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의대 증원 배분 발표를 예고한 20일 오전 서울 시내 한 의과대학에서 한 학생이 교실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정부가 2025학년도 의대 정원 2천 명 증원 배정을 확정하면서 당장 올해 입시 판도를 뒤흔들고 있다.
의대 정원이 대폭 확대되면서 이공계 재학생과 직장인 등의 '의대 쏠림' 현상은 갈수록 심화할 전망이다. 사교육비 증가는 물론, 이공계 최상위권 학생들의 이탈로 인한 '인재 유출' 우려도 나온다.
의대 정원 확대로 '의대 쏠림' 가속화
지난 21일 서울 성북구에 위치한 강북종로학원에서 만난 의대특별반 재원생 김신후(19)씨는 "원래 공대를 가고 싶었다"면서도 "공대 가서 수학·과학 과목을 잘해야 학점 잘 받고 해외로 나가거나 석사를 끝낼 텐데 그 정도 할 자신은 없고, 오히려 (의대 정원이 늘어) 의대로 가는 게 좀 더 유리하겠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의대특별반의 또 다른 재원생 송원균(20)씨도 "현실적으로 공대 가서는 '톱'을 찍어야 미래를 좋은 방향으로 바라볼 수 있는데, 의대는 미래가 보장되는 느낌이 공대보다 강해서 메디컬을 목표로 하게 됐다"고 밝혔다.
강북종로학원 의대특별반 관계자는 "소수정예로 운영되는 의대특별반에는 고려대를 졸업하고 간호사 일을 하다가 다시 의대 입시를 준비하거나, 성균관대를 졸업한 문과생, 외국 의대를 다니다가 다시 국내 의대를 준비하는 학생 등이 있다"며 "재원생 8명 중 재수생은 3명 꼴"이라고 했다.
이어 "현재 이공계 대학생 중 나올 준비하는 학생들이 꽤 많다고 들었다"며 "반수생들은 6월 이후쯤 들어올 것 같은데, 인원이 많이 들어오면 반을 신설할 수도 있다"고 귀띔했다.
정부의 전국 의과대학별 정원 배정 결과 공식 발표 예정일인 20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에 의대 전문 홍보문이 붙어 있다. 연합뉴스이처럼 입시학원마다 의대반에 대한 문의가 많아지자 반을 신설하고 있다. 메가스터디교육은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계획 발표 이후 직장인들의 문의가 쏟아지자 지난 18일 서초 의약학 전문관에 직장인 대상 야간특별반인 '의학계열 수능 ALL in 반'을 개설해 운영 중이다.
서초메가스터디 의약학관 관계자는 "의대 정원 확정 나오면서 문의가 더 많아졌다"며 "현재는 로스쿨생부터 대기업 직장인, 공무원 등이 야간반에 들어와 공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서초메가스터디 의약학관 관계자는 "사실 직장인은 거의 없었는데 의대 정원이 늘면 그만큼 학생 합격선이 내려갈 거라는 기대감으로 문을 두드리는 것 같다"고 전했다.
이처럼 '의대 합격으로 인생 역전'을 노리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사교육비 지출도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의대 입시 전문 학원은 수강료는 월 200만 원 이상으로 알려져 있다.
이와 관련해 교육부 관계자는 "지난해 6월에 발표한 사교육 대책이 현장에 안착해 효과가 나타날 수 있도록 하는 게 기본 정책 방향"이라며, 의대 증원 관련 추가 대책 필요성에 대해서는 "내부적으로 논의해 볼 필요가 있다"고 해명할 뿐이었다.
상위권 이공계 학생들 벌써 '휴학·자퇴' 움직임…"이공계 지원책 필요"
의대 정원이 2천 명 증원되면 총입학정원은 5058명이 된다. 이는 2024학년도 입시 기준으로 서울대·연세대·고려대의 자연계열 학과 모집인원 총합인 5443명(서울대 1844명, 연세대 1518명, 고려대 2081명)의 93%에 달하는 인원이다.
