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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허수아비' 감독기관?…바닷모래 불법채취 '복마전'



편집자 주

'해사(海沙, 바닷모래)'는 건물의 골격을 만드는 데 쓰이는 필수 골재다. 바다는 공공 소유물이기 때문에 해사 채취의 양과 범위는 법에 따라 엄격히 제한된다. 하지만 수익 극대화를 노린 업체들은 거침이 없었다. 허가받지 않거나 권한을 타 업체에 넘긴 상태에서 무단 채취하는가 하면, 갖가지 핑계로 과도하게 퍼올리는 등 불법 행위를 서슴지 않았다. CBS노컷뉴스는 국내 해사채취 업계의 어두운 '민낯'을 연속보도를 통해 고발한다.

[무법지대로 전락한 바닷모래 채취③]
'360차례 나가야 퍼올 수 있는 양'…87만㎥ 어떻게 더 퍼왔나
태안군 허가량 125만㎥ 불법 양도양수…무허가 업체로부터 허가권 받기도
바닷모래 채취 현장 감독 직원, 옹진군 1명·태안군 無
채취허가량 제멋대로 거래 '2차 시장' 구축
18개 업체 8개월간 1달에 1번 이상 선박 교체
무허가업체로부터 해사채취권 매입해 '몰래 채취'도
"끊이지 않는 과다·불법 채취 의혹…전체 수사 필요"

바닷모래를 채취한 선박 모습. 본 기사 내용과 직접적인 연관은 없음. 독자 제공바닷모래를 채취한 선박 모습. 본 기사 내용과 직접적인 연관은 없음. 독자 제공
▶ 글 싣는 순서
①[단독]인천 앞바다 모래 업체, 형사처벌도 무시하는 '배짱 채취'
②[단독]"기록 없이도"…'마구잡이 채취'한 바닷모래업체들
③[단독] '허수아비' 감독기관?…바닷모래 불법채취 '복마전'
(계속)

건축 자재의 필수 요소인 바닷모래가 감독기관의 방치 속에 무분별하게 채취되는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인천과 태안 앞바다 바닷모래 채취를 감독하는 옹진군과 태안군은 인력 부족 등의 이유로 감독에 손을 놓고 있어 서해 앞바다 바닷모래 채취 허가에 대한 원점 검토와 함께 전체 수사가 필요해 보인다.
 
22일 CBS노컷뉴스는 2021년 7월 인천지법 형사3단독 김지희 판사가 골재채취법 위반죄로 기소된 인천과 태안 지역 바닷모래채취업체 3곳에 대해 집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한 판결문을 분석했다. 이 판결문은 최근 10년사이 해당 해역에 이뤄진 불법·무허가 바닷모래 채취 유형과 규모를 고스란히 확인할 수 있는 자료로 평가된다.
 
당시 김 판사는 골재채취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인천 지역 해사채취업체인 성진소재㈜와 성진해운㈜의 대표이사였던 A(80)씨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같은 혐의로 기소된 충남·전북지역 해사채취업체인 금석해운㈜·㈜대흥의 실제 운영자 B(61)씨에게는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각각 선고했다.
 
이 판결은 올해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2심 재판부는 이들이 과다채취한 바닷모래 물량을 1심 재판부보다 28.8% 줄였지만 형량에는 반영하지 않았다.
 

'360차례 나가야 퍼올 수 있는 양'…87만㎥ 어떻게 더 퍼왔나

A씨는 자신이 운영하던 해사채취업체 성진소재와 성진해운 명의로 2014~2018년 옹진군청과 한국수자원공사로부터 각각 인천 앞바다와 서해 배타적경제수역(EEZ)에서 바닷모래 302만㎥에 대한 채취허가를 받은 뒤 모래운반선에 바닷모래를 과다 적재하는 등의 수법으로 2015년 1월부터 2017년 12월 사이 8차례에 걸쳐 바닷모래 87만8천㎥를 과다채취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성진해운이 2014년~2017년 옹진군으로부터 허가받은 해사채취량이 83만7320㎥인 걸 감안하면 A씨의 업체가 과다채취한 바닷모래량은 해사채취업체 1곳이 4년치 받은 허가량을 넘어선다.
 
