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열린 라이칭더 후보의 유세현장에서 한 지지자가 '대만은 또다른 홍콩이 아니다'라는 내용의 피켓을 들고 있다. 타이베이=CBS노컷뉴스 임진수 베이징 특파원대만 대선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선거 분위기가 절정에 다다른 가운데 친미.독립 성향의 민주진보당(민진당) 라이칭더, 친중 성향의 국민당 허우유이, 중립 성향의 민중당 커원저 후보는 막판 표몰이에 나서고 있다. 대만 국민들도 대중국 관계의 변곡점이 될 이번 선거를 앞두고 확실하게 편이 갈린 모양새다.
15만명 운집 유세현장서 터진 함성 "라이칭더 총통"
11일 저녁 7시가 되자 대만의 수도 타이페이시 총통부 앞 대로는 발디딜틈 없이 인파로 가득찼다. 주최측 추산 15만명이 결집한 가운데 무대에서 2~3백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서부터 더이상 앞으로 향할 수 없었다. 샛길로 앞쪽으로 가려는 일부 지지자들과 이를 막는 경찰간 실랑이도 곳곳에서 벌어졌다.
라이칭더 후보 유세장에 모인 지지자들. 타이베이=CBS노컷뉴스 임진수 베이징 특파원유세가 시작되고 무대에는 민진당 정치인의 지지연설, 그리고 가수의 축하무대도 이어졌다. 이날의 주인공 라이칭더는 유세 시작 2시간 뒤에나 무대에 올랐다. 현직 총통 차이잉원이 단상에 올라 그를 소개하자 지지자들이 한목소리로 "라이칭더 둥쏸!"을 외쳤다. '둥쏸'은 얼린 마늘이라는 뜻이지만 현지어로 당선과 발음이 비슷하다.
이미 목소리가 잔뜩 쉰 라이칭더는 "대만은 앞으로도 가치 외교, 양안(중국과 대만)관계 안정, 자주 국방을 이어갈 것"이라며 "세계를 향해 갈 것인가, 중국에 갇힐 것인가, 민주적 가치를 고수할 것인가, 권위주의에 굴복할 것인가"라고 호소했다. 연설 내내 지지자들은 연신 '두이'(맞다), '자유'(힘내라) 등을 외치며 라이칭더를 응원했다.
허우유이 "일국양제 반대하지만 양안관계 개선 중요"
이에 앞서 이날 신베이시의 한 호텔에서는 제1 야당 국민당 후보 허우유이가 외신 기자회견을 열었다. 대만 총통 선거에 온세계의 이목이 쏠린 것을 입증하듯 기자회견장에는 4백여명의 외신기자들이 자리를 가득 메운채 허우유이의 한마디 한마디를 경청했다.
신베이시에서 열린 허우유이 후보 외신 기자회견. 타이베이=CBS노컷뉴스 임진수 베이징 특파원허우유이는 기자회견 시작부터 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최대 목표로 꼽았다. 그는 "미래의 총통은 대만과 중국이 서로 교류하고 이해를 증진시킬 방법을 찾아야 한다"면서 "외신은 대만을 지구상에서 가장 위험한 장소로 묘사하고 있다. 총통 후보로서 중국과의 전쟁을 피할 수 있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자신있게 말했다.
지나친 '친중'이라는 비판을 의식한 듯 그는 중국이 주장하는 홍콩.마카오식 '일국양제'에는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대신 '하나의 중국'을 인정하돼 그 해석은 양안 각자에게 맡기는 '92 공식'(92년 합의)에 찬성한다고 밝혔다. 역시 이번 선거로 인한 양안관계 변화가 가장 큰 관심인 외신들도 관련 질문을 쏟아냈고 이 때마다 허우유이는 '평화와 안정'을 강조했다.
SNS로 2030세대 파고든 커원저 "이념 대신 실용"
제3의 길을 걷고 있는 제2 야당 후보 커원저 역시 막판 세몰이에 나서고 있다. 2030세대로부터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커 후보는 기성세대 중심의 선거운동을 벌이는 다른 두 후보와 달리 소셜미디어(SNS)를 적극 활용해 2030세대의 표심을 자극하고 있다.
