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영주 기자전세사기 피해자들의 고통은 피해를 당한 데서 끝나지 않고 있다. 맞닥뜨린 현실만으로도 버거운데, 피해자임을 사실상 '증명'해야 하는 또 다른 현실이 전세사기 피해자들을 누르고 있다.
최근 대전에서 열린 대전지역 전세사기 피해자 긴급 간담회에서는 피해자로 인정받기까지의, 또 피해자로 인정받는 데 어려움을 호소하는 목소리 또한 적지 않았다.
지난 4월 전세사기 피해를 입은 A씨. 임대인에게 임차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은 같지만, 한 건물 안에서도 '사기 혐의가 있는지', '단순 미반환인지'가 달리 해석되고 있다고 한다.
임대인이 다른 세입자들에게는 선순위 임차보증금을 속였지만 A씨에게는 속이지 않았다는 것이 이유다.
A씨는 "같은 건물 내에서도 임대인이 선순위를 속인 사람이 있고 속이지 않은 사람이 있는데, 단순 미반환으로 고소된 건은 전부 불송치됐다"며 "보완수사가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결과가 바뀔지는 의문"이라고 토로했다.
이 경우 민사소송을 따로 진행해야 하는데 소송비용부터 여러 면에서 개인이 감당하기에 어려움이 있고 결과가 나오기까지 적지 않은 시간도 드는 실정이다.
간담회에 참석한 또 다른 건물 세입자 역시 "저희 건물에서도 집단 고소를 진행했는데 계약 초기에 첫 번째, 두 번째 전세 계약을 맺었던 분들은 보증금액이 사실과 동일해 안 되고 추후에 민사소송을 진행해야 하는 것으로 들었다"고 말했다.
대전 전세사기 피해자 긴급 간담회. 김정남 기자그런가하면 세입자 B씨는 피해자가 되길 '기다리는' 기막힌 상황이라고 호소했다.
임대인은 이미 재판에 넘어갔고, 임대인과 주변인 소유의 건물 수백 채에서 문제가 불거지거나 예상되는 상황.
같은 양상의 문제가 곳곳에서 반복되고 있지만 전세 만료기한이 아직 남았다는 이유로, 또는 임대인이 여섯 달만 연장해달라는 요청을 받아들였다는 이유 등으로 '피해자가 된 상태'는 아니라며 답답해했다.
B씨는 "만기 도래하면 6개월 뒤에 주겠다, 그것도 안 되면 연장, 그것도 안 되면 감액… 패턴이 같은데 어떻게 이게 피해자 요건이 안 되느냐. 전부 다 똑같이 당했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B씨와 같은 문제를 겪고 있는 세입자 C씨는 "최근 재판에 넘겨진 모 임대인과 관련해 단체 채팅방에 380명 정도가 들어와 있는데 만료일자가 다가온 분들이 20%, 내년에 다가올 분들이 60%에 달한다"며 "아직 문제가 절반도 터지지 않았다는 것이고 내년에 다가오게 될 그런 문제점들에 대해서도 경각심을 갖고 대처해주셔야 한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세입자는 "LH 전세 같은 경우에도 전세사기 문제 때문에 연락을 많이 하는데 담당자들에게서 피해가 확실시되지 않았으니 만기까지는 답변해드릴 수 없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고 한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민주당 전세사기고충접수센터 관계자는 "법상으로는 계약기간과 상관없이 피해자 인정 신청이 가능하고 계약기간 만료가 안 됐음에도 피해자로 인정받은 사례도 있지만, 실제로 상담을 받아보면 계약기간이 많이 남으면 나중에 상담하라는 답변을 듣는 등 여러 차례 지적이 됐음에도 현실에서는 잘 이뤄지지 않고 있는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지난 7월 출범한 대전 전세사기 피해자 대책위원회가 그간 집계·추산한 대전지역 전세사기 피해는 229채 2563가구, 피해금액은 2500억 원에 달했다. 이것은 다수의 세입자들이 언급한 모 임대인 관련 피해는 일부만 포함된 수치라고 대책위는 설명했다. 해당 피해자들은 그 피해금액만 2천억 원이 넘을 것으로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