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생츄어리' 스틸컷. 시네마 달 제공"작년과 마찬가지로 (사육 곰들이) 사육 곰 농장 안에 살고 있지만, 사는 동안에 좀 삶의 질이 높아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해먹을 달아줬고, 사과나 이런 과일도 갖다주고 한 농장들이 몇 군데 있고….
지금 가고 있는 동해 농장도 작년에 가서 해먹을 달아줬던 집인데, 해먹이 떨어졌대요. 그 농장에서는 곰을 다 동물자유연대라는 동물보호단체에서 다 사가지고 미국에 보내기로 했어요. 그래서 이 농장주도 어쨌든 뭔가 자기가 사육 곰 농장을 그만하고 싶어 하고, 곰들의 삶을 나아지게 하는 데 호의적인 분이라…." _영화 '생츄어리' 중 곰 보금자리 프로젝트 최태규 활동가(수의사)
영화 '생츄어리'(감독 왕민철)에 등장하는 이른바 '사육 곰'들. 농장의 사육 곰들은 평생을 좁은 철장 안에 갇힌 채 웅담을 채취당해야 했다. 그러나 '사육 곰'의 비극이 드디어 40여 년 만에 막을 내리게 됐다. 그렇다면 이 사육 곰들은 어디로 가게 되는 걸까.
사육 곰 산업의 종식을 법제화하는 '야생생물법 개정안'이 지난해 12월 20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함에 따라 2026년 1월 1일부터는 개인의 곰 사육과 웅담 채취, 웅담 판매가 금지된다.
곰은 1979년부터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 동식물종의 국제 거래에 관한 협약'(CITES)에 따라 지정된 '국제적 멸종위기종'이지만, 국내에서는 지난 1981년부터 1985년까지 농가 소득 창출을 목적으로 곰 수입을 허용했다. 그렇게 지금까지 곰은 '웅담 채취용'으로 사육당했다.
지난 2022년 3월 15일 동물자유연대가 미국 야생동물 보호소인 야생동물 생츄어리(TWAS·The Wild Animal Sanctuary)가 운영하는 제2 보호 시설 '더 레퓨지'(The Refuge)로 이주시킨 22마리 사육 곰들의 모습. 동물자유연대 제공 웅담 채취 40년 비극 끝났지만 갈 곳 없는 사육 곰들
개정안 통과에 따라 사육 곰들은 새 보금자리를 찾아야 한다. 현재 18개 농장에 280여 마리의 사육 곰이 존재한다. 이 가운데 동해 농가에 있던 22마리는 동물자유연대가 지난 2022년 3월 15일 미국에 있는 야생동물 보호소인 야생동물 생츄어리(TWAS·The Wild Animal Sanctuary)가 운영하는 제2 보호 시설 '더 레퓨지'(The Refuge)로 이주시켰다.
문제는 40여 년의 비극을 제대로 종식하기 위해서는 사육 곰들이 남은 생을 보낼 새 보금자리를 마련해야 한다는 점이다.
환경부와 동물단체, 곰 농가들이 지난 2022년 1월에 맺은 '곰 사육 종식을 위한 협약'에 따라 정부는 충남 서천군과 전남 구례군에 보호 시설을 준비 중이지만 해당 시설에 수용할 수 있는 곰은 최대 120마리에 불과하다. 정부 시설에 갈 수 없는 사육 곰들은 다른 보호 시설을 찾지 못하는 한 또 다른 비극을 맞이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시민단체 등이 후원금으로 일부 사육 곰들을 매입하고 있지만, 농장주와의 매입 금액에 대한 의견 차이는 물론 예산 역시 넉넉지 않은 상황이라 매입에 한계가 있다. 사육 곰 농장주와 시민단체는 정부가 나서서 사육 곰을 매입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정부는 사육 곰이 '사유재산'인 만큼 정부 예산을 들여 매입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곰 생츄어리(자연으로 돌아갈 수 없는 야생동물을 위한 보호 시설) 건립을 위해 활동하고 있는 곰 보금자리 프로젝트 최태규 활동가는 "그동안 농가에서 합법적으로 키우던 곰을 보상해 주고 데려와야 하는데, 정부는 보상을 안 하겠다고 버티고 있다. 오히려 시민단체에서 데리고 오라고 한다"라며 "시민단체 입장에선 그럴 수도, 그럴 여력도 없다"라고 토로했다.
