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범수 카카오 경영쇄신위원장. 박종민 기자작년 SM엔터테인먼트(에스엠) 경영권 확보전 국면에서 카카오가 우위를 점하기 위해 주가조작을 했다는 의혹과 관련해 사건의 정점으로 지목된 김범수 카카오 경영쇄신위원장이 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번 의혹 사건을 수사한 검찰은 카카오가 에스엠 경영권 확보전 경쟁 상대인 하이브의 에스엠 주식 공개매수를 저지하기 위해 주가조작을 했다고 결론 내렸다. 대기업인 카카오가 이런 불법 행위를 무리하게 한 배경에는 에스엠 인수를 통해 계열사 카카오엔터테인먼트(카카오엔터)의 재무구조를 개선해야 한다는 인식이 깔려있었다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서울남부지검 금융조사제2부(장대규 부장검사)는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김 위원장을 구속 기소했다고 8일 밝혔다. 에스엠 시세조종에 관여한 혐의를 받는 홍은택 전 카카오 대표, 김성수 전 카카오엔터 대표 등 임원진 3명은 이번에 불구속 기소됐다.
카카오엔터 법인도 함께 재판에 넘겨졌다. 법인의 대표자나 직원이 법인 업무와 관련해 시세조종을 포함한 위반 행위를 한 경우 법인에게도 책임을 묻도록 한 양벌규정에 따른 것이다. 이로써 해당 사건으로 카카오와 관계사 임원 6명과 카카오를 비롯한 법인 세 곳이 재판을 받게 됐다.
김 위원장은 지난해 2월, 나흘에 걸쳐 하이브의 공개 매수를 저지하기 위해 에스엠 주가를 하이브의 공개매수가인 12만 원보다 높게 고정하는 방식으로 시세조종을 한 혐의를 받는다. 검찰 조사 결과 해당 기간 하이브의 공개 매수를 방해할 목적으로 총 553회의 시세조종이 이뤄졌으며 이에 동원된 금액은 약 2400억 원 규모였다.
구체적으로 검찰은 김 위원장이 지난해 2월 16~17일, 27일 3일간 배재현 전 카카오 투자총괄대표, 사모펀드 운용사 원아시아파트너스 지모 대표 등과 함께 원아시아파트너스 명의로 에스엠 주식을 고가매수·물량소진 주문해 시세조종했다고 봤다. 이때 약 1100억 원이 동원돼 총 363회에 걸쳐 시세조종 매집이 이뤄졌다.
같은 달 28일에는 홍 전 대표, 김 전 대표 등과 함께 카카오와 카카오엔터 명의로 190회에 걸쳐 1300억 원 규모의 에스엠 주식을 매집했다는 게 검찰 설명이다.
김 위원장은 에스엠 주식 매수 과정에서 금융당국에 주식 대량 보유 보고를 하지 않은 '5%룰 위반' 혐의도 받는다. 자본시장법상 본인과 그 특별관계자가 보유하는 주식의 합계가 해당 주식 총수의 5% 이상이 되면 이를 5영업일 이내에 금융위원회 등에 보고해야 한다.
황진환 기자검찰은 카카오그룹이 계열사인 카카오엔터의 경영난을 개선하기 위해 현금이 풍부하고 경영상황이 양호한 에스엠을 인수하려 했다고 판단했다. 카카오엔터는 2022년 자산이 2조 9248억 원이었지만 부채가 약 1조 5518억 원에 이르고, 당기순손실이 약 4380억 원에 달하는 등 경영난에 직면한 상황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하이브가 에스엠을 시장가보다 높은 가격인 12만 원으로 공개 매수에 나서면서 카카오로선 이를 막아야 할 필요성이 생겼던 것이라고 검찰은 설명했다.
당시 카카오 임원진이 5%룰을 지켜가며 공개적으로 에스엠 대항매수에 나서지 않고, 불법 행위를 한 이유는 에스엠 관련 가처분 소송에서 유리한 결정을 받아 값싸게 주식을 얻기 위한 목적 때문이었다고 검찰은 지목했다.
당시 카카오는 하이브보다 앞서 에스엠의 지분 9.05%를 인수하기로 계약했지만, 이수만 전 에스엠 총괄프로듀서가 이를 '경영권 인수 목적'이라고 막아서며 법원에 신주 및 전환사채 발행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이런 가운데 카카오가 만약 하이브에 대항해 공개매수를 하게 되면 인수 목적이 드러나 가처분 소송에서 불리해지고, 결국 값싸게 확보한 에스엠의 지분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었다는 것이다.
카카오는 계열사들을 동원해 계획적·조직적으로 시세조종을 벌인 것으로도 조사됐다. 특히 김 위원장은 카카오 그룹 임원들에게 드러나지 않는 방법으로 하이브 공개매수 저지하고 에스엠을 인수할 것을 지시했고, 임원들은 해당 지시에 따라 원아시아파트너스와 카카오·카카오엔터의 자금을 동원해 범행을 실행한 것으로 파악됐다.
또한 카카오는 엔터업과 관계없는 계열사 운영 자금도 시세조종 범행을 위해 사용했다고 검찰은 밝혔다.
범행 후 카카오 임원들은 수사에 대비해 하이브의 공개매수 저지 목적이 없었다고 입을 맞추고, 인수 관련 논의가 이뤄진 카카오워크 대화방을 삭제하는 등 조직적인 증거인멸을 한 정황도 수사 과정에서 포착됐다.
검찰은 이 같은 수사 결과를 내놓으며 "카카오는 에스엠 주주들을 비롯한 시장참여자들이 마땅히 알아야 할 카카오의 에스엠 인수 목적을 숨기고, 은밀히 장내 매집으로 시세조종을 해 하이브의 공개매수를 실패시킴으로써 공개매수 제도를 형해화 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국내 대기업도 시세조종을 통해 시장 정보를 왜곡해 공개매수를 실패시킬 수 있다는 사례를 보여줘 국내 자본시장에 대한 신뢰를 상실시키고 질서를 심각하게 교란했다"고 지적했다.
한편 카카오 측은 김 위원장 구속 기소에 대해 경영 공백을 최소화하겠단 입장을 내놨다. 카카오 관계자는 "향후 재판 과정에서 사실 관계를 성실히 소명하겠다"며 "아울러 정신아 CA협의체 공동의장을 중심으로 경영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