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의과대학·서울대병원 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가 하루 외래 진료·수술을 중단한 30일 서울대병원 제일제당홀에서 서울의대-서울대병원 교수협의회 비대위 긴급 심포지엄이 열리고 있다. 박종민 기자30일 하루 동안 '집단 휴진'에 돌입한 서울대 의과대학 교수들이 정부의 의대 증원 추진으로 촉발된 의료공백 사태 관련 긴급 심포지엄을 열었다.
서울대병원·분당서울대병원 등 서울의대 소속 수련병원들의 교수들이 대거 참여한 해당 포럼은 '대한민국 의료가 나아가야 할 길'이란 주제로 이날 오전 9시 시작돼 오후 5시까지 장장 8시간 동안 이어졌다.
서울 종로구 서울대어린이병원에서 진행된 이 행사엔 응급·중증·입원 등을 제외하고 개별적으로 진료 중단에 동참한 교수들뿐 아니라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장 등 다수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이 참석해 성황을 이뤘다.
의대 교수들은 정부가 과학적 근거도 없는 '의대 2천 명 증원'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여 사태를 이 지경까지 만들었다고 한 목소리로 성토했다.
내달 1일 사직을 예고한 방재승 서울의대·서울대병원 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장(분당서울대병원 신경외과 교수)은 "4월 10일 총선이 끝나면 해결될 거라 예상했던 지금의 힘든 의료사태가 아직도 해결이 되지 않고 있다"며
"대한민국의 의료시스템은 전 세계를 돌아봐도 매우 우수한 시스템이었으나, 단 두 달 만에 회복 불가능할 정도로 무너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번 정부는 의료인들의 희생과 자긍심을 단번에 짓밟았을 뿐 아니라
의사집단을 '돈만 밝히는, 파렴치한 기득권 집단'으로 매도했다"며 분노를 드러냈다.
방 비대위원장은 "진정한 '의료개혁'은 필수의료·지역의료를 제대로 살리는 길인데, 정부는 단지 의사 증원을 최선봉에 내세워서
의사 수를 늘리는 것만이 진정한 의료개혁이라는 허울 좋은 간판을 씌워 국민을 우롱하고 있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그는 "작금의 사태를 유발시킨 데엔 정부의 잘못이 제일 크나, 수십 년 동안 이런 의료관행을 당연시해온 의사들, 특히 저희 교수들의 잘못도 명백히 있다고 생각된다"며 이같은 '반성'도 이번 토론회를 준비한 동기라고 부연했다.
올 2월 이후 본격화된 '의료대란'의 배경을 분석한 최기영 분당서울대병원 병리과 교수는 현 정부의 의대 증원이 철저히 정치적 이유로 기획됐다며 '파시즘'에 빗댄 강경 발언을 쏟아냈다. 지난해 10월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여당이 참패한 이후 '국면 전환용'으로 의료정책이 악용됐다는 주장이다.
30일 서울의대·서울대병원 교수협의회 비대위가 주최한 긴급 심포지엄에서 '2024년 의료대란 사태의 발생 배경'을 주제로 최기영 분당서울대병원 병리과 교수가 발표하고 있다. 이은지 기자최 교수는 "보건복지부의 요구대로 용역연구를 수행하는 폴리페서(현실정치에 뛰어든 대학교수)와 연구용역 카르텔을 엄벌하고, 의료계 현안을 잘 이해해 올바른 의료정책을 입법할 수 있는 국회의원을 적극적으로 후원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 "의사들이 앞장서서 우리나라에 팽배한 포퓰리즘과 파시즘과의 기나긴 투쟁을 시작하자"고 제언했다.
이어 "2천 명 증원이 의료개혁의 (한) 방법일 수는 있다"면서도 "하지만
정부는 '2천 명은 절대 타협할 수 없는 것'이라는, (거의) 종교적 도그마를 섬기는 자세를 보여 왔기에 (배후에) 주술적 배경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 커졌다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최 교수는 발표 과정에서 의사 집단행동 현황 및 정부 대응을 브리핑해온 박민수 복지부 제2차관의 말실수(의사를 '의새'로 잘못 발언)를 비꼬기 위해 박 차관의 이름을 일부러 '박민새'로 발음하기도 했다.
