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대·서울대병원 교수 비상대책위원회는 지난 6일 필수부서를 제외한 '전체 휴진' 여부에 대한 투표를 마감했다. 연합뉴스서울대 의과대학 교수들이 이달 17일부터 중증·응급 등을 제외한 '무기한 전체 휴진'에 돌입하기로 결정했다. 정부가 100일 넘게 장기화된 의·정 사태의 책임을 전공의들에게 전가하지 말고, 병원 복귀 여부와 무관하게 행정처분 일체를 완전히 '취소'해야 전체 휴진도 현실화 되지 않을 것이라는 게 교수들의 입장이다.
의료공백의 핵심인 전공의들을 향해 '복귀 시 행정처분 중단 및 차질 없는 수련 지원'을 약속하며 사태 일단락을 시도했던 정부에 맞서 초강경 카드를 꺼낸 모양새다. 환자들 사이에선 벌써 "무책임한 행태"라는 반발과 하소연도 나오는 가운데 이러한 집단 휴진이 다른 대학병원 등으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현재 진행 중인 대한의사협회(의협) 투표를 거쳐 개원의들까지 대대적인 휴진에 가세할 경우, 의료계의 대정부 투쟁은 훨씬 거세질 전망이다.
7일 CBS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서울의대·서울대병원 교수 비상대책위원회가 지난 3일부터 전날 정오까지 전체 소속 교수를 대상으로 총파업 여부를 설문한 결과,
응답자 과반(939명 중 63.4%)이 '휴진을 포함한 강경 투쟁'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공교롭게도 비대위의 이번 찬반 투표는 정부가 올 2월 7일 내린 전공의 사직서 수리금지 명령을 철회하기 하루 전부터 시작됐다. 서울의대 교수들은 그간 정부가 잠정 유예했던 미복귀 전공의 관련 행정처분을 개시하려 한다고 보고 행동 방침을 정하고자 이 같은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지난달 말만 해도 이탈 기간에 따른 차등은 두되, 업무개시명령 불복의 책임은 반드시 묻겠다던 정부는 4일 부로 전공의·수련병원 대상의 모든 행정명령을 철회하겠다고 밝혔다. 의료계의 집단행동 초기 '기계적 법 집행'을 강조했던 입장에서 선회해 전공의들에게 퇴로를 열어주겠다는 취지였다.
제자리로 돌아오기만 하면 석 달 간의 면허정지 등 예정된 행정처분도 중단하겠다고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정부가 스스로 '불가피한 결단'이라 자평한 태세 전환은 오히려 의료계 내부의 적잖은 반감으로 이어졌다.
소속병원 복귀를 조건으로, 원래 전공의들이 받아야 할 처벌을 정부가 특별히 면제해준다는 식의 인식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의견이 의료계에 확산했다. 전공의들은 사직서를 내고 '직장이자 배움터'인 병원을 떠났고, 이때부터 정부는 전공의들에게 해당 의료기관에서의 진료를 강제할 아무런 권한이 없다는 게 상당수 의대 교수들의 생각이다.
실제로 서울의대 비대위가 전날까지 이틀 동안 실시한 2차 설문에 응답한 교수 750명은 '응급실·중환자실 등 필수 부서를 제외한 전체 휴진'에 전체 70%에 가까운 압도적 지지(68.4%)를 보냈다. 이에 따라 정부의 입장 변화 등 특별한 상황 반전이 없는 경우 서울대병원·분당서울대병원·서울특별시보라매병원·강남센터에 근무하는 교수들은 오는 17일부터 중증·응급 등을 뺀 전(全) 진료과가 무기한 휴진에 들어간다.
강희경 서울의대·서울대학교병원 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달 28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비대위 기자간담회에서 성명서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비대위 관계자는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정부 발표가 있기 전부터 어떤 내용의 조치가 있을 거란 얘기는 들었다. 그런데 이후에도 대부분의 전공의들은 (여전히) 안 돌아올 거라고 생각했다"며 "특히 (인력난이 심한) 필수의료과의 경우, 더 그렇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교수들은 앞으로도) 사직을 계속 유지할 전공의들에 대한 실질적인 (행정)처분이 가시화됐다고 판단했다"며 "행정명령을 철회했다고 하나, 따져보면
과거 3개월간 (전공의) 이탈에 대한 (정부의) 판단은 여전히 유효하고 복귀하지 않을 전공의들은 행정처분을 받을 가능성이 열려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즉, 일부 전공의가 4일 이후 의료현장에 돌아온다 해도 만약 올 2월 사직 당시와 비슷하게 정부에 또 항의 표시를 하거나 집단행동을 하게 되면 '유보'됐던 행정처분이 즉시 재개될 거란 해석이다. 비대위 측은 관련한 법리적 검토를 통해서도 이 같은 결론에 다다른 것으로 알려졌다.