성진해운과 성진소재가 보유한 바닷모래채취선이 1차례 출항했을 때 퍼올 수 있는 모래량은 2420㎥이다. 87만㎥는 단순 과적으로 퍼 올 수 없는 규모다. 이 업체들이 과적하지 않고 모래 87만㎥를 퍼나른다고 계산하면 360차례 출항해야 가능하다. 성진소재와 성진해운이 이 물량을 3년에 걸쳐 과다채취한 걸 감안하면 연간 120차례 미신고 출항해야 한다는 의미다. 감독기관인 옹진군이 대놓고 '몰래 채취'를 허용하지 않는 이상 불가능한 수준이다.
 
바닷모래를 채취하는 선박 모습. 본 기사 내용과 직접적인 연관은 없음. 독자 제공바닷모래를 채취하는 선박 모습. 본 기사 내용과 직접적인 연관은 없음. 독자 제공

바닷모래 채취 현장 감독 직원, 옹진군 1명·태안군 無

옹진군은 10년 전부터 해사채취선이 옹진군 관할해역내 어디에 있든 언제든지 확인할 수 있는 모니터링 시스템(VMS)을 운영하고 있어 '몰래 채취'는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옹진군과 태안군이 최근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소속 윤미향(무소속·비례)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옹진군이 바닷모래 채취를 현장 감독하기 위해 배정한 인원은 청원경찰 2명뿐이다. 이마저도 올해부터 1명으로 줄었다. 그동안 인천 앞바다에서 바닷모래 채취업체가 최소 13곳, 최대 18곳이었던 걸 감안하면 턱없이 부족하다.
 
태안군은 바닷모래 채취 모니터링 담당 직원이 과장과 팀장, 주무관 등 일반직 공무원으로 현장 관리 감독이 불가능항 상황이다. 채취선이 나가고 들어오는 건 확인하지만 적정량의 모래를 퍼오는지 확인하지 않는 것이다.
 

채취허가량 제멋대로 거래 '2차 시장' 구축

A씨는 또 2014년 4월부터 2017년 3월까지 충남 태안 앞바다에서 바닷모래 125만㎥를 무허가 채취한 혐의도 받았다. 조사 결과 A씨는 B씨의 업체가 태안군으로부터 허가받은 해사채취권 일부를 매입해 양도받는 방식으로 바닷모래를 퍼 날랐다.
 
현행법상 골재채취권은 관할 광역·기초단체장 또는 국토교통부 장관의 허가를 받아야 하고, 허가받은 사항을 변경하려면 이 역시도 자치단체장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즉 해사채취업체는 허가받은 바닷모래 채취량을 스스로 채취해 유통해야 하고, 다른 업체에게 양도할 수 없다.
 
그러나 A씨가 B씨로부터 바닷모래 채취권을 양도받은 과정을 보면, B씨는 자신이 태안군으로부터 허가받은 바닷모래 채취권 일부를 ㈜도양, ㈜수혁해운, ㈜삼표산업, 현서㈜, 한국소재㈜ 등에 넘겼고 이를 다시 A씨의 업체에 양도했다. 해당 업체 가운데 도양, 수혁해운, 현서 등은 해사채취권한이 없는 업체다. 검찰은 삼표산업과 한국소재의 경우 인천 앞바다에서 바닷모래 채취 허가를 받은 업체여서 골재채취법을 위반했다는 사실을 확인했지만 별도 기소하지 않았다.
 
당시 수사기관들은 이 과정에서 금석해운이 도양에 해사채취권 일부를 양도하면서 채취 물량 10만㎥를 4억1195만원에 판매한 사실도 확인했다. B씨가 태안군으로부터 허가받은 해사 채취물량 가운데 일부를 다른 업체에 넘긴 횟수는 15건에 달했다.
 
바닷모래 채취업체들이 정부로부터 채취 허가량을 배정받은 뒤 이를 다시 각 업체들이 재거래하면서 채취 물량을 주고받는 이른바 '2차 시장'을 구축한 것이다.

바닷모래를 채취한 선박 모습. 본 기사 내용과 직접적인 연관은 없음. 독자 제공바닷모래를 채취한 선박 모습. 본 기사 내용과 직접적인 연관은 없음. 독자 제공 

18개 업체 8개월간 1달에 1번 이상 선박 교체

업계는 바닷모래 채취업체들이 선박 고장 등의 이유로 채취선을 이용할 수 없을 때 임시로 타 업체 선박을 임시 이용할 수 있도록 승인하는 증·감선 제도를 악용한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 옹진군 관할 해역에서 바닷모래를 채취한 업체들은 모두 증감선 신고를 적극 활용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일례로 2013년 8월말부터 2014년 4월말까지 8개월간 인천 앞바다에서 해사 채취 허가를 받은 18개 업체가 옹진군에 신고한 증·감선 건수는 210건이다. 8개월 동안 업체 1곳당 11.6번의 증·감선 신고가 이뤄진 것이다.
 