커원저는 올해 64세로 다른 2명의 후보와 같은 연배임에도 SNS를 능숙하게 다루는데, 그의 인스타그램 팔로워는 다른 두 후보 보다 월등히 많은 110만명에 이른다. 또, 다른 후보들은 계정조차 개설하지 않은 숏폼 플랫폼 '틱톡'에서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선거 방식 뿐만 아니라 선거 구호도 다른 후보와 차별화를 선택했다. 각각 반중, 친중으로 나뉘어 이념대결에 집중하고 있는 두 후보와 달리 그는 이념 문제에는 선을 긋고 '실용'을 앞세우고 있다. 커원저는 선거기간 내내 "청색(국민당)과 녹색(민진당)을 초월하고, 이념 대신 실용을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양안관계, 경제상황, 청년문제 바라보는 민심은 제각각
대만 국민들도 저마다 다른 이유로 각각의 후보를 지지하며 편이 갈렸다. 양안 관계가 이번 선거의 판세를 가를 가장 중요한 이슈라는데는 상당수 국민들이 동의하지만 침체된 경제상황과 청년세대 문제 등도 지지층을 가르는 주요 요인인 된 것으로 보인다.
11일 만난 60대 택시기사 펑(62) 씨는 과거 집권시절부터 국민당은 너무 부패했다며 라이칭더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그는 "라이칭더가 당선되면 중국이 전쟁을 일으킬 것이라고 하는데 절대 그럴 일이 없으니 안심해도 된다"면서 "한국도 마찬가지 아니냐"고 반문했다.
같은날 신베이시에서 만난 공무원 리(53) 씨는 "우리는 미국과의 관계가 중요한데 국민당은 친중 색체가 너무 강하다"면서 "중국이 대만을 침공하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직접 만든 피켓을 들고 라이칭더 유세현장을 찾은 전(28) 씨도 "우리는 중국인이 아니라 대만인"이라며 "차이잉원이 8년 동안 집권하면서 대만은 더 좋아졌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만 현지인이 주로 찾는 멍자야시장. 타이베이=CBS노컷뉴스 임진수 베이징 특파원
반면 국민당 지지자들은 오히려 민진당 집권 8년이 힘들었다고 호소했다. 지난 10일 저녁 대만 현지인이 주로 찾는 멍자 야시장에서 만난 상인 딩(45) 씨는 허우유이 지지자임을 밝히며 "지난 8년 동안 경제상황은 더 안 좋아지고 있다. 물가도 너무 많이 올라 힘들다"고 말했다. 중국과의 관계와 관련해서도 "중국인들이 대만을 많이 찾아야 장사가 잘되는데 양안관계가 악화되니 중국인들의 발길도 끊겼다"고 말했다.
같은날 중국 베이징에서 대만으로 향하는 비행기에서 만난 재중 대만인 시에(65) 씨는 투표를 위해 귀국길을 택했다고 말했다. 그는 "중국은 대만에 있어 기회의 땅이고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중국에서 일하고 있다"면서 "허우유이가 당선되면 중국과 대화를 재개하고 관계개선에 나설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커원저 후보에 대한 지지세도 만만치 않았다. 11일 대만국립대에서 만난 정(21) 씨는 "청년 문제에 관심이 없는 기존 정당이 아닌 새로운 선택지가 생겨서 그쪽에 기대를 걸어볼려고 한다"면서 "양안, 미중 관계 모두 중요하지만 중간적 입장이 필요하다. 전쟁이 아닌 안정을 바란다"고 말했다.
멍자 야시장에서 만난 상인 진(40)씨는 "아직 확실하게 누구에게 투표할지는 정하지 않았다"면서도 "민진당이 너무 오래 집권했고, 국민당은 주로 노년층이 지지하는 정당이라 새롭게 나온 커원저 후보에게 관심이 간다"고 말했다.
여론조사 결과 공개가 금지되기 전 각종 조사에서 라이칭더와 허우유이가 오차범위 내 박빙의 승부를 펼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 가운데 그동안 3위를 굳힌 것으로 보였던 커원저가 얼마나 선전할지가 막판 관전 포인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