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한 대형병원에서 의료진이 응급의료센터로 향하고 있다. 박종민 기자"주 80시간 이상 근무하면서도 환자들의 상태가 호전되는 모습에 기뻐하며 보람을 느꼈던 사람"이라는 자평이 무색할만큼 현재 전공의들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은 '분노'에 가깝다.
지난 16일 류옥하다 전 가톨릭중앙의료원 인턴 대표가 지난달 13일부터 지난 12일까지 사직 전공의 150명을 대상으로 서면 및 대면 인터뷰를 진행한 결과 전공의들은 의사 직종 악마화에 환멸을 느껴 수련을 포기했다고 말했다.
의사를 조주빈이나 하마스에 빗댄 '의주빈' 혹은 '의마스'라고 부르는 국민들의 비난이 칼날로 다가왔다는 것. 류옥씨는 "의사와 환자 관계에 회의감을 느끼고 있는 전공의도 있다"고 현장의 목소리를 전했다.
그러면서 류옥씨는 "사직 전공의 중 절반은 복귀 생각이 있다"며 군 복무 기간 현실화와 노조 결성-파업 권한이 보장되면 다시 돌아가겠다고 응답했다"고 전했다.
전날인 15일에는 사직 전공의 1362명이 박민수 보건복지부 제2차관의 '경질'을 복귀 조건으로 내세웠다.
이들은 "박 차관은 이번 의대정원 증원과 필수의료 패키지 정책을 주도하면서 초법적이고 자의적인 명령을 남발해 왔다"며 박 차관을 직권남용 혐의로 공수처에 고소했다.
전공의들은 "박 차관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가시 돋친 언어로 의사들에게 끊임없는 모멸감을 줬고, 젊은 의사들의 미래를 저주했다"며 "박민수 차관이 경질되기 전까지는 절대 병원에 돌아가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부 "의료인 법적 부담 완화 등 정책 추진" vs 의료계 "변한 것 없어"
황진환 기자의정갈등이 초장기화 국면에 접어들면서 전공의들이 병원을 떠나며 내걸었던 '7가지 조건'은 구문이 된 지 오래다.
사건의 시작점이었던 지난 2월 20일 전공의들은 병원을 떠나면서 7가지 요구를 제시했다.
요구사항은 △의대 증원 계획 및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 전면 백지화 △과학적 의사 수급 추계 기구 설치 △수련병원의 전문의 인력 채용 확대 △불가항력적 의료사고에 대한 법적 부담 완화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 △전공의 대상 부당한 명령 전면 철회 △업무개시명령 전면 폐지 등이다.
첫 항목인 '의대증원 백지화'부터 의견차가 좁혀지지 않고 있지만, 정부는 전문의 중심 병원과 의료사고 법적 부담 완화, 전공의 수련 환경 개선 등 정책적 부분에 대해서는 개선책을 꾸준히 내놓고 있다는 입장이다.
정부는 필수의료 분야에서 과실로 환자 사망사고를 냈더라도, 의료진이 보상 한도가 정해지지 않은 종합보험에 가입했다면 형을 감면받을 수 있게 하는 특례법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의료사고처리 특례법안 제정을 추진하고 있고 소송 이전에 분쟁이 원만히 해결될 수 있도록 의료분쟁 조정·감정 제도의 혁신도 추진중"이라고 말했다.
반면 의료계는 전공의들의 요구사항이 하나도 지켜지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의협 임현택 회장 당선인은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정부의 의료사고처리 특례법은 사망사고에 대해선 대책이 없다"며 "외국 수준의 형사 면책이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공의 역시 자신들의 7대 요구사항을 정부가 수용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한 전공의는 "7가지 요구안 중 가장 중요한 첫 번째 요구안인 의대 증원 백지화가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대통령도 의료개혁을 그대로 추진하겠다는 입장인 것 같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