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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 갈등, 연금개혁 모두 '통'으로 떠안은 22대 국회[기자수첩]

기자수첩

    의·정 갈등, 연금개혁 모두 '통'으로 떠안은 22대 국회[기자수첩]

    편집자 주

    노컷뉴스의 '기자수첩'은 기자들의 취재 뒷 얘기를 가감없이 풀어내는 공간입니다.

    의료공백 100일 동안…시민사회 '국회 중재' 요청했지만 응답 없는 메아리
    '17년 만의 숙원' 국민연금 개혁도 공론화까지 진행해놓고 문턱에서 '무산'
    병원 줄도산 예상에 제도개편 부담 커지는 연금…새 국회, '개점휴업'할 여유 없어

    의대 증원에 반발해 전공의들이 병원을 떠난 지 100일째인 29일 부산 한 대학병원의 병실이 비어 있다. 연합뉴스의대 증원에 반발해 전공의들이 병원을 떠난 지 100일째인 29일 부산 한 대학병원의 병실이 비어 있다. 연합뉴스
    "의대 증원을 비롯한 의료개혁은 행정부가 추진하는 사안인데, 대통령과 야당(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와의 영수회담에서 야당도 의대 증원에 대해선 지지한다는 입장 표명이 있지 않았습니까? 이번에 사법부 판단까지 내려지면서 입법·사법·행정부 모두 의료개혁을 지지한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석 달 간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브리핑을 전면에서 진행해온 박민수 보건복지부 제2차관의 발언이다. 박 차관은 지난 21일 공영방송 인터뷰를 통해 이 같이 밝혔다. 법정에까지 소환된 의대 증원 문제가 의료계의 집행정지 신청을 각하·기각한 서울고등법원 결정에 따라 일단락됐다는 취지다. 민주사회를 지탱하는 세 가지 권력(三權)의 만장일치를 강조하는 대목에선 '정당성 싸움'에서 승기를 잡았다는 확신이 돋보였다.
     
    하지만 여기엔 함정이 있다. 올 2월 6일 '의대정원 2천 명 증원'을 발표한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를 제외한 사법 및 입법부의 입장은 증원 필요성에 대한 동의 여부로만 간단히 설명될 수 없다.
     
    지난 16일 서울고법의 결정은 정책의 타당성이 아닌 신청인들(의료계)에게 행정 처분을 당장 중단할 정도의 긴급하고 중대한 손해가 있는지 여부를 따진 결과다. 절차상 적법성만을 보겠다고 전제한 행정7부 재판부조차도 대규모 증원 시 의대생들에게 회복이 어려운 손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 '2천'이란 증원 규모는 정부 발표 당일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에서 사실상 처음 언급된 것으로 보인다는 점 등을 지적했다.
     
    의대 증원에 쐐기를 박은 법원의 판단에도, 의사들이 '원점 재검토' 주장을 굽히지 않는 것은 정부가 자초한 측면이 있다. '지역·필수의료 살리기'란 의도가 선하다 해서 미흡한 절차가 용인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의사들의 의견을 충분히 존중하고자 의료현안협의체를 1년간이나 이어왔다면, 상대와 제3자가 납득 가능한 논의 과정을 기록으로 제시할 수 있어야 했다. 의대 교수 등이 '원점 재논의'가 '증원 0명'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고 거듭 강조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사법부는 여론전이 확전되는 상황에서 2025학년도 대입부터 의대정원이 늘어날지는 판별해줬지만, 곪을 대로 곪은 의·정 갈등을 풀어주진 못했다. 행정부의 최고 통수권자인 대통령과 의료공백의 핵심인 전공의 대표의 일대일 만남도 파국으로 끝났다. 이 지점에서 '도대체 뭘 하고 있었나'가 궁금해지는 대상은 결국 국민의 민의를 대변한다는 국회다.
     

    시민사회계는 의·정 사태 초반부터 국회가 '중재자'로 나서줄 것을 요구해 왔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는 지난 3월 말 "환자 입장에선 (의료계와 정부 중) 어느 쪽의 주장도 완전히 찬성하거나 완전히 반대할 수 없다"며 양쪽이 조금씩 '양보'해 이 사태를 조속히 해결해 달라고 요청했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역시 4·10 총선 직전 윤석열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를 두고 "정치적 해결능력이 없다"고 혹평하며, 각 정당과 후보들이 "정부와 의사단체를 대화자리에 앉혀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리고 전공의 이탈이 100일째를 맞은 지난 29일 회기가 종료된 21대 국회는 빈손으로 임기를 마쳤다. 환자들과 시민사회가 애타게 부르짖은 '초당적 기구'는 꾸려지지 않았다. 주요 보건의료 정책 및 현안을 안건으로 논의하는 상임위(보건복지위원회)도 올 들어 한 차례도 열리지 않았다.
     
