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대통령과 트럼프 대선 후보의 토론 모습. 연합뉴스재선 도전의 꿈을 가진 현직 대통령을 무너뜨린 건 지난달 27일 있었던 대선후보 첫TV토론이 단연 결정적이었다.
당시 토론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쉰 목소리로 말을 더듬었고, 맥락에 닿지 않은 답변을 하는 등 '최악의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토론을 잘 못하는 때도 있는 법"이라는 오바마 전 대통령의 두둔이 있었지만, 만천하에 드러난 그의 노쇠는 '인지력 저하' 논란을 촉발시켰고 결국 '후보 사퇴' 요구로까지 이어졌다.
그런데 이보다 앞서 '위기의 순간'은 또 있었다.
바이든 대통령의 부통령 시절 기밀문서 유출 혐의를 조사했던 로버트 허 특검은 지난 2월 8일 대통령에 대한 불기소 입장을 밝히면서 그를 "기억력이 나쁘지만, 악의가 없는 노인"(well-meaning, elderly man with a poor memory)으로 평가했다.
특검 보고서에 바이든 대통령이 자신이 언제 부통령으로 재직했는지 기억하지 못했고, 장남 보 바이든이 몇 년도에 죽었는지도 떠올리지 못했다는 부분이 담겼던 것이다.
지난달 13일(현지시간) 이탈리아에서 열린 G7 정상회의 행사에 참석한 미국 조 바이든 대통령이 자신의 얼굴을 만지고 있다. 연합뉴스최고령 현직 대통령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검찰 조사 도중 사소한 기억력 혼동을 일으킬 수 있는 법이다.
상대 진영으로부터 '놀림거리' 소재로 활용될 가능성은 다분했지만, 지지층 입장에서는 대수롭지 않은 일에 불과했다. 워싱턴포스트(WP)도 "특검 발표는 새로울 게 없다"는 제목의 사설을 쓰기도 했다.
하지만 바이든 대통령의 반응은 이례적으로 매우 강경했다.
대통령은 특검 보고서 공개 당일 저녁 긴급기자회견을 열고 "내 기억력은 괜찮고 나는 대통령직을 수행하기에 최적격 인물"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당시 대통령의 흥분한 모습에 '이 사안이 긴급 기자회견을 열 정도로 중대한 것이냐'는 의구심이 들기도 했다.
돌이켜보면, 당시 로버트 허 특검에게 '정곡'을 찔린 백악관 참모들이 기자회견을 급조했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바이든 사퇴'는 물론 대통령의 책임이 가장 크겠지만 그동안 이를 감추기에 급급했던 측근들도 자유로울 수는 없다.
발걸음이 눈에 띄게 느려진 대통령이 행사장에서 넘어지기도 했고, 사람 이름을 헷갈리는 일이 잦아졌지만 그때마다 참모들은 "내부 회의 때 대통령은 명민하고 세부사항까지 꼼꼼히 인지하고 있다"고 방어막을 쳤다.
조 바이든 대통령의 뒷모습. '바이든 사퇴'는 물론 대통령의 책임이 가장 크겠지만 그동안 이를 감추기에 급급했던 측근들도 자유로울 수는 없다. 연합뉴스 바이든 대통령은 로버트 허 특검의 보고서에 대해 반박하는 기자회견에서조차 이집트 대통령과 멕시코 대통령을 혼동하는 모습을 보였다.
'특검 보고서' 문제로 추후 미 하원 법사위 청문회장에 출석한 로버트 허 특검은 "대통령 기억력에 대한 보고서상의 제 평가는 필수적이었고 정확하고 공정했다"며 "저는 왜곡하지도 대통령을 부당하게 폄훼하지도 않았고, 제가 해야할 일을 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때 민주당이 로버트 허 특검을 '정치적'이라고 몰아세우는 대신 대통령을 꽁꽁 숨기고 있던 측근들을 걷어냈다면 어떻게 됐을까.
'벌거벗은 임금님'이 돼버린 바이든 대통령이 애처롭기도 하지만, '7월 21일 사퇴'는 "늦어도 너무 늦었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