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니예 폭사한 테헤란 숙소. 연합뉴스하마스 최고 정치 지도자 암살 사건을 계기로 이란이 조만간 대대적인 보복에 나서겠다고 연일 천명하면서 이스라엘·하마스간 장기전 양상을 보이던 중동에서 '전면전' 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미국은 해군 순양함과 구축함을 중동과 인근 지중해에 추가 배치하는 한편, 핵 추진 항모 에이브러햄링컨호도 해당 지역으로 출격시킬 방침이다.
또한 이스라엘의 방어적 공중 지원을 강화하기 위해 미 전투기 편대도 추가로 중동으로 향할 예정이다.
이는 이란과 헤즈볼라 등이 하마스 최고지도자 하니예 살해의 책임을 물어 보복하겠다고 맹세한 데 따른 것이다. 하니예 암살에 앞서 헤즈볼라 지휘관 푸아드 슈크르도 지난달 30일 이스라엘이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 남부를 공습하면서 사망했다.
앞서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지난 1일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전화 통화를 갖고 이란을 비롯한 헤즈볼라·후티·하마스 등 반(反)이스라엘 세력에 맞선 안보지원을 약속한 바 있다.
양 정상의 통화를 요약한 간략한 성명에서 미국은 "바이든 대통령은 탄도 미사일과 드론을 포함한 위협으로부터 이스라엘을 방어하기 위한 노력에 대해 논의했으며, 여기에는 새로운 방어적 미군 배치도 포함된다"고 밝혔다.
하니예는 지난달 31일 이란 대통령 취임식차 테헤란을 찾았다가 암살당했다. 특히 하니예는 이란 혁명수비대가 경호하는 숙소에 머물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이란 당국의 당혹감을 키웠다.
이에 이란은 암살 배후에 이스라엘이 있다고 강조하고 있지만, 이스라엘은 별다른 입장을 내지 않고 있다.
미국 역시 이 작전에 대해 사전에 인지한 것도 없고, 연관되지 않았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미 언론들은 미 정부 관계자들을 인용해 "이란이 수일 내에 이스라엘을 공격할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이스라엘 역시 확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고위 관리에 대한 경호 강화와 함께 해외 주재 외교관들에게도 보안 강화를 권고한 상태다.
일각에서는 이란이 유대교 명절인 '티샤 베아브' 기간에 이스라엘에 보복을 감행할 가능성이 있다고 관측하고 있다.
티샤 베아브는 기원전 6세기 이스라엘왕국의 예루살렘성전이 신바빌로니아제국에 파괴된 것을 애도하는 기간으로, 올해 티샤 베아브는 8월 12~13일이다.
지난해 하마스도 유대교 명절인 초막절이 끝난 직후인 10월 7일 '알 아크사 홍수'란 이름으로 이스라엘에 기습 공격을 감행한 바 있다.
앞서 이란은 올 4월에도 이스라엘군이 시리아 주재 이란 영사관을 공습한 것에 대한 보복으로 이스라엘 영토를 직접 타격한 적이 있다.
당시 이란은 무장 드론과 미사일 300여발을 쏟아 부었지만, 이스라엘은 아이언돔 등 방공체계로 공격 피해를 최소화했다.
이란의 미사일 99%가 요격되는 등 이스라엘에 직접적인 피해가 발생하지 않았고, 이란의 공격 목표도 이스라엘의 군·정부 시설로 한정됐다는 점을 들어 이스라엘은 즉각 반격에 나서지 않았고 전면전으로 확대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이란이 이슬람 무장단체들과의 연계로 그때보다 복잡하고 정교한 보복 공격을 가할 것으로 예상돼 중동 지역에 짙은 전운이 드리워지고 있다.
미국이 이번 사태에 대해 그 어느때보다 신속하게 대응하는 이유는 석달 남은 미 대선에 대한 영향력을 최소화하기 위한 것이란 분석도 제기된다.
미 국방부 대변인은 "지난해 10월과 올 4월에 보여줬던 것처럼 미국의 세계 방위는 역동적이고 충분한 역량을 보유하고 있다"면서도 "미국은 또한 중동 지역의 긴장을 완화하고 인질들을 귀국시키고 가자지구 전쟁을 끝내기 위한 인질 거래의 일환으로 휴전을 추진하는 데 계속 집중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란 혁명수비대는 3일(현지시간) 하니예 암살과 관련해 "이번 테러는 하니예가 머문 거처 외부에서 탄두 7kg을 실은 단거리 발사체에 의해 자행됐다"며 "이는 이스라엘이 설계·실행했고 미국 정부의 지원을 받은 것"이라는 공식 입장을 내놓았다.
앞서 뉴욕타임스(NYT)는 지난 1일 복수의 중동국가 관리 등을 인용해 "하니예 피살 약 2개월 전에 이미 폭탄이 숙소에 설치됐으며 하니예가 방에 들어간 것을 확인한 후 원격 조정으로 폭발시켰다"고 보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