또 서울대 자연계열 입학생 수(1844명)를 넘어서고, 한국과학기술원(KAIST) 등 4개 과학기술원의 신입생 규모(1700여 명)도 넘는다.
당장 올해 입시부터 의대에 도전하려는 최상위권 대학 이공계열 학생들의 이탈이 늘어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종로학원 임성호 대표는 "(정원이 증원된) 성균관대학교 의대와 울산의대는 탑5 대학에 속한다"며 "의대 모집 정원이 대폭 확대된 것 서울 수도권 학생들에게는 의대 준비에 대한 관심이 증폭될 수 있는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특히 임 대표는 "서울대 이공계 전체 선발 인원이 1700명인데 그보다 많은 2천 명의 의대 모집 정원이 확대된 것"이라며 "서울대·연세대·고려대 등 이공계 최상위권 재학생들의 반수 움직임이 나타날 수 있고, 영재학교 출신 중 카이스트나 과학기술 분야 특수대학에 다니는 학생들도 다시 한번 의대에 도전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21일 오후 4시 3분쯤 서울 성북구에 위치한 강북종로학원에서 소수정예로 운영되는 의대특별반에서 학생들이 공부하고 있다. 박인 수습기자유웨이교육평가연구소 이만기 소장은 "의대는 기대 소득이 높고 기대 정년이 길기 때문에 그 매력이 없어지지 않는 한 의대에 대한 선호도는 여전할 수밖에 없다"며 "이공계열 최상위권 학생들이 반수 대열에 뛰어드는 건 예견된 일"이라고 했다.
서울의 주요 대학교 이공계열 교수들도 인재 유출에 대해 우려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서울의 한 대학교 이공계열 A교수는 "공대생들이 의대로 갈 확률이 굉장히 높아지면서 우수한 학생 유치가 어려워질 것"이라며 "더구나 굉장히 급격하게 변하는 엔지니어링 사회에 (의대생 증원으로 인한 인재 유출) 여파가 상당히 갈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교수들 사이에서는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 등 기업과 맺어진 계약학과 학생들까지도 유치가 어려워질 것이란 우려가 있다"며 "저출산 때문에 앞으로 (학생 수가) 급격하게 줄어드는데 차라리 의대 정원을 늘리는 대신 부실하게 될 여지가 있는 공대 정원을 줄이자는 의견도 나온다"고 했다.
서울의 한 약학대학교 B교수는 "내년에는 약대·치대나 공대, 자연계열 학과에 가려고 했던 학생들이 의대에 도전할 생각을 가질 가능성 굉장히 높다"며 "약대나 공대, 자연계열 학과에 입학했다가 다시 의대에 도전하려고 반수 하는 학생도 많이 생길 것"이라고 했다.
특히 "수도권 대학에서 그런 분위기가 상당히 많아 (교수들이) 걱정을 많이 한다"며 대학가 분위기를 귀띔했다.
B교수는 "학문 분야라는 게 의학, 약학 등이 골고루 성장해야 되는데 한쪽에 치중되면 그만큼 다른 쪽은 발전이 더딜 가능성이 있다"며 "우리나라 보건의료를 포함한 과학계 발전을 위해 우수한 학생들이 많이 와야 되는데 그 우수한 학생들이 다 의사라는 직업으로 빠져나가게 되는 것"이라고 짚었다.
서울의 한 대학교 이공계열 C교수는 "1학년 학생들 중 휴학하거나 자퇴한다는 학생이 생기고 있다"며 "의대 정원을 늘리면서 반대급부로 이공계가 위기에 처하게 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C교수는 "지금은 R&D 예산 삭감 등으로 연구실 운영 등에 타격이 크고 특히 학생들이 힘들어한다"며 "의대 정원을 늘리더라도 이공계 장학생과 과학기술자들에 대한 지원을 강화해 사회로부터 존중받는 느낌을 받을 수 있어야 인재 유출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