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더불어민주당이 종합부동산세(종부세) 폐지 논의에 들어갔다. 그동안 '부자세'로 불리며 여당 의제로 여겨졌던 논의에 뛰어들어 수권정당으로서 주도권을 쥐겠다는 취지다. 여기에 대통령실이 종부세 폐지를 검토하겠다고 나서면서 논의가 급물살을 타는 분위기다.
그러나 당분간 정부·여당 공세에 '올인'하는 특검 국면인 점과 당내 이견 등으로 인해 좀처럼 속도가 나지 않고 있다. 여기에 긴축 정책인 종부세 폐지가 민주당이 1호 당론 법안으로 추진 중인 민생회복지원금 등 경기 부양책과도 결이 맞지 않다는 점도 고민이다.
정책위서 논의중…종부세 폐지로 중도층 공략 가능
31일 CBS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민주당 정책위원회는 1주택자 종부세를 폐지하거나 공제 금액을 올리는 개편 등에 관해 논의 중이다. 민주당 장경태 최고위원은 30일 YTN 라디오에서 "종부세는 실거주 1가구 1주택에 한해 90%까지 이미 감면 혜택이 있지만 재산세·양도세·취등록세와 통합하고 개편할 필요가 있다"라며 "정책위에서 심도 있게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앞서 박찬대 원내대표도 9일 1주택자를 대상으로 한 종부세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고민정 최고위원은 아예 종부세 자체를 없앨 필요성이 있다고 언급했다.
종부세는 그동안 진보진영의 성역처럼 여겨졌다. 문재인 정부가 추진했고, '초(超) 부자'를 대상으로 한 추가 과세로 부동산 투기를 막겠다는 취지로 도입됐기 때문이다. 그런데 집값이 상승하면서 실거주 목적인 1주택자도 과도한 세금을 내자 개편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특히 수도권, 그중에서도 '한강 벨트'를 지역구로 둔 의원들을 중심으로 개정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당이 적극적으로 '보수 공약'을 가져가면서 정국을 주도하겠다는 전략이다. 총선에서 다수 의석을 확보한 만큼, 정부·여당에 반대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정책을 주도하겠다는 것이다. 부동산에 민감한 중도층을 공략해 '서민 정당'이라는 이미지를 벗겠다는 의도도 엿보인다. 앞서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연금개혁을 적극적으로 주장하며 정부·여당과의 협상을 주도하는 '전략적 유연함'을 편 바 있다.
여기에 대통령실이 종부세 폐지를 토함해 전반적인 세금제도 개선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나서면서 논의에 힘이 실리는 분위기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부동산 보유에 대한 과도한 세금은 적절치 않다. 완전 폐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추경호 원내대표도 기자들과 만나 "민주당에서 제기되는 종부세 폐지·개편·완화 논의를 적극 환영한다"고 화답했다. 정부·여당이 거들고 나서면서 종부세 이슈가 커질 전망이다.
"특검 집중해야" 분위기에 당내 이견도…'일부 수정'으로 가닥잡나
더불어민주당 진성준 정책위의장이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발언을 하는 모습. 윤창원 기자그러나 당내 논의는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우선 당 지도부는 현재 정부·여당을 상대로 한 '특검 공세'에 집중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채 상병 특검 추진으로 대통령실을 정조준한 상황에서 정책 보조를 맞추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취지다. 당 지도부 소속 의원은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아직 당내에서 여러 의견을 듣고 정리하는 단계다. 정책위 보고도 아직 지도부에 올라오지 않았다"라며 "지금은 채 상병 특검으로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할 때"라고 설명했다.
종부세 폐지에 대해 당내 이견이 많은 것도 장애물이다. 앞서 종부세 폐지 주장이 제기되자 진성준 정책위의장은 27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평소 느꼈던 문제를 개인적 견해로 말한 것"이라며 "종부세는 물론 중도, 중산층, 상층이 포함돼 일부 납부를 하는 분도 계셨지만 대부분은 우리 사회 기득권층이 내는 그야말로 초부자 세금 아니겠나"라며 부정적인 의견을 밝혔다. 민주당 최민희 당선인도 SNS를 통해 '자산 불평등 심화를 막고 공정사회를 실현한다'는 내용의 민주당 강령을 들어 반박에 나섰다.
긴축 정책에 해당하는 종부세 폐지가 최근 민주당 추진 정책과 결이 맞지 않다는 점도 장애물이다. 정책위 소속 의원은 통화에서 "지금 민주당은 민생회복지원금 등을 통해 돈을 적극적으로 풀어 서민 경제를 활성화시켜야 한다는 입장"이라며 "종부세 폐지가 당의 정책 방향과 반대되는 지점이 있어 본격적인 논의를 위해서는 세제 개편 전반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민주당의 '우군'인 조국혁신당이 종부세 폐지설에 대해 비판하고 나선 점도 부담이다. 조국혁신당은 논평을 통해 "자산 불평등을 고착화하는 윤석열 정부를 막아 세우지는 못할망정 (민주당에) 그에 가세하는 듯해 실망스럽다"고 강도높게 비판했다. 공평 과세 원칙에 어긋나고 집값 상승을 부추길 수 있다는 취지다. 그동안 민주당 정책을 지원해 온 혁신당이 공개적으로 반대하고 나선 만큼, 민주당 입지도 좁아졌다.
지난달 30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시민들이 종부세 규탄 피켓을 들고 서 있는 모습. 연합뉴스헌법재판소에서 최근 종부세가 헌법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판단한 점도 당장 종부세 폐지 명분을 희석한다는 분석이다. 부동산 소유자들이 종부세가 조세법률주의, 과잉금지원칙, 평등원칙에 어긋난다고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했지만, 헌재가 받아들이지 않고 합헌 결정을 내린 것이다. 민주당 입장에서는 이 법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한 상황에서 당장 폐지 논의에 나설 동인이 부족한 상황이다. 원내 지도부 소속 의원은 통화에서 "민주당의 논의는 헌재 판단과 별개"라면서도 "의원들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일각에서는 민주당이 종부세 일부 수정으로 가닥을 잡을 지 주목된다. 민주당 이해식 수석대변인은 이날 BBS라디오에서 "당내 의견이 분분한 상황이지만 종부세 자체를 폐지하자는 주장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며 "1가구 1주택 보유자가 고가의 집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당장 현금 소득이 없는데 종부세를 물게 하면 조금 억울한 측면이 있지 않겠나. 이런 점들을 보완하기 위해 민주당 내에서 논의 중인 것으로 봐달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