각 업체들이 매달 선박에 이상이 생겼다는 의미로, 이 정도 선박 상태였으면 애초 정부가 채취 허가를 내주기도 쉽지 않았을 사항으로 보인다.
 
옹진군의 입장에서 보면 A업체가 제대로 바닷모래를 펐는지 확인하기 위해 매번 다른 업체 선박의 출항을 확인하는 일이 반복되는 것이다. 옹진군은 그동안 증·감선 제도가 '허가' 사항이 아닌 '신고' 사항이어서 업체가 요청하면 이를 다 받아들였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해사채취법은 허가 관련해 변동사항이 발생할 경우 지자체장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국내 먼바다(EEZ) 해역 바닷모래 채취를 감독하는 해양환경공단 관계자는 "증·감선은 신고가 아닌 허가 사항으로 증·감선을 신청할 때는 그 이유를 명확히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같은 법을 두고 앞바다와 먼바다 감독기관이 각기 다른 원칙을 적용하는 것이다.
 

무허가업체로부터 해사채취권 매입해 '몰래 채취'도

이번 사건이 해사채취 능력이 없는 업체로부터 해사 채취 허가권을 양도받았다는 점에서 다른 업체들도 유사한 수법으로 불법 과다채취를 하는 게 아니냐는 의혹도 나온다.
 
즉 무리한 증·감선 제도 악용과 인천과 충남을 오가는 해사채취 허가량 양도양수가 발생하는 해사채취 업계의 사정을 감안하면 다른 업체들도 성진해운과 성진소재처럼 무허가업체로부터 허가권을 양도양수받아 바닷모래를 과다채취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더구나 그 물량이 태안군처럼 타 지자체의 허가 물량이라고 하면 확인이 어렵다.
 
앞서 CBS노컷뉴스는 최근 10년간 인천 앞바다 바닷모래 채취업체들의 출입항을 전수조사해 C업체가 옹진군이나 태안군의 허가량이 아닌 대도 모래를 퍼나른 정황 92건을 발견했다고 보도했다. C업체도 바닷모래 채취 권한이 없는 업체로부터 허가권을 매입해 모래를 채취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와 함께 CBS노컷뉴스는 인천의 또 다른 바닷모래 채취 업체인 D업체가 2017년 금석해운의 허가량 30만㎥를 15억9천만원(㎥당 5300원)에 매입한다는 내용의 계약서를 입수했다.
 
다만 2017년 금석해운이 태안군으로부터 허가받은 바닷모래 채취량은 23만7447㎥였다. 이로 인해 이후 금석해운과 D업체 간 거래가 어떻게 이뤄졌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인천지역 바닷모래 채취업체인 B업체와 태안지역 바닷모래 채취업체인 금석해운이 2016년 11월 맺은 채취 허가량 거래 계약서. 독자 제공인천지역 바닷모래 채취업체인 D업체와 태안지역 바닷모래 채취업체인 금석해운이 2016년 11월 맺은 채취 허가량 거래 계약서. 독자 제공

"끊이지 않는 과다·불법 채취 의혹…전체 수사 필요"

그동안 인천 앞바다에서는 해사채취업체들의 과다·불법 채취 의혹이 꾸준히 제기됐지만 이번 사례처럼 그 수법이 명확히 드러나 법원 판결로 이어진 건 1993년 당시 안대희 인천지검 특수부장이 인천지역 해사채취업체 대표 4명을 골재채취법 위반 및 세금 포탈 등의 혐의로 구속한 이후 처음이다.
 
당시 해사채취업체들은 1990~1993년 사이 각각 2년에 걸쳐 해사채취 허가량보다 58만~150만㎥를 과다채취하고 세금 4억2천만~9억2천만원을 포탈한 혐의를 받았다.
 
윤미향 의원은 "해양환경과 생태계 보호를 위해 바닷모래 채취는 철저히 관리돼야 하지만 감독기관의 방치 속에 불법 과다‧도둑채취가 성행하고 있다"며 "바닷모래 채취 허가방식, 관리감독 체계 등 전반적인 제도 정비는 물론 사정당국의 관련 수사도 시급해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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