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여야 양자 회담 생중계를 놓고 줄다리기가 이어지는 가운데 협상의 추가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 쪽으로 살짝 기울고 있다. '일부 공개'까지는 양보할 수 있다는 이 대표 측의 협상 마지노선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가 한 수 양보하면서다.
이를 놓고 정치권에서는 "절박한 사람이 더 양보하는 것 아니겠느냐"며 한 대표 측이 회담을 더 원한다는 속내가 드러났다는 평가다. 다만 '제3자 특검법'을 어떻게 회담에 포함할지 등 양측 간 의제조율이 남아있는 만큼 최종 성사까지는 속단할 수 없는 상태다.
李 '난색'에…생중계 접은 韓
26일 CBS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민주당 내에서는 당 대표 간 회담을 생중계 할 바에야 차라리 영수회담을 추진하는 것이 낫다는 방향으로 잠정 결론이 난 상태였다. 한 대표가 '생중계가 회담 전제조건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한 발 물러난 것 역시 민주당 측에서 생중계 여부를 회담의 딜브레이커(deal breaker·협상 결렬의 요인)로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대표 측은 처음부터 "불쾌하다"며 한 대표의 회담 생중계 제안을 곧바로 거부했다. 두 대표 측 비서실장 간 실무회동에서도 이해식 의원이 줄기차게 난색을 표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이 대표 입장에서는 이번 회담은 '여론전' 이상의 의미가 있다. '채 상병 특검법'을 필두로 각종 법안이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에 막혀버리는 정국 마비를 해소해야 한다. 부차적으로는 한 대표와 특검법을 논의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여당과 대통령실 사이를 벌어지게 할 수 있다는 '이이제이(以夷制夷) 효과'를 노리고 있기도 하다. 동시에 한 대표가 채 상병 특검법을 발의하지 못한다면 이를 빌미로 대여 압박 수위를 한층 더 끌어올릴 수 있다.
반면 당내 입지가 약한 한 대표는 이번 회담의 성사만으로도 일단 카운터파트인 이 대표를 이용해 자신의 정치적 체급을 키울 수 있는 효과가 있다. 이같은 구도를 놓고 당내에서조차 "한 대표가 생중계를 고집했던 것은 개인적인 이익을 우선하기 때문 아니냐"는 뒷말이 나왔다.
한 대표는 자신이 공언했던 '수평적 당정관계'를 재정립하지 못하고 있다. '제3자 추천 특검법'이 당내 힘을 받지 못하면서 '미래 권력'이라는 한 대표의 입지도 오히려 줄어들고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 대선주자나 마찬가지인 이 대표와 회담을 갖고 일정 부분 그의 양보를 끌어낸다면 한 대표의 당내 입지는 순식간에 올라가게 되기 때문에 '모두발언 공개, 결과 브리핑'이라는 이 대표 측의 입장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는 후문이다.
더욱이 양자회담이 끝내 결렬되거나 빈손 회동으로 끝날 경우 이 대표는 한 대표를 건너뛰고 윤석열 대통령과 영수회담을 추진하는 쪽으로 급선회할 가능성도 있다. 한 대표로서는 이같은 최악의 시나리오를 막기 위해서라도 우선 양보를 할 필요가 있었다는 분석이다.
이 대표 측 비서실장인 이해식 의원은 "(한 대표가) 상당 부분 우리 쪽 입장을 이해하고, '그것(생중계)가 성과를 내려고 하기보다는 토론하면서 각자 입장 확인만 하는 수준으로 그칠 것 아니냐'는 비판에 대해서는 아마 인정을 한 것 같다"며 "생중계 부분은 똑부러지게 결정을 한 건 아니지만 우리 얘기대로 모두(발언)에 공개하고 정책위의장을 배석시켜 (비공개로) 협의한 뒤 회담 결과를 공개하는 정도로 좁혀졌다"고 설명했다. 한 대표 측 비서실장인 박정하 의원도 "어려운 민생과 답보 상황인 정치 복원을 위한 대표회담은 꼭 성사되어야 한다는데 의견을 모았다"며 "민주당이 요구하는 일부 공개 방식도 수용할 수 있다는 입장을 전달했다"고 밝혔다.
승부처는 '채상병'인데…회담 성사까지 아직도 '험로'
윤창원 기자회담 형식은 어렵사리 조율됐지만 의제 설정까지 마지막 한 걸음이 남아 있다. 회담 성패 가늠자는 제3자 특검법에 있는데 정작 한 대표 측에서 발의하는 것은 이전보다 어려워진 모양새다. 결국에는 협상이 좌초될 것이라는 예측이 국민의힘 내에서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 대표 역시 이를 의식한 듯 전날 원내 지도부와 의견 차를 줄이는 듯한 발언을 내놨다. 그는 "공수처(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수사 상황을 보고 특검을 정해도 늦지 않다는 생각도 완전히 틀린 생각은 아니다"라며 "게다가 수사하는 쪽(공수처)이 공격적이고 적극적인 경우에 있어서는 특검을 하자는 것이 오히려 수사를 방해하는 요소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라고 말했다.
제3자 특검법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철회하는 것은 아니지만 수위를 대폭 낮춘 것이다. 이를 놓고 율사 출신 한 의원은 "원내 지도부가 그동안 주장해 온 '선(先) 수사, 후(後) 특검'과 크게 다르지 않은 발언이다. 이런 식으로 서서히 '제3자 특검법'을 뭉개지 않겠느냐"고 내다보기도 했다. 더욱이 친한계 의원들조차 발의를 꺼려하는 상황이다. 이를 놓고 한 국민의힘 관계자는 "한 대표가 자신을 대신해 발의하고 서명해주는 의원들에게 정치적으로 줄 수 있는 것도 현재로서는 없는데 의원들이라고 해서 당원들 사이 찬성 여론이 그다지 높지 않은 법을 섣불리 발의하긴 어려울 것"이라고 해석했다.
결국 회담이 성사되더라도 한 대표가 실질적으로 득점할 수 있는 지점은 '민생 법안'밖에 없다. 가령 양측 간 이견이 적다는 금융투자소득세를 놓고 한 대표는 폐지를, 이 대표는 유예를 주장하고 있는 만큼 한 대표 측에서는 자신의 입장을 관철해 낼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잠재적 타결 가능성이 있는 민생회복지원금도 마찬가지다. 국민의힘 내에서 "(이 대표의) 25만원 프레임에 갇히지 않을 것이다. 30만원이 될 수도 있다"는 발언도 나온 바 있다.
한 대표로서는 내상(內傷)이 불가피하다는 비관적인 시각 역시 여전히 존재한다. '제3자 특검법'이 수평적 당정 관계의 상징이 되어버린 상황에서 한 대표가 발의를 접는다면 대통령실의 전향적인 입장 변화를 주도하지 못한 꼴이 되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국민의힘은 2026학년도 의대 정원 증원은 유예하자는 방안을 제안했으나 대통령실에서 이를 거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윤 대통령과 한 대표를 포함한 당 지도부는 국민의힘 연찬회가 끝나는 30일 만찬 회동을 갖는다. 연금 개혁·의정 갈등 등 주요 국정 현안에 대해 주로 논의하면서 양자 회담 방향에 대한 조율도 자연스럽게 이뤄질 전망이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여야 회담 전 조율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대통령실이 아직도 입김을 행사하려는 게 아니냐고 해석할 여지도 있지 않나"라며 "'당정 관계의 수평적 재정립'을 약속했던 한 대표는 자신만의 차별성에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