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민 기자·스마트이미지 제공검찰이 반도체 공정용 장비를 생산하는 국내 기업의 핵심 기술을 중국으로 빼돌린 혐의로 반도체 장비 제조업체 전직 연구원 등 일당을 구속 기소했다. 이들은 단순 기술 유출을 넘어 중국에 '복제 공장'까지 설치하려다 검찰에 덜미를 잡혔는데, 이 과정에서 카이스트(KAIST) 출신 과학도 검사의 치밀한 수사로 사안의 전모가 밝혀진 것으로 나타났다.
5일 법조계에 따르면 수원지검 평택지청 형사3부(이지연 부장검사)는 지난달 반도체 공정용 진공펌프 전문기업 A사의 전직 연구원 출신 B씨 등 2명을 산업기술보호법 위반 및 영업비밀국외누설, 절도 등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또 공범인 A사 전·현직 직원 8명을 불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겼다.
B씨 등은 A사의 영업비밀이자 첨단기술인 반도체 공정용 진공펌프 제조 기술을 중국으로 유출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 장비는 반도체·태양광·디스플레이 제조공정의 핵심 환경인 진공상태를 만드는데, 정부로부터 첨단기술 인증도 받았다.
A사는 매년 중국에 연 2천억원 이상 수출하는 전문기업이다. B씨는 별도 설립한 업체로 A사 진공펌프와 부품 제조기술, 공장 레이아웃까지 빼돌려 공정 전체를 중국에 복제하려고 한 것으로 조사됐다. 그는 수사 기관의 압수수색을 받던 도중에도 업무일지를 훼손해 숨기고 해외에 있는 공범에게 연락해 컴퓨터 폐기를 지시한 것으로도 파악됐다.
검찰이 압수한 기술 관련 자료만 47종 1만여개에 달했다고 한다. 강송훈(변호사시험 9회) 검사는 방대한 양의 압수물을 빠르고 정확하게 분석하는 작업에 수사의 성패가 달렸다고 판단하고 2주 만에 압수물 분석 프로그램을 자체 제작해 수사에 활용했다. 가령 부품 분류당 압수물 수를 자동 분류 및 통계화해 수사 속도를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었다고 한다.
강 검사는 유출 기술자료 등 중요 범죄 증거를 중국에 숨기고 국경을 넘나들며 도주한 A씨 일당을 추적하기 위해 관련자 통신내역과 GPS(위치정보시스템) 정보를 한눈에 보여주는 시각화 프로그램도 만들었다. 그 결과 피의자들의 동선을 빠르게 파악해 숨겨졌던 제3의 공장의 존재와 위치를 파악하는 데 성공했다는 설명이다.
이원석 검찰총장. 연합뉴스이원석 검찰총장도 지난달 27일 수원지검 평택지청을 방문한 자리에서 강 검사를 직접 챙기며 공학적 접근 방법을 활용한 수사 방식을 격려하기도 했다. 강 검사는 "연구원이 스스로 개발한 기술을 유출한다는 점에서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가 강하고 처벌도 미약하다는 인식이 강한 것이 기술유출 범행의 특성"이라고 밝혔다.
강 검사의 어린 시절부터 취미이자 특기는 코딩이었다. 올림피아드나 각종 경시대회 수상 경력으로 과학고에 입학한 후 카이스트까지 입학해 과학도의 길을 걷던 그는, 석·박사 후 연구직으로 직행하는 정해진 코스 대신 법조인의 길을 선택했다고 한다.
최근 그는 서울대에서 디지털포렌식전공 석사과정 공부도 시작했다. 주중에는 범죄 수사, 주말에는 공부에 매진하고 있는 것이다. 강 검사는 "판결이나 뉴스에 나오는 공학 관련 사건을 보면서 이해가 부족하다는 안타까움이나 답답함을 많이 느껴 직접 해보자는 생각을 했다"며 "국가의 첨단 기술을 해외로 유출하는 범죄에 엄정히 대응하고 피해 기업 보호에도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