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팬 모빌리티쇼가 열린 도쿄 빅 사이트. 한국자동차기자협회 제공세계 5대 모터쇼인 '재팬 모빌리티쇼'가 5일 막을 내렸다. 앞선 뮌헨 모빌리티쇼에 이어 4년 만에 열린 재팬 모빌리티쇼에서도 현재의 자동차 산업을 관통하는 지향점은 역시 '전동화'였다.
전기차 시대에 주도권을 놓친 일본 완성차 업체의 위기감 속에 중국의 발빠른 시장 장악력이 글로벌 전동화 경쟁의 단면을 보여줬다. 국내 기업들의 전동화 바람도 만만찮은 추세라 전기차 시장의 글로벌 성장세 속에 한·중·일 3국의 패권 경쟁도 갈수록 치열해질 전망이다.
재팬 모빌리티쇼에 설치된 토요타 부스. 한국자동차기자협회 제공토요타, BEV 대전환 선언
올해 재팬 모빌리티쇼의 관전 포인트 가운데 하나는 일본이 비로소 'BEV'(배터리 전기차)에 뛰어든 점과 토요타의 방향성이 전동화로 확고하게 표현된 대목이다.
토요타는 'FT-3e'와 전기 세단 'FT-Se'의 콘셉트카 사양·디자인을 공개하면서 전기차 후발주자라는 인상을 씻었다. 여기에 대형 전기 SUV 콘셉트 랜드크루저 Se와 전기 픽업트럭 콘셉트 EPU 모델도 선보였다.
사토 고지 토요타 사장은 "토요타의 모토는 '자동차의 미래를 바꿔 나가자'는 것"이라며 "배터리 EV와 함께 생활하는 미래, 친환경적일 뿐만 아니라 전기에너지 특유의 즐거움과 주행의 맛 등 다양한 가치를 실현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재팬 모빌리티쇼에 설치된 렉서스 부스. 한국자동차기자협회 제공특히 그동안 하이브리드를 주도해온 렉서스의 차세대 전기차 'LF-ZC'와 'LF-ZL' 공개는 재팬 모빌리티쇼의 메인 이벤트로 꼽혔다. 오는 2026년 출시 예정인 LF-ZC는 새로운 모듈 구조로 차량 아키텍처의 근본을 바꾸고, 그 위에 소프트웨어 플랫폼을 통합한다는 비전이 담겼다.
렉서스는 2035년까지 전기차로 100% 전환한다는 계획이다. 업계에서는 일본의 하이브리드 흐름을 이끌어 온 렉서스의 선언적 전기차 가속화가 일본차 전반의 변화로 이어질 것으로 내다본다.
재팬 모빌리티쇼에 설치된 BYD 부스. 한국자동차기자협회 제공日 무대서 안방 차지한 中
중국 BYD가 일본 안방 모빌리티쇼에서 기술을 자랑한 점도 주목할 만하다. 글로벌 전기차 강자로 자리잡은 중국은 재팬 모빌리티쇼에서도 BYD를 앞세워 일본 시장을 공략하겠다는 각오를 내비쳤다.
BYD는 전시장 한복판에 대규모 부스를 꾸리고 일본 출시 예정인 '씰'(SEAL)과 현지 첫 출시 차량인 '아토3', 지난 9월 출시한 콤팩트 전기차 '돌핀' 등 3개 승용차를 전시했다. 메르세데스-벤츠와 설립한 합작사 덴자가 전기 미니밴 D9를, 고급차 브랜드 양왕이 오프로드 타입 SUV U8을 공개했다.
BYD는 올초 일본 진출과 동시에 공격적으로 판매량을 늘리는 중이다. 올해 1월 아토3를 일본 시장에 처음 선보인 BYD는 최근까지 700대가량을 판매했다. 지난달에는 라인업에 돌핀을 추가하며 판매량을 대폭 늘리겠다는 구상이다. 오는 2025년까지 100개의 딜러샵을 구축하겠다는 계획도 내놨다.
