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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인육 배급에 집단학살까지… 밀리환초 사건을 아십니까?"

사회 일반

    [인터뷰] "인육 배급에 집단학살까지… 밀리환초 사건을 아십니까?"

    日, 태평양 전쟁 당시 섬들을 항공모함으로
    전라남도 등 1000여 명의 조선인 강제동원
    미국 봉쇄로 고립…풀, 지나가는 쥐로 연명
    일본군 건넨 고래고기…사라진 조선인 인육
    저항·탈출 시도했지만 日, 55명 집단학살
    섬에서 3년간 218명 사망…이름·주소 공개



    ■ 방송 :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FM 98.1 (07:10~09:00)
    ■ 진행 : 김현정 앵커
    ■ 대담 : 이국언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이사장)
     
    오늘 마지막 인터뷰는 가슴 아픈 우리의 역사를 좀 돌아보려고 합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은 태평양 전쟁을 위해서 조선인들을 강제로 전쟁 자원으로 동원했죠. 사도광산이니 군함도니 이런 거 너무나 여러분 잘 아실 텐데 오늘은 잘 알려지지 않은 한 곳을 조명해보려고 합니다. 태평양 한가운데 반지 모양의 산호초 군집이 있어요. 밀리환초, 이렇게 불리는 곳인데 이름도 생소한 이곳에서 일본군이 조선인들을 집단 학살했다는 겁니다. 더 충격적인 건 인육을 먹게 했다는 이런 연구 결과가 나왔다는 건데요. 이 같은 내용을 연구한 일본인 학자의 기자회견이 곧 열립니다. 이 기자회견을 준비한 곳, 강제동원 시민 모임의 이국언 이사장 지금부터 연결해서 자세한 얘기 좀 들어보죠. 이사장님 나와 계십니까?
     
    ◆ 이국언> 예, 안녕하십니까?
     
    ◇ 김현정> 밀리환초, 이게 이름이 좀 낯선데 어떤 곳인가요?
     
    ◆ 이국언> 태평양 마셜제도. 그러니까 중부 태평양 미크로네시아 동부 쪽에 있는 작은 섬들의 무리로 되어진 그쪽에 있는 섬입니다.
     
    ◇ 김현정> 네. 마셜제도에, 원래 환초 이러면 산호초들이 동그랗게 모여 있는 걸 환초라고 하잖아요.
     
    ◆ 이국언> 네, 그렇습니다.
     
    ◇ 김현정> 밀리환초라는 지역에 또 작은 섬들이 있는데 그 섬들에서 벌어진 일이군요.
     
    ◆ 이국언> 네, 그렇습니다.
     
    ◇ 김현정> 그 먼 곳까지 조선인들을 끌고 가서 어떤 일을 시켰던 겁니까?
     
    ◆ 이국언> 1941년 12월 진주만을 공격하면서 일본군이 태평양 전쟁이 드디어 발발하게 되잖아요. 그런데 전쟁 초반에는 일본군이 승승장구를 했고 또 일본의 구상은 태평양이나 이쪽에 작은 섬들을 지형을 활용해서 일종의 가라앉지 않는 항공모함으로 쓰려고 했던 것이죠.
     
    ◇ 김현정> 섬을 항공모함처럼.
     
    ◆ 이국언> 그러니까 이런 섬들을 활용해서 미군을 제압할 수 있는 해상권이나 제공권의 우위를 점하기 위해서 이곳은 대규모의 군사시설들을 확충하고 만들게 되는데 여기에 투입될 인력을 조선인들을 강제 동원했던 것입니다.
     
    ◇ 김현정> 그렇군요. 그런데 결과적으로는 일본의 뜻대로 되지 않은 겁니까?
     
    ◆ 이국언> 그렇습니다. 초반에는 연전연승하고 했지만 전세가 천천히 이렇게 바뀌게 됩니다. 그러면서 각 섬들을 처음에는 무효 협상을 일본이 했지만 곧 얼마 지나지 않아서 미군이 이 해상의 봉쇄를 하면서 보급로를 차단하게 된 것이죠. 그러면서 일본군이 고립 상태에 빠지게 됩니다. 식량도 조달이 안 되고 또 무기도 조달이 안 되는 상황이 악화된 상황으로 빠지게 되는 것이죠.

    출처 구글지도출처 구글지도 
    ◇ 김현정> 그렇게 미군이 그 섬을 봉쇄하면서, 봉쇄작전을 펴면서 그러면 그 밀리환초 지역의 섬들은 고립무원 상태가 된 거군요.
     
