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경 서울대 의대·병원 교수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오른쪽 두번째)이 지난달 1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의대 융합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정부가 전문의 중심의 '상급종합병원 구조 전환'에 박차를 가하는 가운데, 의료계에서는 "선결 과제가 많은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나왔다.
서울의대-서울대병원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는 1일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에서 '상급종합병원 구조 전환과 전문의 중심병원'을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토론자들은 상급종합병원 구조 전환 이전에 지역 의료기관 간 네트워크를 강화하는 것이 먼저라고 지적했다. 상급종합병원과 1·2차 병원 간의 전원 과정이 원활하도록 안착해야 한다는 것이다.
임종한 주치의운동본부 운영위원장(인하의대 교수)은 "환자들이 탁구공도 아니고 3차 병원에서 밀어내면 1·2차 병원에서 받을 수 있는 구조가 마련돼 있지 않다"며 "현재로서는 환자 불편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미봉책'에 불과하다"고 짚었다.
이어 "평소에 병원 간의 (네트워크) 체계를 얼마나 유지하느냐가 중요하다"며 "상급종합병원 구조 전환은 1차 의료기관의 강화와 수련 체계 변화 등 장기적으로 여러 가지가 맞물렸을 때 효과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박재일 서울대병원 전공의 대표는 "현재 1·2·3차 병원 간의 네트워크는 교수들끼리 아는 수준에서 진행되고 있다"며 "정부 차원에서 병원 간의 네트워크를 구축한 상태가 아니다. 이 네트워크 기틀을 다지는 것이 먼저"라고 강조했다.
고려대 안암병원장을 지낸 박종훈 병원정책연구원장은 "상급종합병원을 중증 중심으로 구조 전환하겠다는 것 자체는 이해할 수 있다"면서도 "하지만 당장 병원 내 인력 구조조정, 병원의 경영 상태, 전문의의 역할 등 먼저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다"고 봤다.
상급종합병원 구조 전환에 필요한 재원 마련 방안에 대한 지적도 나왔다.
하은진 비대위 위원(서울의대 교수)은 "2020년 심평원 연구를 보면 상급종합병원 수입의 33%가 경증 입원으로 4조 원 규모다"며 "경증 환자를 줄이면서 발생하는 손실을 정부가 병원에 돌려줄 수 있을 정도의 재원이 될 것인지 의문이다"고 말했다.
구조 전환 이전에 환자에 대한 교육도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왔다. 정진향 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 사무총장은 "동네 병원에서 진료가 가능한데 꼭 상급병원만 가야 한다는 환자에 대한 국민적 교육도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오는 9월부터 상급종합병원 구조 전환 시범사업에 돌입할 예정이다. 이에 대해 토론자들은 현 상황에서 안착하기는 어렵다고 봤다.
하은진 위원은 "병상수를 줄이고 진료량을 줄이면 고용했던 인력 구조조정 문제가 있다"며 "행정이나 급식 등 업무를 보던 직원들이 대상이 될 우려도 있다"고 설명했다.
박종훈 병원정책연구원장은 "급작스럽게 (구조조정을) 하게 되면 계약직 직원들이 대거 밀려나는 큰 무리수가 발생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하반기 전공의 모집이 마감됐지만 지원자가 전체 모집 정원의 약 1.4%에 그친 상황에서 정부는 이번 달 안에 추가 모집을 공고하겠다고 밝혔지만, 전공의들은 여전히 복귀 의사가 없다며 선을 그었다.
박재일 대표는 "정부가 지금까지 의료 정책을 추진하면서 기본적인 설명이나 절차가 없었다"며 "근본적으로 정책 추진 방식이 대단히 잘못됐다고 본다. 이 사태가 발생한 본질과 문제 해결 방식을 재고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희경 비대위원장은 "정부가 재모집을 하면서 '전공의 들어오라'고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의료 시스템은 바뀌지 않고 전공의가 들어와야 병원이 정상화된다는 것은 이전과 같은 '저임금 장시간 노동'이 여전히 필요하다는 소리"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