그는 "어떤 식으로든 기여할 수는 있겠지만, 온전히 시민단체가 곰을 사 와서 보호하는 것 이상한 일"이라며 "농가 입장도 왜 시민단체와 우리(농장주)를 싸움을 붙이냐며, 정부가 보상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주장하고 있다. 이런 상태가 몇 개월째 지속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베트남 곰 생츄어리 모습. 곰 보금자리 프로젝트 제공 중국·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 등에는 '곰 생츄어리' 운영 중
정부 시설로 들어가는 곰을 선별하는 것도, 남은 160여 마리가 이주할 곳을 찾는 것 역시 난제다. 정부는 자연 소멸할 것이라고 보고 있지만, 시민단체 등에서는 사실상 농가에서 도살하라는 이야기라고 지적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문제를 해결할 방안 중 하나가 바로 '생츄어리'다. 동해 농장 사육 곰 22마리가 미국에서 찾은 새로운 보금자리 역시 생츄어리다.
동아시아에서는 중국,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 등에서 곰 생츄어리를 운영하고 있다. 중국 청두에는 12만㎡ 규모로 운영 중인 곰 생츄어리에는 11개 곰사와 15개 방사장으로 구성돼 있다. 베트남에서도 11만㎡ 규모의 탐다오 국립공원 내 곰 생츄어리(곰사 5개, 방사장 10개)가 존재한다.
모두 정부에서 부지를 제공했으며, 연간 50억 원의 운영비는 세계 각지에서 들어오는 기부금으로 충당하고 있다.
그러나 국내에는 생츄어리가 전무하다. 그렇기에 일부 운이 좋은 곰들은 해외 생츄어리로 가지만, 나머지 곰들은 120개 자리를 두고 운명이 갈릴 수밖에 없다.
(사진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곰 보금자리 프로젝트가 강원도 화천에 마련된 임시 보호시설에서 보호 중인 13마리 사육곰 중 주영, 덕이, 미남, 소요. 곰 보금자리 프로젝트 제공 '죽음'이란 또 다른 비극 앞둔 곰들 위한 '생츄어리' 시급
현재 곰 보금자리 프로젝트에서는 강원도 화천에 마련된 임시 보호시설에서 13마리 곰들을 돌보고 있다. 그리고 갈 곳 없는 사육 곰들을 위해 지난 2018년부터 국내 곰 생츄어리 건립을 위해 준비하고 있지만 여의찮은 상황이다.
생츄어리 건립을 위해서는 3만 평의 부지와 돌봄 시설이 필요하며, 이에 소요되는 비용은 땅값을 포함해 30~40억 원으로 예상한다. 초기 비용에 많은 예산이 필요해 아직 공사 시작조차 못 하고 있는 실정이다.
최태규 활동가는 "국내에 생츄어리가 하나도 없다는 건 이상한 일"이라며 "한국에 땅이 적다고 하지만 생츄어리는 몇만 평 수준에서 만들 수 있다. 문제는 돈을 쥐고 있는 정부나 기업에서 곰 생츄어리에 돈을 쓰고 싶어 하지 않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곰 생츄어리는 사육 곰 사후에는 또 다른 방식으로 활용할 수 있다. 곰 보금자리 프로젝트에 따르면 곰의 수명이 30년이라고 한다면, 20년이 지나면 사육 곰은 모두 세상을 떠나게 된다. 그 후에는 곰 생츄어리를 동물원과 수족관, 개인이 전시용으로 기르는 동물을 보호하는 생츄어리로 활용할 계획이다.
최 활동가는 "어떤 곰을 생츄어리로 옮기고, 어떤 곰을 도살할지도 여전히 불투명하다. 무엇보다 농가에서 자연 소멸하게 두는 것도 정책으로서는 불합리하다고 생각한다"라며 "일괄적으로 정부에서 매입하던지 보상해야 하고, 시설에 못 들어가는 곰들은 동물원에 보내든 조치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의견을 전달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지금 한국의 경제적 상황이나 대중의 인식이 분명 곰을 보호하자는 걸로 귀결될 수 있다고 본다"라며 "지금 우리가 야생동물을 이용하는 산업을 사육 곰처럼 키운다면 또 어떤 비용을 치를지 모른다. 생츄어리가 이런 일들을 반성하고 성찰하는 공간으로도 기능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