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영주 기자'의료개혁' 완수 의지를 굽히지 않는 윤석열 대통령과 의료계 간 갈등이 추석 전 해법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까.
정치권은 일단 '여야의정협의체'라는 중재 기구 구성부터 추진하고 있지만, 각자의 고심이 깊은 모양새다. 대통령실은 추석 연휴를 앞두고 '의료 공백' 사태를 우려해 2026년 의대 증원 문제부터 '원점' 논의하겠다고 밝혔지만, 의료계와 야권이 논의의 전제로 제시한 '대통령 사과' 요구와 관계 부처 장관의 경질, 2025년 증원 백지화 등에는 '절대 불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야당은 윤 대통령의 태도에 여전히 문제가 많다는 입장이다. 특히 "2026년도 증원부터 논의하자"는 입장에 대해 "그간의 불통에서 바뀐 것이 없다"고 반박한다. 때문에 '2025년 증원' 문제부터 의제에 올리자고 제안하고 있다. 대통령실과 야당의 간극이 좁혀지지 않고 평행선을 달리고 있는 셈이다.
여당은 연휴 전에 협의체 구성을 완료한다는 계획이지만, 만약 의사들이 동참하지 않는다면 여야정부터 논의 테이블에 앉자는 입장이다. 의정갈등 사태에 대한 윤석열 정부 책임 여론이 비등한 가운데, 추석 '밥상 민심'에서 유리한 여론을 조성해야 하는 정부·여당 입장에선 고심이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여야의정 협의체 난항…'2025년 증원' 두고 용산·與 vs 의료계·野 '간극'
대통령실 청사 전경. 대통령실 제공대통령실은 8일 대한의사협회(의협)가 '여야의정 협의체' 참여 조건으로 2025·2026년 의대 증원 백지화를 요구한 것에 대해 "2025년도 백지화는 현실성 있는 안이 아니다"라고 일축했다. 당장 9일이 2025학년도 수시 원서 접수일인 만큼 논의가 불가능한 제안이라는 입장이다.
앞서 의협은 "2025년과 2026년 의대 증원 계획을 백지화하고, 2027년 정원부터 재논의해야 한다"며 "정말 의대 정원을 늘리는 것이 합당하다면 2027년이나 그 이후부터 증원을 논의하는 게 당연하다"고 주장했다.
대통령실은 2025학년도 증원 백지화는 불가능하다며 선을 그었지만, 2026학년도 증원 조정 여지는 열어뒀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의료계가 2026학년도 의대 '0명 증원안'을 제시해도 합리적 근거를 함께 가져온다면 논의는 가능하다"라고 밝혔다.
여당 역시 의료계 주장을 현실적으로 받아들일 방법이 없다는 입장이다. 총 정원을 유예하려면 보건복지부가 교육부와 협의해 의대 입학 정원을 다시 조정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이후 한국대학교육협의회가 각 대학에 대입 시행계획을 다시 제출받아 대입전형 기본사항도 변경해야 하는 등 혼란이 불가피하다. 지난 7월 재외국민·외국인 전형은 이미 시작한 만큼 정부가 의료계 요구를 받아들일 경우 법적 시비가 붙을 수밖에 없다는 게 여당의 시각이다. 국민의힘 핵심 관계자는 "2025년도 증원 재논의가 불가하다는 당의 입장엔 변화가 없다"고 강조했다.
반면 야당은 "2025년 정원을 논의 테이블에서 배제할 필요는 없다"고 반박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의료대란대책특별위원회 핵심 관계자는 "일단은 의료계가 움직여야 하고, 그러려면 의사들이 테이블에 앉을 수 있게 해야 한다"며 "정부가 이렇게 하면 의사들은 대화를 하지 않으려고 하니, (민주당은) 2025년 정원 문제도 폭넓게 대화 테이블에 올리자고 이야기한 것이다. 어떻게든 설득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의료계가 여전히 완강한 태도인 가운데, 애초 협의체 구성에 공감대를 이뤘던 정부여당과 야당 간 이견이 표출되면서 출범 논의부터 삐그덕대는 모습이다. 대통령실은 협의체에 호응하면서 의대 정원 논의를 '제로베이스'에서 할 수 있다고 공언했지만, 야당은 정부가 2026년 정원 문제에 대해 논의할 수 있다는 얘기를 그전부터 해왔기에 태도가 달라진 게 없다는 지적도 제기하고 있다.