필수의료의 핵심 인력으로, 대부분이 수련병원을 떠난 전공의도 참아왔던 감정을 터뜨렸다. 네 번째 세션의 발제자로 나선 박재일 서울대병원 전공의 대표는 "전공의를 악마화해 (의사와) 국민 간 갈등을 부추기는 정부에게 진짜 묻고 싶다"며
"끝까지 지키지 못한 생명을 보내드리고 구석에서 자책하며 눈물 흘리는 의사의 현장을 옆에서 보신 적 있나"라고 반문했다.
박 대표는 "회복한 환자들의 감사 인사와 편지를 평생 마음 속에 품으면서 내일을 다짐하는 젊은 의사들의 현장을 보신 적 있나"라고 거듭 되물으며 "정부는 불통과 독선으로 의료계와의 신뢰 관계를 망가뜨리고 있고, 언론을 통해 전공의를 악마화했다"고 토로했다.
의·정 갈등이 심화되며 전공의들은 '전문가로서의 존중', '수련생으로서의 교육 기회', '근로자로서의 권리' 등을 모두 잃었다고도 전했다. 박 대표는 "(의료시스템상) 기형적이었던 것을 바로잡고
국민을 위한 의료개혁의 올바른 방향성을 고민했었는데, (시간이) 지나고 나니 전 국민의 공공의 적이 되어버렸다"며 말을 잇지 못한 채 울먹이기도 했다.
서울대 의대 학생대표도 정부가 의과 교육에 대한 '무지'를 여과 없이 드러냈다며 "현 사안의 책임을 시인하고 투명한 조사 후 국민들에게 사과하라"고 요구했다. 의대생 개개인의 자유의사에 기반한 휴학계에 대한 '공권력 남용'도 철회하라고 촉구했다.
의료계를 향해 연일 '정부의 진정성을 믿어 달라'고 호소하는 당국의 개혁 의지가 빈말이 아니라면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 등을 위한 확실한 재정 지원부터 약속해 달라는 지적도 나왔다.
'전공의 수련 제도의 개선 방향'에 대해 발제 중인 홍윤철 서울의대 휴먼시스템의학과 교수. 홍 교수는 전공의에게 과도하게 의존적인 현 의료구조를 만든 데엔 수련병원 교수들과 병원의 책임이 크다고 비판한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장의 예전 SNS 글을 들어 "이 말이 맞다고 본다"고 밝혔다. 이은지 기자정부가 의대 증원 필요를 역설한 근거로 활용된 보고서 3개 중 하나의 저자인 홍윤철 서울의대 교수는
"정부가 (개혁의) 진정성을 보이는 방법은 한 가지다. 돈을 마련하는 것"이라며 "현재 전공의가 1만 명쯤 있다 치면, (이들의 수련비용으로) 5천억 정도를 지원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필수·지역·공공의료 살리기라는 목표를 수련병원이 세웠나. 정부가 세웠으니, 정부가 부담하는 게 맞다"며
"지금은 (전공의의) 수련 대 노동 비율이 25:75인데, 이 비율이 (75:25로) 역전되어야 한다. 이 숫자를 맞추려면 (전공의를 교육하는) 전문의는 5천 명 정도가 더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정부가 인턴·레지던트의 수련 지원과 전문의 추가채용(전체 임금 대비 50%)에 1조 가량을 투자해야 한다는 게 홍 교수의 입장이다. 상급종합병원 등이 '싼 값'에 전공의를 갈아 넣는 현행 의료구조를 유지하면서 의료개혁을 부르짖는 것은 모순이라는 취지다.
홍 교수는 박 비대위원장이 지난 12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 일부를 공유하며, 사실상 의대 교수들이 '전공의 착취 사슬'에서 중간관리자 역할을 해왔다는 해당 지적에 동의한다고 밝히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