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실. 연합뉴스북한의 '오물풍선' 살포 잠정중단이란 유화 공세에 대해 정부가 사실상 퇴짜를 놓았다. 이로써 악화일로의 남북관계는 거의 마지막 남은 기회의 창마저 닫히고 있다.
국가안보실은 3일 김태효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처장 주재로 NSC 실무조정회의를 개최한 결과, 남북 간 상호 신뢰가 회복될 때까지 9.19 군사합의 전체의 효력을 정지하는 안건을 4일 국무회의에 상정하기로 결정했다.
이는 최근 북한의 오물풍선 살포와 위성항법장치(GPS) 교란에 '북한이 감내하기 힘든 조치'로 대응하기 위한 사전조치의 일환이다.
정부의 조치로는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가 확실시된다. 이를 위해서는 남북관계발전법상 9.19 군사합의나 4.27 판문점선언 효력 정지가 선행돼야 한다.
물론 일부 효력중지 상태인 9.19 군사합의가 전면 효력중지로 바뀐다고 해서 큰 의미의 변화는 없다. 이미 남북은 '교전 중인 적대적 두 국가관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북한이 명분 축적을 위해서나마 오물풍선 살포 중단을 선언한 상황에선 얘기가 달라진다.
오물 풍선. 연합뉴스북한은 오물풍선 살포를 대북전단에 대한 '대응조치'라고 주장했다. 남측이 대북전단을 뿌리지 않는다면 자신들도 오물풍선을 날리지 않겠다는 것이다.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이 지난달 29일 담화에서 "저들의 전단 살포는 '표현의 자유'라고 떠들고, 우리의 행동에 대해서는 '국제법 위반'이라는 뻔뻔스러운 주장"이라고 밝힌 게 대표적이다.
북한은 남한식 '내로남불' 논리를 들이대며, 오물풍선을 날린 근본 원인이 남측에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북한이 오물풍선 살포 중단을 선언한 것은 전략적 후퇴에 가깝다. 외형상 우리 측 강경 대응에 한 발 물러서는 모양새를 취했지만 실제로는 대북전단 문제의 근원적 해결을 노린 것이다.
이런 가운데 정부가 만약 시민단체의 추가 대북전단 살포를 용인하거나, 그에 준하는 조치를 취할 경우 북한은 추가 도발에 대한 명분을 더 확보할 수 있다.
북한은 2일 밤 담화에서 "반공화국 삐라 살포를 재개하는 경우 발견되는 양과 건수에 따라 백배의 휴지와 오물량을 다시 집중 살포"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표현의 자유'를 이유로 대북전단 살포를 지지해온 윤석열 정부로선 이제 와서 갑자기 대북전단을 규제하거나, 그렇다고 용인하기도 어려운 딜레마에 처한 셈이다.
연합뉴스헌법재판소는 지난해 9월 대북전단 금지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리면서도 '접경지역 주민 안전'을 위한 입법적 보완 조치를 주문했지만 정부는 후속 조치에 미온적이었다.
따라서 정부가 9.19 군사합의 효력정지 카드를 꺼내든 것은 북한의 프레임에 갇히지 않으려는 책략으로 풀이된다.
북한이 제기한 대북전단 문제에 대한 대답 대신에, 이미 공언한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의 사전조치를 그대로 이행하는 강수를 뒀다. 공을 다시 북측 테이블에 넘긴 것이다.
하지만 이는 상황 악화를 일시 유예할 뿐 문제 해결과는 거리가 멀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북한이 오물풍선을 2차 살포까지 한 것은 전략적 실책"이라면서도 "이제는 남북이 모두 물러설 수 없는 딜레마이자 악순환 고리에 빠졌다"고 비관적 전망을 밝혔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도 "9.19 합의 효력정지는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 것"이라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합의를 지키고 이성적으로 행동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