대통령실과 야당의 간극은 윤석열 대통령의 사과와 보건복지부 장·차관 경질 요구에서도 드러나고 있다. 민주당은 "의료대란 해결 노력에 정부가 또다시 초를 치고 있다. 대통령 사과와 책임자 경질 요구를 외면한 채 '의대 증원 유예는 없다'는 고집을 또 반복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반면 대통령실은 "인사권은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라며 "윤 대통령의 사과 등에 대해서도 따로 논의되고 있는 게 없다"고 선을 그었다.
'중재자' 자임 韓, 묘수는 아직…협의체 지연, '추석 밥상 민심' 고심
의과대학 강의실이 텅 비어 있다. 정혜린 기자'2026년도 의대정원 유예안'을 중재안으로 던진 데 이어, '여야의정 협의체'를 제안하며 중재자 역할을 자임한 한 대표로선 과제가 계속 쌓이는 모습이다. 여당 내에서까지 거론됐던 박민수 복지부 2차관 경질론은 일단 수그러들었지만, 2026년도 증원 문제에 대해 논의하자는 정부와 2025년도 증원부터 재논의하자는 야당 및 의료계 중간에서 이렇다 할 묘수를 찾지 못하는 형국이다.
국민의힘은 의료계가 대화에 참여를 하지 않는다면 일단 이번 주 중으로 여야정 협의체라도 띄우고 추석 연휴 전에 구성을 완료하겠다는 방침이지만, 야당의 반발 기류로 이마저도 불투명한 양상이다.
국민의힘 핵심관계자는 "민주당과 여야의정 협의체 구성은 일단 조율을 계속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당 관계자 역시 "한 대표와 이 대표가 지난 1일 회담에서 국회 차원의 대책을 협의하기로 한 만큼 야당도 협의체에 불참할 명분이 없다. 수험생 학부모들을 다 적으로 돌릴 수도 없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의대 증원안이 반영된 내년도 수시모집 원서 접수가 시작되면 의료계에서 고집하는 2025학년도 증원 백지화는 자연스럽게 일단락될 것이라는 전망도 조심스럽게 제기된다. 대통령실에선 원서 접수를 기점으로 2025학년도 증원 재논의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점을 못 박으면서 의료계의 대화 참여를 재차 촉구하겠다는 입장이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대화의 장에 나와달라. 거기서 이야기하자"고 강조했다.
대통령실은 의료계가 대화 의지도, 대안도 없다는 점을 부각시키고 국민의힘은 중재 노력까지 더하면서 당정이 함께 여론전에 적극 나섰다는 분석도 나온다. 추석 연휴를 앞두고 이른바 '밥상 민심'에서 유리한 고지를 조성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협의체 출범이 지연되고 표류할수록 당정의 고심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는 전망도 제기된다. 한국갤럽 지난 3~5일 조사 결과(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3.1%포인트, 자세한 여론조사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 윤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23%로 나타났다. 또 '의대 정원 확대'가 취임 이후 처음으로 부정 평가 1위에 오르는 등 이어지는 지지율 하락 추세와 의료 개혁에 대한 부정적 여론 확산이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란 관측이다.
이런 가운데 우원식 국회의장과 국민의힘 추경호, 더불어민주당 박찬대 원내대표는 9일 국회에서 만나 여야정 협의체 발족을 논의한다. 아직 의료계가 '협의체 참여' 의사를 아직 밝히지 않은 가운데, 정치권은 사태 해결이 시급하다고 보고 추석 전 협의체 구성을 시도할 가능성이 크다.