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잔혹한 학교폭력을 일삼은 이들을 차근차근 응징해 가는 스토리로 큰 인기를 얻은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 다만, 현실에서 이같은 학폭 가해자에 대한 복수는 드라마 속 이야기에 불과하다.
'정당방위'를 극히 제한적으로 인정하고 있는 한국 법체계상 아무리 심각한 학폭에 시달렸다고 하더라도 맞서 싸우다 가해자가 다칠 경우 오히려 피해자가 가해자로 둔갑해 처벌 받는 경우가 다반사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역시 한국과 마찬가지로 학폭 사건이 잦은 중국 법원의 판단은 어떨까? 중국 매체 펑파이에 따르면 중국 최고인민법원은 지난 30일 공개한 '제40차 지도사례'를 통해 이같은 학폭 사건에서의 정당방위 인정 범위를 다뤘다.
지난 2019년 5월, 당시 중학교 2학년이었던 장모 군은 학교 봄소풍에서 같은 반 여학생과 잠시 이야기를 나눈 것이 화근이 됐다. 이 여학생의 남자친구였던 후모 군은 장 군이 자신의 여자친구를 건드렸다며 사과를 요구하는 동시에 장 군을 때리는 등 괴롭히기 시작했다.
후 군은 같은달 17일에는 평소 장 군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쑨모 군을 끌여들여 등교 직후 화장실에 간 장 군을 폭행했다. 이같은 폭행은 매 쉬는 시간마다 이어졌고, 장 군에 대한 폭행에 가담한 이들은 갈수록 늘어났다.
심지어 점심식사 직후 쑨 군 등 7명은 교실에 있던 장 군을 찾아가 화장실로 따라 오라고 협박하기 시작했다. 이에 위협을 느낀 장 군은 주로 병따개 용으로 쓰이는 작은 다용도 접이식 칼을 소매 속에 숨긴채 이들을 따라갔다.
이후 화장실에 대기하고 있는 8명을 포함해 모두 15명의 학생들이 몰려들어 장 군을 집단 폭행하기 시작했다. 이에 장 군은 숨겨둔 다용도 접이식 칼을 꺼내 휘두르기 시작했고, 학생 두 명이 칼에 복부를 찔리고, 다른 한명은 허벅지를 베였다. 하지만 가해 학생들은 이후에도 폭행을 이어갔다.
결국 해당 사건은 공안 당국에 접수돼 조사가 시작됐고, 후난성 지서우시 인민검찰원은 장 군을 상해죄로 기소했다. 이에 장 군의 변호인은 장 군이 집단 괴롭힘을 당했을 때 방어행위로 가해자에게 상해를 입힌 것은 정당방위에 속하기 때문에 형사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1년 이상 재판이 이어진 끝에 지난 2020년 7월 4일 인민법원은 변호인의 주장을 받아들여 장 군의 행위가 정당방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하고 장 군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이에 불복해 인민검찰원은 항소했지만 2심 재판 과정에서 항소 취하를 신청했고 법원도 이를 받아들여 재판은 종결됐다.
최고인민법원은 이번 지도사례에서 해당 판결을 소개하며 "사건의 발생 원인, 주요 과실 여부, 다른 사람의 폭행 참여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비슷한 상황에서 미성년자의 가능한 반응을 결합하고 행위자의 주관적인 의도와 행동의 성격을 정확하게 판단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가해자의 괴롭힘 정도가 약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도구를 사용하여 반격했다는 이유만으로 방어 의도를 식별하는 데 (부정적) 영향을 주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