    ◆ 이국언> 그렇습니다. 밀리환초 이쪽 지역의 강제동원 당시에 지금 증언에 따르면 42년 3월경에 전라남도에서 800명, 그리고 다른 도에서 각각 800명씩 2400여 명 정도가 부산항에서 배를 타고 각 섬에 투입이 됐던 것 같습니다. 배치가 됐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밀리환초 이 지역에는 전라남도에서 동원된 800여 명의 그 앞서 있었던 일부 인원까지 해서 약 1000여 명 정도의 조선인들이 강제 동원돼서 노동에 투입되고 있었던 것으로 그렇게 추정이 됩니다.
     
    ◇ 김현정> 아니, 그러면 미군이 봉쇄 작전 폈다는 이야기는 보급로도 다 차단되고 했다는 얘기인데 그럼 거기 동원됐던 조선인들은 어떻게 살았어요?
     
    ◆ 이국언> 그러니까 이 섬이 사실은 그다지 크지 않은 섬이었고 원래 원주민은 500여 명 정도, 그러니까 원주민이 500여 명이다라고 하는 것은 그 섬의 크기를 대략 짐작할 수 있는 것인데 여기 이게 전쟁터가 되면서 일본군이 44년 1월경에는 해군, 육군 해서 한 3600여 명 정도 그리고 조선에서 동원된 피해자들이 약 1000여 명 정도 해서 이 섬 인구가 애초 원주민의 10배가 넘는 5300여 명 정도의 인원까지 확대가 된 상황에서 보급로가 끊어진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야말로 아주 열악한 환경에 내몰렸던 것이고 이러한 상황에 처하자 일본군이 이대로는 버티기 어려우니까 각각 몇 명씩 나눠가지고 각자 도생해라, 자력갱생해서 버텨라, 이렇게 지시를 했던 것입니다.
     
    ◇ 김현정> 그럼 섬이니까 물고기 잡아먹고 이런 식으로 버텼던 건가요?
     
    ◆ 이국언> 아니, 그러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왜 그러냐면 미군이 해상을 봉쇄했다고 하는 것은 바다에 상륙은 하지 않았지만 사방을 감시하고 있었기 때문에 바다로 나가서 고기를 잡을 수 있는 여건도 아니고 폭탄을 쓸 수도 없고 그다음에 노출되는 상황이 미군에 의해서 공격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고기를 잡는다고 맨손으로 잡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기 때문에 섬이었지만, 사방이 바다였지만 고기를 잡을 수 있는 여건도 안 됐던 것입니다.
     
    ◇ 김현정> 그래서 거의 기아 상태에 빠진 조선인들에게 일본군이 고래 고기라고 하면서 먹을거리를 줬다는 거 아닙니까? 지금 연구 결과.
     
    ◆ 이국언>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그야말로 풀 뜯어 먹고 콩잎 따서 먹고 지나가는 쥐를 잡아서 닥치는 대로 뭐라도 연명해야 했던 그런 상황에서 어느 날 고래 고기라고 주어졌던 것이니까 허기진 이 사람들한테는 이것저것 따질 겨를이 없이 모처럼 육식을 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을 했었겠죠.
     
    ◇ 김현정> 그게 진짜 고래 고기였으면 지금 아무 문제가 없는 건데 그게 고래고기가 아니었다는 건가요?
     
    ◆ 이국언> 그렇습니다. 왜 그러냐면 어느 날 동료 중에 한 사람이 어느 날 일본군하고 같이 갔는데 사라지는 그런 상황이 있었고 그래서 일본군은 눈을 피해서 섬 주변을 계속 조선인들이 동료들을 찾기 위해서 수색하는 과정에 옆에 있는 조그마한 무인도까지 가게 됐었는데 거기에서 끔찍한 상황을 보게 된 것입니다.
     
    ◇ 김현정> 어떤 상황이었죠?
     
    ◆ 이국언> 그게 뼈만 앙상하게 남아 있고 사라진 조선인이었고 그다음에 허벅지 살이 마치 포를 뜨듯이 살점이 모두 도려내져 있었던 상황을 목격을 하고 얼마 전에 고래고기라고 먹었던 그 고래고기가 사실 생각해 보면 정상적인 어로 활동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동료의…
     
    ◇ 김현정> 동료의 시신이 아닌가.
     
