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원회 전체회의 '티몬·위메프 미정산 사태에 대한 현안질의'에서 구영배 큐텐그룹 대표가 의원 질의를 받고 있다. 윤창원 기자큐텐 구영배 대표가 자사 물류를 담당하는 계열사 큐익스프레스를 키우기 위해 정부기관들을 적극 활용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우리나라 중소·중견기업의 인도 시장 진출을 지원하는 과정에서 '큐익스프레스 사용'을 조건으로 내걸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2020년 '인도 봉쇄' 시국에도 큐익스프레스는 '확장'
4일 CBS노컷뉴스 취재 결과를 종합하면, 큐텐은 2019년 자신들이 추진하는 '팬아시아(한·중·일과 동남아시아) 커머스'의 화룡점정으로 인도 시장 진출을 본격화한다. 큐텐은 그해 11월 당시 인도의 4대 온라인 종합유통망 샵클루즈(Shopclues)를 인수하고 이 업체의 물류회사 모모에(Momoe)까지 흡수한다.
하지만 인도 이커머스 시장은 당시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에서 익숙하지 않은 신세계였다. 이에 큐텐 구영배 대표는 준정부기관 코트라(KOTRA)를 적극 활용했다. 그는 2020년 4월 코트라와 함께 샵클루즈 입점 사업 참가 기업을 모집한다. 큐텐이 인수한 샵클루즈에 입점해 인도 소비재 시장에 진출할 우수 중소·중견기업을 찾는다는 명목이었다.
문제는 이들 입점업체들이 기존에 자신들이 사용하던 물류업체 대신 큐텐의 큐익스프레스를 선택해야했다는 점이다. 취채진이 입수한 당시 사업 공고문을 보면 "이번 사업의 물류 및 통관은 샵클루즈 물류자회사인 모모에가 한국 측 파트너인 큐익스프레스와 함께 총괄한다. 참가기업에서 평소 사용하던 물류업체가 아니라 모모에를 통해서 수출을 하게 된다"고 명시돼 있다.
게다가 당시는 코로나19가 본격적으로 확산하면서 인도에서 봉쇄령이 시작되고, 국제선 취항도 중단될 가능성이 높은 시기였다. 그럼에도 구 대표는 당시 운송, 통관, 제품등록, 홍보마케팅 비용 모두 국고사업비로 지원받으면서 큐익스프레스의 물동량을 키워갈 수 있었다.
이후 구 대표는 2022년 티몬, 2023년 위메프 등을 차례로 인수하며 모든 배송을 큐익스프레스로 몰아주는 등 큐익스프레스의 덩치를 키워 나스닥 상장에 박차를 가한다. 구 대표는 지난해 5월에는 큐텐 계열사 티몬에 '인도 상품 전용관'을 만들기도 했다. 정부기관과의 협력 등을 통해 큐텐 플랫폼에 이미 인도 상품 직구 루트가 마련돼 있어 가능한 일이었다.
"큐텐 제안 거부하면서 입점할 수 있었겠나…"
큐텐은 2020년 인도 시장 진출 때와 비슷한 방식으로 정부기관과 업무협약(MOU)을 맺으면서 큐익스프레스를 키웠다. 국내 중소기업의 해외 판로를 개척해준다는 명목이 코트라,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중진공) 등 정부기관의 니즈(needs)와도 맞아떨어진 결과였다. 큐텐은 이미 2013년 코트라와 중국 인터넷 쇼핑 시장에 한국산 제품의 수출을 위한 온라인 한류관 운영 MOU를 체결했고, 2017년에는 싱가포르에서 한국 상품 판촉전을 여는 등 정부기관과의 관계를 이어왔다.
큐텐은 또 2014년 9월에는 중진공과 동남아 온라인 시장 진출 위한 MOU를 체결하고, 2017년 8월 마찬가지로 서울산업진흥원과 중소기업 해외 수출 지원 MOU를 체결했다. 이때마다 큐텐은 마케팅 프로모션을, 큐익스프레스는 해외 배송 업무를 담당했다.
업계에서는 '중소기업 지원'을 고리로 큐텐과 정부기관이 관계를 형성하는 것을 비단 순수하게 만 볼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업계 관계자는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이 플랫폼에 들어와 사업을 하게 되면 플랫폼 입장에서는 이것이 향후 정부기관에 대항하는 무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가령, 큐텐이 어떤 사회적 이슈에 휘말려도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사업을 하고 있는 만큼, 정부가 큐텐을 단죄하기 쉽지 않을 수 있다는 취지다.
코트라 관계자는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큐텐과 해외 유통망 사업을 한 사례가 몇 차례 있지만, 입점 기업들 중 피해를 입은 기업은 아직 아무 데도 없고 앞으로도 없을 것 같다"면서 "당시 코로나19로 어려운 중소기업들의 해외 판로 개척을 지원하기 위해 단발성으로 진행한 사업이었고 오히려 성과도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큐텐이 입점 업체들에게 큐익스프레스를 사용하게 한 사실과 관련해서는 "코트라가 관여한 바는 없고, 참가 업체와 큐텐 사이에 일어난 일"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