    앞서 지난달 29일 이재명 대표가 윤 대통령과의 영수회담 당시 국회 공론화특별위원회를 만들어 여야와 의료계가 함께 해결책을 도출하자고 제안했으나 이 또한 당정이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으면서 유야무야됐다. 사흘 전 국회 마지막 본회의에서 부결된 '채 상병 특검법' 등에 묻힌 민생 의제가 다수인 점을 고려해도 뼈아픈 결과다.
     
    '역대 최악'이란 평가를 받으며 막을 내린 지난 국회가 출범 초 어땠는지를 돌이켜보면 더 아쉽다. 문재인 정부가 집권했던 2020년, 의정(醫政) 합의가 이뤄진 배경엔 정부와 더불어 물밑에서 협상 노력을 기울인 여당(민주당)의 역할이 적지 않았다. 규모는 현 정부 대비 '5분의 1' 수준(연 400명)에 불과했지만 지금과 마찬가지로 의대 증원을 추진한 정부에 대항해 전공의 등 의료계가 대대적 파업에 나섰을 때 얘기다.
     
    9·4 합의는 서울 여의도 민주당 중앙당사에서 최대집 당시 대한의사협회 회장과 한정애 민주당 정책위의장(국회 보건복지위원장)의 서명으로 성사됐다. '의대 정원 확대와 공공의대 신설 추진은 코로나19 확산이 안정화될 때까지 관련 논의를 중단한다'는 게 골자다. 양측은 '원점에서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재논의한다'는 문구를 놓고도 치열한 논쟁을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철회'란 표현을 원했던 전공의들의 반발이 불씨로 남았으나, 전날부터 당정이 뛰어든 밤샘 줄다리기 끝에 의료계 집단행동은 보름 만에 종료됐다.
     
    당국의 업무개시명령과 이에 맞선 전공의 이탈 등은 현재와 '데자뷔'라 할 정도로 흡사하지만, 모든 채널을 동원해 전방위적 대화를 시도한 정부와 국회의 태도만큼은 분명 온도 차이가 있다.
     
    지난달 23일 오후 국회 본관 계단 앞에서 '국회 연금특위 공론화 결과에 대한 노동시민사회 입장 발표'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황진환 기자지난달 23일 오후 국회 본관 계단 앞에서 '국회 연금특위 공론화 결과에 대한 노동시민사회 입장 발표'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황진환 기자
    이외 윤석열 정부가 '3대 개혁'으로 꼽았던 국민연금 개혁은 어떤가. 2022년 하반기부터 가동된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는 20억에 가까운 예산을 들이고도 '얼마나 내고, 받을지'(보험료율 및 소득대체율)를 조정하는 모수개혁안(案) 합의조차 이뤄내지 못했다.
     
    물론 어쩌면 정부가 연금재정계산위원회의 '24가지 개혁 시나리오'를 연금특위에 그대로 떠넘길 때부터 예견됐던 결과였을지 모른다. 윤 대통령도 최근 취임 2주년 기자회견에서 "국회가 고르기만 하면 될 정도의 충분한 자료를 제출하겠다는 공약을 (이미) 이행했다"며 개혁 지연의 책임이 국회에 있다는 취지로 발언했다. 올 초 시민 공론화까지 진행한 특위로서는 억울할 법도 하다.

    다만, '내는 돈'(보험료율)을 13%까지 올리자는 합의를 이루고도 '받는 돈'(소득대체율) 1%p 차이(여당 44%, 야당 45%)로 17년 만의 숙원이었던 연금개혁을 문턱에서 날린 데 대한 문책을 면하긴 어렵다. 귀책사유의 비중을 따진다면 정부의 국정 파트너인 여당에게 더 큰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다.
     
    원 구성부터 난항을 겪고 있는 22대 국회가 이 난제들을 어떻게 풀어나갈지는 아직 미지수다. 여름철이면 전공의 비중이 큰 대형병원을 시작으로 '줄도산'이 예상된다는 의료계의 암울한 전망도, 실기할수록 제도 개편의 사회적 비용부담이 커지는 연금개혁도, 입법부의 '개점휴업'을 기다려줄 만큼 한가한 이슈들이 아니다.

    정부 또한 의대 증원이 확정되는 것만으로, 연금개혁의 공을 국회에 돌린 것만으로 역할을 다한 것으로 '착각'해선 곤란하다. 의사들을 참여시킬 수 있는 대화 테이블 마련도, 진영 논리가 아닌 국민 관점에서의 연금개혁 논의 재개도 당정이 야당과의 협치 아래 착수해야 할 당장의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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