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오전 전날 대형 교통사고가 발생한 서울 시청역 인근 교차로에서 경찰이 완전히 파괴된 차량 한 대 주변을 통제하고 있다. 연합뉴스서울 시청역 인근 역주행 참사의 원인 조사가 진행되고 관련 내용도 속속 파악되고 있지만, 가해 운전자의 급발진 주장을 둘러싼 진위 논란은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버스 운전을 생업으로 한 60대 남성이 도심 내 일방통행 구간을 이해하기 어려운 빠른 속도로 역주행하며 대형 사고를 낸 것을 두고 단순 운전자 과실인지, 급발진인지 가늠하기는 현 단계에선 여전히 어렵다는 게 전문가 진단이다.
결국 경찰도 사고 당시 상황을 보다 명확하게 파악하기 위해 가해 차량 운전자에 대한 피의자 조사 일정을 확정했다.
호텔서부터 속도 낸 차량… '회피 주행' CCTV에 포착
4일 CBS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9명의 사망자를 낸 가해 차량 제네시스 G80은 지난 1일 서울 중구의 조선호텔에서 빠져나오면서부터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가해 차량은 지하주차장에서 올라온 직후 속도를 내기 시작했는데, 초기 주행 상황을 담은 CCTV 영상에선 차량 브레이크등(제동등)에 불은 들어오지 않았던 것으로 파악됐다.
또 사고 전 주행 정보를 기록하는 차량 사고기록장치(EDR) 1차 분석 결과 차량 운전자 차모(68)씨는 사고 직전 가속페달을 90% 이상 강도로 밟은 것으로 추정됐다. EDR은 사고 또는 충돌이 발생하면 그 순간으로부터 5초 전까지의 가속페달(액셀러레이터), 감속페달(브레이크) 작동 상황을 기록한다.
모두 표면적으론 '급발진에 의한 사고'라는 차씨의 주장과 배치되는 정황들이다. 서울 남대문경찰서 관계자도 전날 진행된 브리핑에서 "CCTV 영상으로 확인했을 때는 호텔 지하 1층 주차장을 나와서 출입구 쪽 방지턱이 있는 부분부터 가속이 된 걸로 확인했다"라고 말했다.
속도가 붙은 차량은 그대로 정면에 위치한 소공동 내 일방통행 구간 방향으로 달리며 역주행을 시작했다. 그렇게 달린 차는 인도로 돌진해 시민들을 덮쳤고, 이후에도 계속 달려 차량 2대와 충돌한 뒤 건너편 도로로 튕겨 나가 멈춰 섰다. 이 사고로 9명이 사망하고, 7명이 다쳤다.
빠른 속도로 역주행하며 전방에 정차된 차량을 가까스로 피하는 모습. 박인 기자다만 급발진이라는 차씨 주장의 근거로 작용할 수 있는 정황도 있다. 가해 차량이 역주행한 거리는 약 200m로, CBS노컷뉴스가 다수 인명피해가 발생한 지점으로부터 약 40m 떨어진 곳에서 확보한 CCTV 영상을 보면 차량이 전방 보행자와 정차 차량을 피해가는 듯한 '회피 운행' 장면이 담겼다.
이도현 군이 사망한 '강릉 티볼리 급발진 의혹 사건'의 소송 대리인인 하종선 변호사는 "회피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라며 "고속으로 달리면서 앞에 사람이 지나가는 것을 봤을텐데, 옆으로 피한 것 같다"라고 설명했다.
차가 아주 빨리 달린 상황에서 조향 장치(핸들)는 작동한 것으로 볼 수 있는 대목인데, 재판에서 급발진을 주장하는 근거로 쓰일 수 있다.
EDR에 없는 '브레이크 흔적'…전문가 "EDR, 신뢰 어렵다"
가해 차량의 초기 주행 장면이 담긴 CCTV영상엔 제동등에 불이 들어오지 않았을 뿐더러, EDR 기록 1차 분석 내용에서도 브레이크를 밟은 흔적은 발견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다만 이는 안전펜스에 들이받은 1차 충돌 상황, 보행자들과의 2차 충돌 상황, 도로에 있던 차량들과의 3차 충돌 상황 모두에서 제동 흔적이 없었는지는 아직 불명확하다. EDR 기록은 차에 충격이 가해질 때마다 남는데, 최대 4개까지 기록된다고 한다.
이 역시 차씨의 급발진 주장과는 정반대 정황 증거로 해석될 수 있지만, EDR 기록을 무조건적으로 신뢰하기 어렵다는 평가도 전문가들 사이에서 나온다. EDR은 자동차의 뇌라고 할 수 있는 ECU(전자제어장치·Electronic Control Unit)의 통제를 받는데, ECU 오류로 급발진이 발생했다면 EDR에 제대로 된 기록이 남겠냐는 것이다.
차량이 호텔에서 나올 때부터 브레이크등이 작동하지 않았다는 것에 대해서도 박병일 자동차정비 명장은 "브레이크를 밟으면 그 브레이크 신호가 컴퓨터에 들어오고 ECU가 제동등을 켜주는 장치인데, 만약에 ECU가 멍텅구리가 됐다면 운전자가 브레이크를 밟았어도 제동등이 안 들어올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차량이 인도를 덮치며 인명 사고를 냈을 당시 차량에 브레이크등이 들어왔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확보된 CCTV 영상으로도 구분이 어려운 상황이다. 차량 내 블랙박스에 녹음된 음성에도 사고 당시 상황을 짐작할 만한 유의미한 내용은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가해차량이 인도를 덮쳤을 당시 브레이크등이 작동했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독자제공결국 사고 경위를 파악하기 위해선 추가적인 자료와 EDR 심층 분석 결과 등이 더 나와야 하는 상황이다.
이에 경찰은 현재 CCTV 6점 등 자료를 확보해 분석에 들어갔다. 또 운전자 차씨에 대한 피의자 조사 일정을 확정하고 곧 조사에 착수한다고 밝혔다. 경찰은 가해 차량 동승자였던 차씨의 아내에 대해선 참고인 조사를 진행했다. 차씨 아내도 "브레이크가, 제동장치가 안 들은 것 같다"고 진술하며 급발진이 사고 원인이라는 취지의 주장을 이어갔다고 경찰은 설명했다.
한편 차씨는 경기도의 한 버스회사에서 일하던 운전 기사로, 전날 만난 동료들은 차씨에 대해 "성격이 차분했다", "운전 실력이 좋았다"는 평가를 내놨다. 회사 측은 "차씨의 개인적 사고"라고 선을 그으며 현재와 같은 무단 결근 상황이 이어지면 해고를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