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이봉련이 8일 오후 서울 중구 국립극단 명동예술극장에서 열린 연극 '햄릿' 기자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5일 서울 명동예술극장에서 개막한 국립극단 '햄릿'은 셰익스피어가 원작을 썼던 17세기의 사회 통념에서 비롯된 여성을 향한 차별과 혐오적 요소를 들어냈다. 특히 햄릿을 왕자가 아닌 공주로 바꾼 젠더밴딩(gender-bending) 캐스팅이 주목받고 있다.
젠더프리(gender-free) 캐스팅이 남성 배우가 여성 캐릭터, 또는 여성 배우가 남성 캐릭터를 연기하는 것이라면 젠더밴딩 캐스팅은 극중 캐릭터의 성(性)을 아예 바꾸는 것이다. 이봉련이 2020년에 이어 다시 한 번 햄릿 공주를 연기한다.
부새롬 연출은 8일 명동예술극장에서 열린 '햄릿' 간담회에서 "각색을 맡은 정진새 작가와 '원작을 보고 느꼈던 불편함을 불편하지 않게 만들자'고 의견을 모았다. 여성 혐오적인 부분이 불편했고 햄릿의 성별을 바꿔보자는 데 생각이 미쳤다"고 말했다.
정진새 작가는 "'동시대 관객은 어떤 햄릿을 보고 싶어할까' 고민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여성 햄릿이 떠올랐다. 그동안 남성 얼굴을 한 햄릿은 많이 봐오지 않았느냐"고 했다.
젠더프리가 아닌 젠더밴딩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부 연출은 "젠더프리 캐스팅을 한 해외 공연을 유튜브로 봤지만 여성 배우가 햄릿 왕자를 연기하는 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았고 햄릿 공주로 바꿔도 서사가 충분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햄릿을 공주로 설정하면서 햄릿의 상대역 오필리어는 남성으로 변경됐고 측근 인물들에도 여성을 적절히 배치했다.
8일 오후 서울 중구 국립극단 명동예술극장에서 연극 '햄릿' 기자간담회가 열리고 있다. 정진새 작가, 배우 이봉련, 부새롬 연출(왼쪽부터) 연합뉴스 성별은 바뀌었지만 햄릿 공주가 검투에 능한 해군 장교 출신이자 왕위계승자라는 점은 변함이 없다. 이봉련은 "저 스스로에게도 이번 역할은 햄릿에 대한 편견을 깨나가는 작업이라서 제 인생의 천운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햄릿을 남성이 하든 여성이 하든 상관 없는 각색본이 될 거라는 연출님의 말씀을 듣고 이 작품을 선택했다"며 "성별에 관계 없이 누구나 햄릿이 될 수 있는 시대가 됐으니 공연을 마음껏 즐겨달라"고 웃었다. 오는 29일 폐막하는 '햄릿'은 전 회차 매진됐다.
극중 햄릿 공주는 여성이어도 남성과 다를 바 없이 왕권을 갖고 싶고 복수하고 싶어 한다. 햄릿 공주 캐릭터에 대해 이봉련은 "아버지의 죽음을 파헤치고 왕권 회복에 대한 욕망을 드러내는 등 자신이 생각하는 정의를 실현하려 허지만 잘못된 길을 걷고 죽음을 맞이하는 인물"이라며 "원작보다 정치극, 복수극의 성격이 더 짙다"고 마했다.
'햄릿'은 지난 2020년 국립극단 70주년을 기념해 제작됐지만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온라인 공연만 했다. 당시에도 햄릿 공주를 연기했던 이봉련은 이 작품으로 2021년 백상예술대상 연극 부문 연기상을 받았다. 이후 매체로 활동 무대를 넓혔지만 매년 무대에서 관객을 만나고 있다.
이봉련은 "공연으로만 제 삶을 꾸려왔던 때 보다 출연하는 작품 수는 줄었지만 꾸준히 무대에 서고 있다"며 "드라마, 공연, 영화 모두 배우로서 하는 작업이다. 매체 활동을 하며 연극을 한다기 보다 배우이기 때문에 약속된 작품에 출연하는 것 뿐"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