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인을 상대로 강력 범죄가 잇따르면서 여성가족부(여가부)가 이 같은 '교제폭력'을 학교 교육으로 예방하기 위한 지침을 내놨지만 실효성에 물음표가 붙고 있다. 구체적인 교육 가이드라인도 없이 학교 자율에 맡기는데다가, 의무 지침도 아니어서 현장에서 뿌리내리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여가부는 성희롱‧성매매‧성폭력‧가정폭력 예방교육(폭력 예방교육) 주무부처로서, 해당 교육 실시 의무가 있는 공공기관과 초‧중‧고등학교 등 교육기관에 세부 지침을 안내하고, 교육이 제대로 이뤄졌는지 점검하고 있다.
여가부는 올해 초 내놓은 2024년 폭력 예방교육 운영안내(지침)에 '교제폭력' 등 신종 성범죄 폭력예방교육을 추가 실시한 학교는 교육 실적 점검표상 가점을 주겠다는 내용을 새롭게 실었다. 해마다 늘어나는 교제폭력을 조기 교육으로 예방하고자 가점 항목을 변경한 것이다.
그러나 교제폭력 교육은 의무가 아니고 '추가 교육'이기에 실시하더라도 가점이 2점에 불과하다. 실적 만점은 120점(가점 만점 20점 포함)이다. 가점 등을 종합해 합계 점수가 70점을 넘어야 부진 기관 지정을 피할 수 있는 구조여서 가점을 받는다 해도 직접적 이득은 없다.
여가부 관계자도 "가점을 받는다고 해서 직접적인 인센티브가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라며 "1년에 한번 폭력 예방교육 실적 점수에 미달한 부진기관 명단을 언론에 공표하는 것 외에 직접적인 불이익은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4대 폭력 예방 의무교육의 경우 개별법에 교육 내용, 교육 시기, 횟수 등이 구체적으로 명시가 되어 있는 반면, 교제폭력의 경우 법제화가 되어 있지 않아 학교와 교사가 자율적으로 교육을 이끌어가야 한다"고 밝혔다.
이처럼 학교 자율에 맡겨진 교제폭력 예방교육은 별도의 교육 가이드라인조차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교육부가 작년 '학교 내 성희롱·성폭력 사안 대응 업무 가이드라인'을 냈지만 여기에도 교제폭력은 포함돼 있지 않았다.
서울 시내 중학교 A교사는 "성폭력 예방교육, 성인지 감수성, 디지털 그루밍 예방교육 등은 창의적 체험활동 시간에 방송으로 교육하는 시간이 따로 마련돼 있다"고 강조하며 "가정 시간에 선생님들이 생활지도 측면에서 이성교제 이야기를 구두로 하시는 것 외에는 별도의 교육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고 말했다.
경기도 소재 초등학교 B교사도 "교사 자율적으로는 교제폭력 예방교육이라는 명칭으로 시간을 마련하기 어렵다"며 "청소년들도 이성교제가 활발한 지금 올바른 성인식과 타인에 대한 존중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라고 전했다.
교제폭력 예방교육 관련 지침 자체를 인지하지 못하는 학교도 적지 않았다. 서울 강남구 소재 학교 세 곳의 행정실에 확인한 결과 이에 대해 명확히 알고 있는 곳은 없었다. 여가부 관계자는 "유치원 등을 제외한 1만 8천개가 넘는 기관에 일일이 설명을 할 수 없다"며 "가점 제도에 대해서는 각 기관이 자율적으로 알아야 하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이렇다보니 교제폭력 예방교육 의무화를 위한 입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전문가들 사이에서 꾸준히 나온다. 국회입법조사처 허민숙 연구관은 "근거 법률이 없기에 어린 시기부터 타인의 자율성이나 주체성을 인정해주는 관계 맺기 교육이 어렵다"며 "어린 시절부터 동등한 위치에서 교제하는 교육이 돼야 (교제폭력) 비극을 감소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여성변호사회 민고은 인권이사도 "교제 관계라는 게 개인의 사생활과 관련된 일이기에 공론화해서 이야기하는 것이 어려운 면이 있을 수 있다"며 "그렇기에 교육의 방식으로 건강한 관계 맺음은 어떤 것인지 알려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