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강일인 지난 4일 대구 한 의과대학 강의실이 의대생 휴학으로 인해 조용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의대 증원에 반발한 전공의(인턴·레지던트)들의 현장 이탈이 5일로 2주를 넘겼다. '빅5' 등 상급병원 필수의료의 중추로 평가받는 이들의 빈자리를 채워온 전임의(펠로)는 물론, 이달 임용 예정이었던 신규 인턴·레지던트들도 줄줄이 임용을 포기하면서, '의료 공백'은 오히려 더 커지고 있는 모양새다.
더욱이
면허 취소까지 불사한 당국의 '기계적 법 집행' 수순에도, 대부분의 전공의(전체 72%·8945명)가 꿈쩍도 하지 않으면서 정부는 사태 장기화를 대비할 수밖에 없게 됐다. 정부가 '의료개혁'의 필요조건으로 보는 의대 2천 명 증원을 관철하려면, 당분간 전공의의 부재를 상수로 고려해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당장은 예정된 일정을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버티고 있지만 머잖아 '운영난'에 직면하는 병원들이 나올 거라는 전망도 나온다. 정부는 대체인력 채용 지원 등을 위해 대규모 예비비를 투입할 예정이다.
당분간 '전공의 부재' 상수…대체인력 채용 등 예비비 투입
박민수 보건복지부 제2차관(중대본 제1총괄조정관)이 4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정례브리핑을 진행하고 있다. 복지부 제공5일 CBS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정부는
오는 6일 오후 국무회의에서 의사 집단행동 관련 예비비(약 1200억) 안건을 의결할 예정이다.
병원에서 진료과 당직·회진 등을 맡아온 전공의들이 대거 현장을 떠나면서, 현재 병원들은 전문의 자격을 딴 후 세부 전공을 연구하는 전임의 및 교수 등에 의존해 야간·휴무 당직을 커버하고 있다.
가령 기존에 3교대 근무로 당직이 돌아갔다면 2교대로 당번 시간을 늘리고, '오프'(off·휴무)인 날도 연속 당직을 서야 하다 보니
남아있는 의료진의 '번아웃'(소진)이 심한 상태다.
정부는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재정당국이 책정해둔 예비비 일부를 이들에 대한 보상 재원으로 활용하겠다는 방침이다. 또 공휴일을 포함해 운영시간을 최대치로 가동 중인 공공병원의 소요 비용, 병원별 대체인력을 뽑는 채용 비용 등으로도 사용할 계획이다.
앞서 정부는 절반 가까운 수술을 감축한 빅5(서울대·세브란스·삼성서울·서울아산·서울성모병원) 등의 진료 차질이 가시화되자, 국립중앙의료원과 지방의료원(35곳), 적십자병원(6곳) 등 공공의료기관을 주축으로 삼는 비상진료체계를 발표했다.
또 그간 국내 의료체계의 고질적 문제로 지적돼 온 '경증환자의 대형병원 쏠림' 현상을 해소하는 데 팔을 걷어붙였다. 일부 상급병원의 경우,
응급환자조차 가려 받아야 하는 처지다 보니 역설적으로, 중증·응급도를 최우선 고려한 전원 조치가 불가피해진 것이다.
박민수 복지부 제2차관은 "상급병원이 아니어도 충분히 진료가 가능한 중등증 이하의 질병은 지역의 종합병원 등을 통해 진료할 수 있도록 체계를 갖춰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고난도 의료처치를 요하거나 '골든타임' 준수가 필수인 위급 환자가 아니라면, 자발적으로 지역의 중소 병원을 찾아 달라는 당부도 덧붙였다.
실제로 전공의 '복귀 데드라인'이었던 지난달 29일 기준 응급실에 내원한 경증환자는 해당월 1~7일 평균 대비 30%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국 4개 권역에 긴급대응 응급의료상황실을 설치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한 대형병원 관계자는 "확실히 경증은 좀 줄었다고들 한다. 원래 (이를테면 단순히) '다리가 부러졌다'고 해서 대학병원 응급실에 가는 건 (지침에) 맞지 않는다는 게 (의료이용의) 상식"이라고 전했다. 의도치 않게,
그간 부풀려진 상급병원의 수요가 일부 줄어드는 '순기능'도 있었다는 것이다.
