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 연합뉴스유엔 자유권위원회가 "정부나 기업, 고위 공무원과 선출직 공직자에 비판적인 기자를 상대로 형사 고소가 계속되고 있다"며 한국 정부에 명예훼손의 비범죄화, 즉 형사상 명예훼손죄 폐지를 권고했다.
검찰이 최근 지난 대통령 선거 시절 후보 검증 보도를 겨냥해 윤석열 대통령의 명예훼손죄 수사를 벌이는 가운데 형사처벌을 멈추라는 국제사회 권고가 나온 셈이다. 유엔의 권고에 대해 법무부는 "명예훼손의 비범죄화는 피해자 보호에 대한 공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며 신중한 입장을 내놨다.
7일 CBS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유엔 자유권위원회는 지난 3일 한국의 5차 자유권 규약 국가보고서 심의 결과에 대한 최종 견해를 발표했다. 한국 정부는 1990년 자유권 규약을 비준한 뒤로 정기적으로 심의를 받아왔다. 이번 심의는 2015년 4차 심의 이후 8년 만이다.
자유권위원회는 "정부나 기업에 비판적인 보도를 한 기자에 대해 형사고소하고, 고위 공무원 및 선출직 공직자도 (자신을) 비난하는 기자를 상대로 계속 고소를 하고 있다"며 "이런 식의 고소를 언론인이나 반대 목소리에 재갈을 물리는 데 사용해선 안 된다. 비판을 허용하는 것은 민주주의 사회의 본질"이라고 강조했다.
검찰이 최근 윤석열 대통령의 명예훼손 혐의 사건에 대규모 특별수사팀을 투입하는 등 두 달 넘게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는 상황이 바로 유엔 자유권위원회가 우려한 장면이다.
앞서 119개 단체가 모인 '한국시민사회모임'은 자유권위원회에 시민사회의 우려 목소리를 전달하면서 "의혹 보도를 한 기자나 언론사를 상대로 진행하는 고소·고발은 비판을 억누르기 위해 소송을 남용하는 전형적인 사례"라며 "명예훼손의 비범죄화 등 주요 권고사항이 불이행되고 있다"고 촉구했다.
지난 9월 14일 오전 대장동 허위 보도 의혹 관련 압수수색을 위해 서울 중구 뉴스타파를 찾은 검찰 관계자들이 건물로 진입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우리 정부를 향한 유엔의 명예훼손죄 비범죄화 권고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0년 5월 한국의 표현의 자유 실태를 조사한 유엔 프랭크 라뤼 특별보고관은 △MBC PD수첩 제작진 기소 △미네르바 박대성씨 사건 등을 들어 "2008년 촛불시위 이후 표현의 자유가 줄어들고 있다"며 명예훼손의 비범죄화를 권고했다.
박대성씨 기소 근거였던 전기통신기본법 47조 1항이 위헌 결정이 나면서 박씨는 1심 무죄 이후 공소가 기각됐고, PD수첩 제작진에게도 1·2·3심 모두 무죄가 선고됐다. 앞서 2015년 자유권위원회의 4차 심의 최종 견해에서도 명예훼손 비범죄화 권고가 담겼다.
이런 지적에 대해 우리 정부는 사실상 불수용 의사를 표시했다. "명예훼손죄 비범죄화는 표현의 자유뿐 아니라 피해자 보호에 공백이 생기는지 여부, 징벌적 손해배상 등 강력한 민사상 제재 수단의 존재 여부 등을 고려해야 한다"고 반박한 것이다.
황진환 기자이밖에 자유권위원회는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진상규명을 위한 독립기관을 설치하고 책임자 처벌을 권고했다. 정부의 건설노조 낙인찍기 및 수사 등 노동조합 활동 탄압도 지적했다. 사형제와 국가보안법 폐지도 권고했다.
이에 법무부는 "이태원 참사 직후 경찰, 검찰의 수사와 국회 국정조사 등 대대적인 조사와 수사가 이뤄졌고 피해자 지원단을 통해 피해자·유가족을 지원하고 있다. 범부처 차원의 TF를 구성해 재발 방지 대책 등 이행 상황을 추진·점검하고 있는 사안"이라고 반박했다.
사형제 문제에 대해선 "유지하려는 입장"이라고 했고, 국가보안법은 "필요성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법무부는 "이번 심의 과정에서 점검한 주요 인권 문제와 위원회 권고를 충실히 검토해 국내 정책 수립에 참고하겠다"며 "향후 6차 국가보고서에 정부의 권고 이행 노력과 개선점을 담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