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회견하는 간호협. 연합뉴스의료공백으로 인해 현장 간호사 10명 중 6명이 병원 측의 강요에 전공의 업무를 대신하면서도 관련 교육은 1시간 남짓만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간호사 업무 관련 시범사업 대상 의료기관이면서 사업에 참여하지 않는 병원도 61%에 달했다.
대한간호협회는 지난 6월 19일부터 7월 8일까지 수련병원 및 종합병원 등 의료기관 385개를 대상으로 '간호사 업무 관련 시범사업 실태 조사'를 진행한 결과를 20일 발표했다.
조사 결과 시범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기관은 전체의 39%인 151개 기관에 불과했다. 시범사업에 참여하는 의료기관에서 진료지원(PA) 업무를 수행하는 간호사는 1만3502명이었다.
간호협회가 지난해 운영한 '불법진료 신고센터'에 의료법 위반 사례로 신고된 의료기관과 시범사업에 참여하지 않는 의료기관을 비교한 결과 동일한 경우가 88%에 달했다.
간호사 10명 중 6명은 병원 측으로부터 전공의 업무를 강요받아 수행하면서도, 시범사업에 참여하지 않은 의료기관에 근무하는 간호사는 법적인 보호도 받지 못했다.
이에 따라 현장 간호사들은 환자 안전사고 발생에 대한 두려움과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업무 수행으로 인한 심적 부담을 겪은 것으로 파악됐다.
조사에 따르면, 한 현장 간호사는 "점점 더 일이 넘어오고, 교육하지 않은 일을 시킨다"며 "시범사업 과정에서 30분~1시간 정도만 교육한 후 업무에 투입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간호사는 "수련의의 업무를 대신하고 있는데 업무 범위도 명확하지 않고, 책임 소재도 불명확한 데다 업무에 대한 교육 프로그램도 따로 없어 수련의의 업무를 간호사가 가르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전공의들이 이탈하고 의료공백 사태가 이어지면서 병원들은 경영 악화를 호소하며 신규 간호사 발령도 큰 폭으로 감소했다.
간호협회가 국민건강보험공단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위 '건강보험통계' 자료를 분석한 결과, 최근 5년간(2019~2023년) 1분기 대비 2분기 근무 간호사 평균 증가율은 크게 감소했다.
상급종합병원은 5년 평균 1334명이 증가했으나 올해는 오히려 194명이 줄었다. 종합병원도 지난 5년 평균 2252명이 증가했는데, 올해에는 2046명이 느는 데 그쳤다. 병원급 이상 전체 간호사 증가 인원도 지난 5년 평균 4473명에서 올해 2903명으로 65% 수준에 머물렀다.
병원들은 신규 간호사 발령을 무기한 연기하고 있었다. 지난 13일 기준 현재 상급종합병원 47개 중 조사에 참여한 41개 의료기관의 경우 지난해 선발한 올해 발령 인원 8390명 중 6376명(76%)을 발령하지 못했다.
이들 상급종합병원 가운데 31개 의료기관은 간호대학 4학년에 재학 중인 예비간호사들을 대상으로 올해 실시되는 신규 간호사 모집 계획마저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탁영란 간호협회 회장은 "국민의 생명과 환자 안전을 위해 끝까지 의료 현장을 지키고 있는 간호사들을 보호할 수 있는 법체계가 너무나 허술하고 미흡하다"며 "정부 시범사업 지침에는 '근로기준법 준수'라고 분명하게 명시돼 있지만 의사 파업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간호사들의 근무 환경은 날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더 이상 간호사에게 희생만을 강요받지 않고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국회에서 간호법안이 반드시 제정돼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