판부 "피고인 의견과 같나요?"

    변호인 "네"

    재판부 "상의한 바는 있습니까?"

    변호인 "아뇨"

    재판부 "접견은 가셨죠?"

    변호인 "아뇨"

    재판부 "왜 안 가셨죠?"

    변호인 "구속영장 청구 때부터 했고…"

    재판부 "구속영장 심문 때는 굉장히 짧게 했잖아요? 그럼 피고인과 영장 심문 이후 따로 논의한 바는 없습니까?"

    변호인 "네"

    재판부 "납득이 안 가네요? 연락은 했습니까?"

    변호인 "안 했습니다"

    재판부 "안 하신 이유가 무엇인가요?"

    변호인 "검찰 증거 제출 이후에…"

    재판부 "무슨 취지죠? 1회 공판기일 이전에 보통 연락하잖아요? 글쎄요… 일단 사건 경중을 떠나서 변호인은 변호인 업무를 하시는 것인데, 제가 알고 있던 변호인들 1회 공판기일 전 업무와는 조금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최윤종의 변호를 맡았지만 그가 구속된 이후에 접견도, 연락도 따로 안 했다는 겁니다. 마땅한 이유도 없었습니다.

    소통도 하지 않았던 변호인은 이날 재판부가 증거 신청에 대한 의견을 줄 수 있겠냐는 물음에는 또 '하겠다'라고 말합니다. 재판에서 어떤 증거를 인정하고, 활용할지 정하는 매우 중요한 절차임에도 변호인은 즉석에서 자료를 보며 최윤종과 대화를 나누죠. 이를 지켜보던 재판부는 중단을 지시합니다.

    2023.9.25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6부, 강간 등 살인 혐의 최윤종 공판기일 中
    재판부 "그러면 증거 신청받으면 증거 의견을 주기도 어렵겠네요?"

    변호인 "하겠습니다"

    재판부 "변호인, 이 사건은 법정형이 사형 또는 무기징역입니다. 알고 계시죠? 지금 이 사건의 중요성, 엄중함 이런 것을 고려하면 피고인의 방어권이 충분하게 보장될 필요가 있습니다"

    "변호인 최종적으로 증거의견을 주기 전에 증거를 열람해야 합니다. 변호인이 피고인 접견도 해야 합니다. 법률적 쟁점, 핵심적 쟁점이 무엇인지 살펴야 하는데 변호인이 하지 않은 걸로 들려요. 1회 공판기일 전에 충분히 소통해야 하는데 그런 점이 이행되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변호인은) 오늘 증거의견 다 동의한다고 주실 수도 있겠죠. 근데 변호인도 따로 연락하지 않고, 목록만 보면서 피고인에게 이야기하는데 이건 적절한 변론이 아닙니다. 오늘 증거의견 듣는 것은 보류합니다"


    국선변호인, 그 직무의 중요함

        
    결국 이날 재판은 이렇게 끝났습니다. 그리고 재판부는 직권으로 해당 국선변호인 선임을 취소합니다. 다른 변호인으로 교체한 것이죠.

    흉악범죄 피고인을 변호하는 것은 참으로 쉽지 않을 겁니다. 감정적으로도, 금전적으로도, 그리고 싸늘함을 넘어서 변호인을 향한 대중의 분노를 온전히 감당해야 할 테니까요. 거칠게 말해 표면적으로는 돈도 안 되고 욕만 먹는 일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흉악범죄 사건 상당수는 국선변호인에게 배당됩니다.

    앞서 여러 '법정B컷' 기사에서 언급했듯이 우리나라 헌법은 변호인 선임을 무척이나 중요하게 여깁니다. 헌법12조 4항은 "누구든지 체포 또는 구속을 당한 때에는 즉시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 다만, 형사피의자 스스로 변호인을 구할 수 없을 때에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가가 변호인을 붙인다"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변호인을 못 구하는 피고인에 대해선 국가가 변호인을 '붙일 수 있다'가 아닌 '붙인다'는 단호함에서 느껴지는 그 막중한 업무를 국선변호인들이 수행하고 있는 겁니다.

    분노가 치밀어 오른 최윤종의 행동이었지만, 그렇다고 재판부의 지적을 받은 국선변호인의 행동도 정당한 것은 아닐 겁니다. 사건의 실체적 진실, 합당한 처벌을 위해 시작된 이날 재판은 예정된 절차를 밟지 못하고 지연됐으니 말이죠.

    33년 만에 이춘재가 진범으로 드러난 '화성 연쇄살인' 사건. 당시 누명을 쓰고 20년 간 옥살이를 한 윤성여 씨는 재판 과정에서 국선변호인이 선임됐지만, 1심부터 최종심까지 국선변호인들의 얼굴을 한 번도 못 봤다고 말합니다. (관련기사 : 화성에는 하루 종일 비가 내렸다 )


    국선변호인이 손을 놓았을 때 벌어질 수 있는 또 하나의 참혹한 일입니다. 흉악범들의 변론을 맡는 일이 죄악시되는 사회가 된다면 억울한 피해자가 발생할 가능성도 그만큼 높아질 수 있습니다. 앞서 본 헌법의 이상은 최윤종과 같은 이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화성 연쇄살인 사건 때처럼 억울한 누명을 쓸 수도 있는 '미래의 피해자'들을 위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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