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일자리를 찾다가 구청 홈페이지에서 '행정 업무를 경험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를 뽑는다'는 글을 봤지만 지원조차 못 했어요. '고졸'에겐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현실에 실망했죠."
서울 은평구에서 거주했던 변세진(가명‧26)씨는 2년 전 최종 학력이 고등학교 졸업이라는 이유로 은평구청에서 선발하는 '대학생 아르바이트 사업'에 신청할 수 없었다.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가 대학생 아르바이트 사업에 대해 "대학 재학 여부에 따른 차별이 발생하지 않도록 조치할 것"을 권고한 후에도 여전히 서울시 지자체 대다수가 지원 자격을 대학생으로 한정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CBS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서울시 25개 자치구 중 16곳이 여름방학 대학생 아르바이트 참여 대상을 '대학교 재·휴학생'으로 명시했다. △강남구 △강동구 △강서구 △관악구 △구로구 △도봉구 △동대문구 △동작구 △마포구 △서초구 △성북구 △양천구 △은평구 △종로구 △중구 △중랑구 등이다.
대학생 아르바이트 사업은 여름·겨울방학 동안 청년들에게 행정 업무를 경험할 기회를 주는 사업이다. 참여자들은 방학 기간에 약 4주가량, 주 5일 하루 5~6시간 근무하고 140만 원 정도의 급여를 받는다.
자치구마다 대학생 행정인턴, 대학생 행정체험단 등 이름은 다르지만 업무강도가 높지 않은 데다 자치구에서 행정 업무를 경험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꿀 알바'로 불린다. 서울 내 자치구 대부분은 대학 여름방학이 다가오는 5월 말~6월 초에 모집 공고를 게재했다.
인권위는 지난해 해당 사업에 대해 "대학생으로 지원 자격을 제한하지 말라"는 권고를 했다.
시민단체 학벌 없는 사회를 위한 시민모임은 2022년 전남 여수시를 상대로 인권위에 '청년 행정 인턴을 모집할 때 학력 제한을 두는 건 차별"이라는 취지의 진정을 제기했다.
이에 인권위는 지난해 4월 전남 여수시에 대해 "청년 인턴 업무가 반드시 전문대학 이상 학력을 소지해야 할 합리적 이유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청년 행정 인턴을 모집할 때 대학 재학 여부에 따른 차별이 발생하지 않도록 조치할 필요가 있다"고 권고했다.
마포구청에 게시된 '2024년 여름방학 대학생 아르바이트 모집' 게시글 이후 여수시는 인권위 권고를 수용해 관련 조례 개정을 거쳐 지원 자격을 19~39세 사이 대학생에서 18~45세 사이 청년으로 변경했다.
해당 인권위 권고 이후 7개 서울시 자치구는 지원 자격을 확대했다.
영등포구는 올해 여름방학부터 사업명을 대학생 아르바이트에서 청년 행정체험단으로 바꾸고 참여 대상을 영등포구에 거주하는 19세~39세 사이 미취업 청년으로 확대했다. △강북구 △광진구 △금천구 △성동구 △송파구 △용산구도 올해부터 신청 자격을 청년으로 넓혔다.
그러나 16개 자치구는 요지부동이다. 특히 마포구는 시민단체로부터 "신청 자격을 확대하라"는 내용의 진정이 제기된 사실을 알면서도 기존 관행을 고수하고 있다.
학벌 없는 사회를 위한 시민모임은 지난해 10월 마포구를 상대로 인권위 진정을 제기했다. 인권위는 마포구의 대학생 아르바이트 사업에 차별적 요소가 있는지 조사 중이다.
학벌 없는 사회를 위한 시민 모임은 진정서에서 "사용자로서의 지자체는 고용 평등 원칙에 충실해야 할 책임이 그 어느 사용자보다 막중하다"며 "아르바이트 모집 사업 시 고용 정책 기본법에 근거, 다양한 청년들의 기회를 균등하게 보장하도록 권고할 것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마포구 측은 "현재로선 신청 자격 확대 계획이 없다"는 입장이다.
마포구청 관계자는 "인권위가 지난 1월 신청 자격을 확대할 계획이 있는지 물었을 때 향후 검토 사항이라고 답했다"며 "진정의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조례 개정 등 행정 절차와 내부 의견도 검토도 필요한 상황이라 당장 (제도를) 바꿀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일부 지자체는 올해 겨울방학부터 지원 자격을 확대할 예정이다.
은평구청 관계자는 "다른 자치구를 조사해 보니 7개 자치구가 청년층으로 (지원 자격을) 확대한 것을 확인했다"며 "오는 11월에 공고될 겨울방학 아르바이트부터는 참여 대상을 변경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관악구청, 동대문구청, 서초구청 관계자 역시 "지원 자격 확대에 대해 긍정적으로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