재팬 모빌리티쇼에 전시된 BYD의 '실'(SEAL). 한국자동차기자협회 제공중국 전기차가 일본의 안방을 차지한 단면에는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인 '전기차'와 '소프트웨어 기술력'이 자리잡고 있다. 토요타·혼다·닛산으로 대표되는 일본의 자동차 수출은 지난 2019년 정점인 481만대를 찍은 이후 연평균 380만대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일본이 하이브리드 중심의 라인업에 집중하는 사이 중국은 내연기관을 건너뛰고 세계 최대 전기차 왕국이자 자동차 수출 강국으로 부상했다. 업계 관계자는 "이대로 가다가는 자동차 전통 강자인 일본이 중국 업체와 테슬라의 질주를 따라잡기 벅찬 구조가 굳어진다"고 관측했다.
"미래차 선점, SDV에 달렸다"
리서치 기관 블룸버그 뉴에너지파이낸스(BNEF) 자료에 따르면 전기차는 지난해 기준 승용차의 14% 수준에 불과했지만, 오는 2026년에는 30%를 차지할 전망이다. 전동화 전환이 그만큼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뮌헨 모빌리티쇼에 이어 재팬 모빌리티쇼에서도 보여준 전동화 전환이라는 시대적 과제를 제대로 구현하려면 소프트웨어 변화가 선행돼야 한다고 업계는 입을 모은다. 하드웨어 바탕 위에 새로운 체험 가치를 실현하는 소프트웨어 플랫폼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내연기관차를 상징하는 '모터쇼'에서 다양한 이동 수단이자 공간을 포괄하는 '모빌리티쇼'로 전시회의 이름이 바뀐 데에도 이같은 패러다임의 변화가 깔려있다.
재팬 모빌리티쇼에 전시된 BYD의 아토3. 한국자동차기자협회 제공업계 관계자는 "완성차 업체들이 전기차까지는 모두 진입할 수 있겠지만 스마트폰처럼 업데이트 되는 차, SDV(소프트웨어 중심 자동차)에 누가 먼저 도달하느냐가 결국 성공의 최대 변수"라며 "복합체인 미래 모빌리티에서 주도권을 잡으려면 차량용 소프트웨어 기술의 경쟁력이 중요하다"고 진단했다.
글로벌 완성차 기업은 향후 1~2년 뒤 SDV로의 전환을 목표로 OTA를 통해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통합제어 플랫폼과 소프트웨어 및 서비스 제공을 위한 생태계 구축에 주력하고 있다. 이번 재팬 모빌리티쇼에서 토요타가 소개한 자사의 소프트웨어 플랫폼 '아린'도 같은 맥락이다. 토요타는 2018년 소프트웨어 부문 자회사인 우븐플래닛홀딩스를 설립해 차의 두뇌에 해당하는 차량용 기반 소프트웨어 아린을 2025년 실용화를 목표로 독자 개발 중이다.
삼성화재 모빌리티뮤지엄을 달리는 포티투닷 자율주행 셔틀. 포티투닷 제공국내에서는 현대차그룹이 2025년까지 모든 차종을 SDV로 전환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2030년까지 18조원을 투입하고 글로벌 소프트웨어 센터를 설립하는 청사진을 공개했다. 특히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9월 자율주행 등 차량용 소프트웨어 개발 업체 '포티투닷'을 인수해 소프트웨어 개발의 거점으로 삼았다. 포티투닷은 SDV와 PBV(목적기반차량)를 중심으로 차량을 개발하고, 이 모빌리티에 자체 개발한 기술 플랫폼과 시스템을 적용할 계획이다.
전동화 전환에 방점을 찍은 중국과 재팬 모빌리티쇼에서 전기차로 무게추를 옮긴 일본의 행보로 한·중·일 3국의 SDV 패권 경쟁은 갈수록 치열하게 전개될 양상이다. 송창현 포티투닷 대표는 "글로벌 자동차 업계 환경이 급변하고 SDV의 관심이 커지는 가운데 가장 중요한 건 소프트웨어 업데이트에 대한 지속성"이라며 "현대차그룹이 자동차 판매사에서 모빌리티 솔루션 프로바이더로 전환해 '이동의 자유'라는 궁극의 미션을 달성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