비대위에 참여 중인 또 다른 서울대병원 교수 A씨는 "단체사직이 사회에 미치는 여파가 컸던 부분에 대해서는 의료진 입장에서도 송구스러운 마음"이라면서도
"젊은이들이 직장에서 본인들의 꿈과 희망을 잃어버리고, 그 직장을 그만두겠다고 하는 선택의 자유를 '의사'라고 해서 제한받아야 하나"라고 반문했다. 또 "그 행위를 한다고 해서 그들을 '범법자' 취급하면서, 마치 (정부가) 봐주는 것처럼 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이 계속 있었다"고 부연했다.
그러면서 "저희도 직업적 권리를 얘기하기 이전에 국민의 건강권이나 돌봐야 하는 환자에 대한 사명감을 돌아봐야 하는 건 알고 있다. 그런데 이 사회가 그런 의무만을 강요할 수 있는 시스템 하에 있었는가에 대해선 생각이 많았다"고 덧붙였다.
다만, 전공의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대다수의 공감대에도, 이 명분이 집단 휴진을 정당화할 수 있는지를 두고는 내부에서도 논쟁이 많았다고 전했다.
A 교수는 "(정부는) 안 바뀔 게 뻔하고 전혀 합리적이지 않은데, 우리가 어떤 행동을 해도 (목소리를) 안 들을 텐데, '환자들에게 또 상처와 피해를 줘야 할까' 하는 걱정들이 다들 있다"며 "(교수들이) 대단히 힘들어 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비대위는 가급적 결의된 휴진이 실행으로 옮겨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도 밝혔다. 정부가 17일 전에 현 사태의 책임을 인정하고,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가시적 조치'를 취해 달라는 게 이들의 요구다.
'모든 전공의'에 대한 진료유지명령·업무개시명령의 '완전한 취소'는 그 시작점이자 선결 조건이라는 입장이다.
비대위는 환자들을 향해 "정부의 무도한 처사가 취소될 때까지 저희 병원에서의 진료를 미루어 주시길 부탁드린다"며
"휴진이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전적으로) 정부에게 달렸음을 양해해 주시기 바란다"고 못 박았다.
서울의대·서울대병원 교수비대위는 교수들이 개별적으로 참여했던 기존 휴진과 달리 환자 생명과 직결된 필수 분야를 제외한 전체 교수들이 한번에 외래 진료와 정규 수술을 중단하는 방식으로 총파업이 진행될 수 있다고 예고했다. 연합뉴스일각에선 서울의대 교수들의 파업 움직임이 다른 주요 상급종합병원들로 확산될 가능성도 거론된다. 서울대와 연세대, 울산대 등이 속한 전국의과대학교수 비상대책위원회(전의비)가 이날 저녁 개최하는 정기 총회에서도 다른 대학들의 동참 여부가 함께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의협이 지난 4일부터 이날 자정(8일 0시)까지 실시하는 '총파업 투표'도 의료계 투쟁 과정의 큰 변수로 꼽힌다.
의협은 14만 회원을 대상으로 '정부의 의료농단, 교육농단을 저지하기 위한 의협의 강경 투쟁을 지지하십니까', '의협이 6월 중 계획한 휴진을 포함한 단체 행동에 참여하시겠습니까' 등의 항목으로 설문을 진행 중이다. 지난 5일 기준으로 만 하루 만에 이미 약 40%가 투표에 참여했다.
동네 병원을 비롯한 1차 의료기관의 단체 휴진이 의대 교수들의 집단행동과 맞물릴 경우, 환자들의 피해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질 수 있다. 한국중증질환연합회는 전날 입장문을 내고 "서울의대 교수들의 휴진 결의는 국민 생명보다 의료집단 이기주의를 합리화함으로써 환자들을 내팽개친 것"이라며
"환자의 생명권을 박탈하는 비인도적 결정을 즉각 철회하라"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