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지정문화재인 경복궁 담장에 낙서하게 시킨 30대 남성. 연합뉴스작년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경복궁 담장 낙서' 사건과 관련해 배후 지시자로서 이른바 '이팀장'으로 불리던 총책 강모(30)씨와 공범 3명이 검찰에 넘겨졌다.
경찰은 강씨의 지시를 받아 낙서 범행을 하려다 미수에 그친 미성년자를 추가로 검거해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 이 미수범은 경복궁 담장뿐 아니라 '국보 1호' 숭례문과, 광화문 세종대왕상을 훼손하라는 지시를 받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과는 경복궁 영추문·국립고궁박물관·서울경찰청 담장에 낙서하라고 사주한 총책 강씨를 문화재보호법 위반 등 혐의로 31일 검찰에 송치했다. 공범 조모(19)씨도 함께 검찰에 넘겨졌으며, 경복궁 담장 등에 낙서한 임모(18)군 등 피의자 2명도 이번에 송치됐다.
경복궁 낙서훼손 과정. 서울경찰청 제공 불법 사이트 운영자인 강씨는 지난해 12월, 텔레그램을 통해 만난 임모(18)군 등에게 '낙서를 하면 500만 원을 주겠다'며 범행을 공모하고, 조씨를 통해 교통비 등 10만 원을 송금해 범행도구인 락카 스프레이 2통을 구매하게 한 혐의를 받는다.
강씨 지시를 받은 임군 등은 지난해 12월 16일 오전 1시 42분에서 2시 44분 사이 경복궁 영추문 담장 등 3곳을 스프레이를 이용해 훼손한 혐의를 받는다.
이 과정에서 강씨는 흰색 고급 승용차에 탄 채로 임군 범행 장소 인근에 머물며, 낙서 범행을 지시·감독하는 치밀함도 보였다.
경찰 조사 결과 강씨는 자신이 운영하는 불법 사이트를 '바이럴마케팅'(입소문 광고)해 배너 광고 대금을 높이고자 범행을 저질렀던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은 또 강씨와 숭례문 등에 낙서 범행을 공모했던 미성년자 A군, 불법 사이트 운영을 함께하거나 도와준 박모(21)씨와 이모(22)씨, 홍모(24)씨 등 3명을 추가로 검거해 수사 중이다.
경복궁 낙서훼손 예비음모 과정. 서울경찰청 제공강씨는 작년 12월 14일 텔레그램을 통해 알게 된 A군에게도 숭례문과 경복궁 담장, 광화문 세종대왕상 등에 낙서를 사주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당시 A군은 지시 받은 장소 인근에서 경찰관을 보고 겁을 먹고, 범행을 중도 포기했다.
강씨의 불법 사이트 운영 공범들은 서로 일면식도 없이 텔레그램을 통해서만 소통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강씨 등은 지난해 10월부터 검거 전까지 불법 영상공유 사이트 도메인 5개와 불법 음란물 공유 사이트 도메인 3개 등 총 8개 불법 사이트를 운영하면서 음란물 등을 배포·유통한 혐의를 받는다.
이들은 해당 사이트 등을 통해 영화 등 저작물 2368개와 아동·청소년 성착취물 3개, 불법촬영물 9개, 음란물 930개를 배포·유통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를 통해 벌어 들인 범죄 수익은 약 2억 5천만 원 정도로 추산되며, 경찰은 관련 증거를 포착해 강씨가 은닉한 범죄 수익금을 추적하고 있다.
불법 사이트 운영과정. 서울경찰청 제공 강씨는 수사 기관의 추적을 피하고자 슬로베니아 등 해외 클라우드 서비스만을 이용했다. 또 대포통장을 이용해 서버 임대 비용 등을 지출하거나 수익금을 가상자산으로 바꿔 관리해온 것으로 확인됐다.
강씨는 경찰이 공범 등을 검거하는 등 수사망을 좁혀오자 조씨에게 '송금을 지시한 자가 누구인지 모르게 가짜 텔레그램 대화 내용을 만들어 수사기관에 제출하라'는 등 수사에 혼선을 주려고 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강씨는 수사기관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자신이 긴급체포됐다'는 허위 소문을 퍼뜨려 수사를 방해하기도 했다. 서울경찰청 제공강씨는 전라남도 여수의 한 숙박업소에 자신의 애인과 머물며 도피 생활을 이어왔지만 결국 지난 22일 검거됐다.
한편 사건 발생 5개월 만에 검거된 강씨는 조사를 받던 중 도주했다가 약 2시간 만에 다시 붙잡히면서 경찰의 구속 피의자 관리 부실 문제가 부각되기도 했다.
서울경찰청 오규식 사이버범죄수사2대장은 이와 관련해 "(강씨가) 범행을 부인해도 최고 12년 형을 선고받겠다고 생각해 도주를 계획했다"며 "점심을 먹은 뒤, 휴게실에서 흡연을 요청해 도주할 틈을 노렸고, 흡연 직후인 오후 1시 50분에 도주를 시도했다"고 경위를 설명했다.
당시에 강씨가 수갑조차 착용하지 않고 흡연을 했던 것으로 알려지면서 논란이 커졌지만, 오 대장은 "강씨가 수갑을 차고 있었다"며 "(도주하기 전에) 수갑이 채워진 왼쪽 손을 강하게 뺐고, 이로 인해 강씨 왼손에서 찰과상과 수갑에 베인 상처들이 발견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강씨는 인근 교회 건물에 들어가 오른쪽 손에 차고 있었던 수갑도 강하게 뺐다"며 "당시에 추적했던 수사관들이 강씨가 교회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확인해 건물을 포위했고, 기동순찰대와 형사기동대, 112 순찰대, 종로경찰서 형사과와 함께 정밀수색을 실시한 결과 인근 교회 건물 2층 옷장에서 피의자를 발견해 검거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검찰에 송치할 때 추가적으로 도주 혐의를 강씨에게 적용했다"며 "아쉽고 불미스러운 일"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