    ◆ 이국언> 살점이었다라고 하는 것을 알게 된 것이죠.

    출처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출처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 김현정> 이렇게 알게 된 조선인들이 그때부터 순응하지 않고 이 부분에 대해 항의하고 이랬다는 기록까지 지금 나온 건가요?
     
    ◆ 이국언> 그렇습니다. 거기 생존했던 분들은 또 수기나 증언, 인터뷰가 있었기 때문에 그러면서 어차피 여기 있다가 잡혀서 먹이로 죽으나 굶어 죽으나 마찬가지니까 밖에 대기하고 있는 미군에게 탈출하는 이걸 모의를 하게 되는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일본군 감시병을 몇 명을 제거를 하고 탈출하는 계획을 45년 3월경에 세우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불가피한 선택이었고 또 목숨을 내놔야 할 상황이었는데 결국 주둔하고 있던 11명 중에서 7명을 제거를 하게 되는데 나머지 몇 명을 놓쳤고 그 도주한 일본군이 옆에 섬에 있던 일본군 지휘소에 이 같은 상황을 말을 하게 됐고 거기에 중무장한 일본 군인이 그다음 날 섬에 물이 빠지자 상륙을 해서 그야말로 초토화시켜서 현장에서 55명이 사망한 사건입니다.
     
    ◇ 김현정> 조선인 55명, 원주민 15명이 목숨을 잃었고 어쨌든 우리 조선인들이 그 상황에서 그대로 순응하고 포기한 것이 아니라 탈출을 시도했다는, 지금 배의 모습을 봤거든요. 저것도 엄청난 용기 아닌가요?
     
    ◆ 이국언> 그렇습니다. 저 배에 한 사람, 사진 촬영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저 해맑고 환한 그 모습 속에서 이 사람들이 처했던 그 열악한 환경이 얼마나 끔찍했던 것인지 그리고 그야말로 피골이 상접한, 새까맣게 탄.
     
    ◇ 김현정> 뼈밖에 없어요.
     
    ◆ 이국언> 그리고 이 섬의 또 하나 끔찍한 것은 단순히 그날 55명이 학살당한 것뿐만 아니라 그 섬에 그날 당일 사망한 것을 포함해서 3년여 기간에 무려 218명이 사망을 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불과 1000여 명, 많아야 1000여 명 중에서 218명이 어떤 식으로든지 사망한 끔찍한 상황이 그 섬에서 벌어졌다고 하는 것입니다.
     
    ◇ 김현정> 알겠습니다. 사실은 이 밀리환초의 상황이라는 것은 우리가 좀 생소합니다. 생소한데 이것들을, 이 기록을 발굴하고 연구한 학자가 한국에 와서 기자회견을 곧 한다고요?
     
    ◆ 이국언> 그렇습니다. 내일 광주광역시의회 시민소통실에서 오전 10시 30분에 다케우치 야스토 선생님이라고 일본의 사학자이고 한 30여 년 넘게 강제노동자의 연구를 해 오신 분이신데 사실 그전에 이 사건이 처음 알려진 것은 아니거든요. 우리 정부 기구를 통해서 2010년 직권 조사했던 결과 보고서가 발표되기도 했습니다만 내일은 55명뿐만 아니라 218명의 이름과 자세한 주소가…
     
    ◇ 김현정> 그 기록까지 남아 있습니까? 거기 끌려갔던 사람들의.
    출처 대일항쟁기 강제동원피해조사위원회출처 대일항쟁기 강제동원피해조사위원회
    ◆ 이국언> 이 다케우치 야스토 선생님이 그동안 이것을 계속 추적해 오신 것 같습니다.
     
    ◇ 김현정> 그렇군요. 끌려갔던 그 사람들의 주소와 이름까지 지금 기록을 찾아낸 상황. 기자회견 주목해 보겠고요. 참 우리가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도 이렇게 새로운 이런 과거의 역사들, 만행들이 드러나고 있다는 거 우리가 잊지 말아야겠고 다시 한 번 그 과거를 생각하게 됩니다. 기자회견 잘 치르시고요. 오늘 자세한 설명 고맙습니다.
     
    ◆ 이국언> 고맙습니다.
     
    ◇ 김현정> 강제동원시민모임의 이국언 이사장이었습니다.

    ※ 내용 인용 시 CBS <김현정의 뉴스쇼> 인터뷰 내용임을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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