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이처럼 이태원 참사 특별법이 끝내 거부되자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은 물론, 시민사회와 야당도 거세게 반발하고 나섰습니다.
과연 정부 주장대로 이태원 참사 특별법은 시민들의 기본권을 침해할 정도로 '반헌법적'인 법일까요? 이 내용 취재한 사회부 양형욱 기자와 자세한 얘기 나눠보겠습니다.
어서오세요.
[기자]
안녕하세요.
[앵커]
그동안 특별법이 통과되기를 애타게 기다렸던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 심정이 참담할 텐데요. 오늘 현장에서 직접 만나 취재해보니 어떻습니까?
[기자]
오늘 오전부터 이태원 참사 특별법에 거부권을 행사하는 안건이 국무회의에 상정된다는 소식이 들려왔죠.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와 시민대책회의는 오늘 오전엔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오후엔 서울시청 앞 분향소에 모여서 윤석열 대통령에게 거부권을 행사하지 말라고 거듭 호소했습니다.
유가족협의회 이정민 운영위원장은 윤 대통령과 정부 관료들, 국민의힘 의원들이 무책임하고 어리석은 결정을 내려 역사에 남을 죄를 지었다고 울분을 토했는데요.
직접 이 위원장 목소리를 들어보시죠.
정부가 국무회의에서 이태원 참사 특별법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안을 의결한 30일 오후 서울광장에 마련된 분향소 앞에서 참사 유가족들이 기자회견을 갖고 진상규명 요구를 외면한 윤석열 정부를 규탄하고 있다. 황진환 기자[인서트]유가족협의회 이정민 운영위원장
=저희들은 특별법이 아닌 특조위가 아닌 그 어떤 것도 정부 측과 논의를 할 생각도 마음도 없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밝힙니다
[기자]
특히 오전엔 경찰이 신고되지 않은 집회라며 진압에 나서자 현기증을 호소하며 유가족 한 분이 넘어져서 인근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받기도 했습니다.
[앵커]
유가족이나 시민사회 뿐 아니라 야권에서도 이번 특별법 거부권 행사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왔을 텐데요.
[기자]
더불어민주당 홍익표 원내대표는 오늘 오후 분향소를 직접 찾아 "정치의 본령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데 있는데 이같은 책임이 있는 정부가 진상규명을 가로막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또 정의당 배진교 원내대표도 "국가의 무능과 부재로 국민들의 생명을 지키지 못했어도 국가는 어떤 책임도 지지 않겠다고 선포한 것"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앵커]
이처럼 유가족, 시민사회, 야당 모두 반발하는데도 정부가 국회에서 통과된 특별법을 거부한 이유는 대체 뭔가요?
[기자]
방기선 국무조정실장은 다섯 가지 이유를 들었습니다.
이걸 풀어서 설명해보면 일단 특조위가 조사 대상자나 참고인에게 영장 없이도 동행명령을 할 수 있고, 이 명령에 응하지 않으면 과태료도 부과할 수 있다, 또 관계기관에 자료제출을 요구했을 때 거부하면 압수수색영장 청구를 의뢰할 수 있는 등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할 소지가 다분하단 겁니다.
국무회의에서 이태원 참사 특별법 재의요구안이 의결된 30일 오전 방기선 국무조정실장이 3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이태원 참사 특별법 관련 정부 입장과 피해지원 종합 대책을 설명하는 모습. 연합뉴스아울러 참사 직후부터 현재까지 경찰과 검찰 수사, 국정조사, 헌법재판소의 판결 등을 통해 이미 진상규명 작업이 이뤄져왔다고 강조했습니다.
더 나아가 특별법이 여야 합의 없이 국회를 통과했고 특조위가 야당 편향적으로 구성될 수 있단 우려도 정부의 걱정거리였을 겁니다.
하지만 특조위의 동행명령권, 압수수색영장 청구 의뢰권은 세월호 특조위 등 기존 조사위원위마다 가졌던 권한이어서 이제 와서 갑자기 정부가 '반헌법적'이라고 문제 삼는 것은 무리가 있어 보입니다.
예를 들어 특조위가 압수수색영장을 의뢰해도 검사가 보기에 무리하다 싶으면 청구하지 않으면 그만이거든요. 또 검사가 영장을 청구해도 법원에서 발부하지 않을 수도 있죠.
그런데도 기본권을 침해할 수 있으니 특조위 출범 자체를 막아야 한다, 심지어 국회에서 통과한 법을 대통령이 거부해야 한다는 건 다소 궁색해 보이네요.
[앵커]
아까 특별법을 거부한 이유로, 이미 경찰, 검찰 수사 마쳤지 않았느냐고 했어요. 실제로 지금 관련 재판도 진행 중이잖아요. 그런데도 유가족들이 특조위가 따로 필요하다고 말하는 이유는 뭘까요?
[기자]
겉보기엔 관련 책임자들을 상대로 여러 재판이 진행 중인 것 같지만요.
참사가 일어나고 오늘로 벌써 458일이 지났는데도 막상 재판 상황을 들여다보면 지지부진하기만 합니다.
이태원 참사가 일어난 호텔 주변에 불법 구조물을 세우고 도로를 허가없이 점용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해밀톤호텔 대표 이모 씨. 연합뉴스참사가 발생한 골목에 불법 구조물을 증축한 혐의로 기소됐던 해밀톤 호텔 대표 이모씨 등만 지난해 1심에서 벌금형을 선고받았을 뿐이고요.
정작 김광호 전 서울경찰청장이나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 박희영 용산구청장 등 주요 피고인들, 하나같이 정부의 책임으로 이어질 수 있는 공직자들이죠?
이들을 상대로 한 재판은 언제 선고가 내려질 지 감도 잡히지 않을 정돕니다.
게다가 이번 거부권 행사로 특조위의 조사활동 자체가 불가능할 뿐 아니라 윤 대통령이 특조위 성립을 직접 막아서고 나선 셈이라 참사의 진상을 규명하기 더 어려워질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겁니다.
[앵커]
그렇다면 일단 재판부터라도 매의 눈으로 지켜봐야겠네요.
[기자]
예, 더 나아가 이번 거부권 행사 전후 상황을 살펴보면요.
특조위 권한이 과도하다, 기본권을 침해할 수 있다, 물론 정부의 우려에 이해해볼 측면이 없진 않습니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서 이태원 참사와 같은 비극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으려면 왜 참사를 예방하지 못했는지, 참사 발생 후 피해를 줄일 수 없었는지 진상을 규명하는 작업 역시 중요하단 건 더 강조할 필요도 없을 겁니다.
그런데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지는 대통령이 단 한 번도 유가족들을 직접 만나 대화한 적도 없었고, 국민들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야 하는 여당이 야당과의 특별법 논의 자리에서 뛰쳐나왔으니
사실상 특별법에 대한 반감과 불안감을 부추겼단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겁니다.
이 와중에 오늘 정부가 내놓은 대책을 보면 지원금을 주겠다, 의료비를 주겠다 이런 내용이니 유가족들에게서 우리가 돈 때문에 이러는 줄 아느냐며 반발만 키웠습니다.
정말 정부와 여권이 특별법을 거부할 수밖에 없었더라도 우리나라의 정부를 대표하는 윤 대통령이
참사 발생 이후 지금까지 유가족의 마음을 어루만지기 위해 최선을 다했는지 지금이라도 돌아보기를 바랍니다.
[앵커]
여기까지 듣겠습니다. 양형욱 기자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