대형병원 '경증 쏠림' 일부 해소에도…전임의 등 이탈 가속화
정부가 전공의들의 복귀 기한으로 제시한 날을 하루 앞둔 지난달 28일 서울의 한 대형병원에 휠체어가 세워져 있다. 박종민 기자다만, 위험신호도 여전하다. 빅5의 하나인 서울성모병원은 계약을 앞두고 있던 전임의의 '50% 이상'이 빠져나간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임상 과마다 과장들이 면담을 통해 설득에 들어갔지만, 이미 돌아선 마음을 바꿀지는 미지수다.
지역 의료의 거점인 전남대병원, 조선대병원도 각각 신규 전임의로 뽑힌 대상자 약 40%, 70%가 최종적으로 임용을 포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더해
주요병원에서 인턴 과정을 마치고 수련을 이어갈 예정이었던 레지던트 1년차와 인턴에 합격한 의대 졸업생 대다수도 임용을 포기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달 1일 자로 발령되면 의료공백 완화에 어느 정도 도움이 될 거라 기대했던 '젊은 피'들이 유출된 것이다.
복귀시한 종료시점을 전후해 내심 일부라도 돌아오지 않을까 내다봤던 병원들은 다소 당혹스러운 기색이다.
한 상급종합병원 관계자는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복귀한 전공의는 '극소수'다. 정확한 수치는 파악이 안 되지만 아주 미미하다"며 "임용 대상자도 큰 비중은 아니지만, 절반 이상이 빠지니 상황에 따라, (수술 감축 등) 추가 조정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부는 군의관과 공보의들을 투입한다고 하는데, 수가 많지도 않아서 어떻게 (병원별로) 배분할지 모르겠다"고 우려했다. 이 관계자는
"앞으로 이 상황이 길어지면 (병원은) 경영이 어렵다. 병동을 축소하는 사례가 나올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조승연 전국지방의료원연합회장은 "민간병원이 (국내 병원의) 대부분이다 보니 정부가 (비상상황을) 컨트롤하기가 훨씬 힘든 것"이라며 "(전체 5% 남짓인) 공공병원 비중이 한 30% 정도 됐다면 지금 같은 상황에서도 훨씬 의연하게 대처가 가능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急' 소환된 간호사들…"법적 보호·업무지침 보완"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난 4일 서울 모처에서 열린 대한간호협회 간담회에서 임원진의 발언을 경청하고 있다. 조 장관은 현재의 의료혼란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필요한 정책 건의사항을 수렴하고, 이를 적극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복지부 제공전공의 공백을 상쇄하고 있는 또 다른 주체는 '간호사'다.
정부는 지난달 27일부터 전국의 종합병원 등에서 근무 중인 간호사를 대상으로 '진료지원인력 시범사업'을 시행 중이다. 보건의료 재난 위기경보 '심각' 발령에 따라, 전공의 역할을 일부 대체하고 있는 간호사들의 업무를 정부가 법적 테두리 안에서 보호해주겠다는 것이다.
조규홍 복지부 장관은 전날 대한간호협회(간협) 임원진과 간담회를 열고 현장 간호사들의 어려움 및 정책 건의사항을 경청했다. 탁영란 간협 회장은 이 자리에서
간호사들의 업무범위를 명확히 규정한 법안 제정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간협 관계자는 "복지부가 각 수련병원 등에 지침을 하달한 이후, 애로사항 신고 수가 많이 줄어든 상태"라며 "최근에는 (수술 조정 등으로) 갑자기 익일 연차 사용 등을 강요하는 경우 등이 접수되고 있다"고 전했다. 협회 측은 정부가 업무 과중에 따른 보상을 논의 중인 현장 '의료진'에 간호사들도 마땅히 포함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정부는 업무지침상
'간호사의 숙련도 등'을 기준 삼아 업무범위를 설정한다는 문구가 다소 모호하다는 지적을 받아들여 관련 내용을 보완할 예정이다. 일각에선 코로나19 등 정부가 '급할 때만 간호사를 찾는다'는 비판과 함께 이 사태를 계기로 PA 간호사 등 묵은 숙제를 풀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공의 집단 이탈이 일주일 이상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지난달 27일 오후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간호사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